한국희곡

임길호 '수상한 흥신소'

clint 2015. 11. 9. 18:50

 

 

 

 

 

얼굴에 푸른빛이 드리운 남자는 유독 말이 없다. 그저 지그시 상대방을 바라볼 뿐이다. 그런데 이 남자 자신의 모습을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저 세상 사람으로 귀신이다. 보통사람이 귀신을 본다면 꽥하고 소리를 지르겠지만 상우는 그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저리 가"라고 말한다. 상우가 귀신을 대처하는 법은 무시 혹은 담담함이다. '수상한 흥신소'는 백수와 다름없는 고시생 상우의 남다른 능력으로 인해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상우는 공부에는 소질이 없을지 몰라도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을 보는 능력은 타고났다. 귀신을 대하는 대처법까지 능통하다. 상우는 어느새 자신의 재능을 살려 귀신을 돕는 일을 자처하고 나선다. 이름하야 '수상한 흥신소'다. 귀신들의 의뢰를 받아 못다 한 한을 풀어주고자 두 손 두 발 걷어붙인다.

 

[수상한 흥신소]는 죽음을 맞이한 귀신들이 이승에서 정리하지 못한 일들을 주인공 ‘상우’를 통해 해결한다는 내용이 기본 줄거리다.

 

 

 

 

 

임길호 작가는 "다소 비극적인 성향이 강한 제 자신의 내면을 달래기 위해 쓴 작품이다" 며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채 갑자기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 건가?" 라는 궁금증에 작품을 쓰게 됐다며 집필동기를 밝혔다.
그의 집필 동기를 십분 이해한다해도 작품은 희극과 비극 사이를 균형감 있게 저울질 하지 못하고 있다. 초보 관객들과 매니아 관객들의 불만을 한꺼번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초보 관객들은 중반 이후 급격히 어두운 색채로 변모해 흘러나오는 우울한 정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낼 수 있다. 반면 매니아 관객들은 웃긴 것도 아니고 울리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전개방식이 흔쾌히 박수를 칠 수 없게 만든다고 토를 달게 만들기 때문이다.


'수상한 흥신소'에는 화자와 청자가 공존한다. 화자가 청자 역할을 하기도 하고 청자가 화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상우를 필두로 이야기가 꾸려지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를 이끌어나가는 중심인물은 따로 두었다. 이 작품은 인물들의 짤막한 이야기들이 합치거나 교차하며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려나간다. 조각조각 작은 이야기들이 모이면 연극은 막바지에 다다른다. 등장인물의 사연이 옴니버스로 펼쳐지는 이 작품의 매력은 매끄러운 줄거리 전개에 있다. 여러 이야기를 한 데 뒤섞어 놨음에도 정신 산란하지 않고 깔끔하다. 이야기의 간극을 조절하며 웃음의 간격을 조절하는 치밀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연극 '수상한 흥신소'는 소박한 무대 배경에 어둠을 밝히는 조명이 무대 연출의 전부다. 다른 장치는 없다. 나머지는 오로지 배우들의 호흡에 있다. 배우들의 숨이 전해질 정도로 아담한 극장은 관객들의 시선을 배우에게로 집중시킨다.

 

 

 

연극 '수상한 흥신소'에는 우울한 귀신이 없다. 구천을 떠도는 한이야 가슴에 파묻히는 아픔과 슬픔으로 그득하지만 그 참담한 마음을 무대 위에 꾸역꾸역 끄집어내지는 않는다. 슬픔을 입가에 살짝 걸쳐 놓은 채 환히 웃는다. 그 덕에 귀신이 등장하면 극은 웃음으로 물든다. 사실 귀신등장은 멀티 맨의 원맨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각귀신, 조폭, 소심한 판매원 매초마다 옷을 갈아입으며 색다른 캐릭터를 눈앞에 펼쳐 보인다. 귀신들의 이야기가 다소 억지스러울 수 있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관객에게 잘 전달될 수 있었던 건 능글맞은 귀신 덕분이다. 관객이 의아한 표정을 지을라치면, 그것도 모르느냐며 되레 어이없어한다. 그의 그런 제스처에 관객은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며 기꺼이 미소 짓는다. 그는 중간 중간 등장하며 극의 웃음 포인트를 담당한다. 그의 등장만으로 관객은 쿡쿡거린다.
웃음과 귀신들의 출연에도 연극 '수상한 흥신소'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잊지 않는다. 극의 중간에서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이 작품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 다만 조심스러운 어투로 부드럽게 이야기할 뿐이다.

 

 

 

'수상한 흥신소'에는 우리들의 삶과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백수와 같은 고시생 상우는 안정된 삶으로 가는 티켓을 거머쥐고자 줄지어 늘어선 우리 주위에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친구의 모습이다. 귀신이 되어서도 꿈을 이루려는 오덕희는 꿈을 좇는 우리 모습,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경비원은 우리 주위의 엄마아빠의 모습과 닮았다. 우리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담아낸 연극 '수상한 흥신소'는 관객에게 나지막이 묻는다. '당신이 만약 기약도 없이 죽는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