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오래전 조선시대에 우리 선조들은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았을까? 농민과 어민, 상인과 무역상, 물건을 지게에 짊어지고 장터를 떠도는 보부상과 왁자지껄한 주막에서 사내들에게 술과 안주를 파는 주모 등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다. 하지만 조선은 500여 년이라는 기나긴 역사와 수백만의 인구를 가진 적지 않은 규모의 국가였다. 당연히 이 나라에는 다양한 직업들이 존재했다. 그중에는 오늘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직업도 있고, 명칭만 다를 뿐 지금도 남아있는 직업도 있다. 현대인의 시각에서 실제로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직업도 있었다. 역사 속의 직업들을 살펴보면 그 시대의 사회와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직업의 탄생과 소멸은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 망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지고 싶거나 꼭 필요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만들 수 없고 번거로운 게 곧 누군가의 '직업'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책이나 동영상 등 온갖 다양한 매체의 영향으로 조선시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것은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TV 속 조선시대 기생들은 단아하게 앉아서 거문고를 연주하거나 우아한 자태로 춤을 추지만 실제로는 부끄럽고도 가혹한 일상을 살아가는 여인들이었다. 과거시험이라는 좁은 출셋길은 선접꾼과 거벽, 사수라는 어둠의 직업을 탄생시켜 백주대낮에 당당히 부정시험이 치러지는 아수라장을 만들고 말았다. 재산목록 1호인 노비들을 지키려는 양반들의 욕심이 추노객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냈다. 이런 직업들의 탄생과 소멸을 살펴보면 그 시대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 글은 졸저인 《조선백성실록》에서 시작되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엑스트라나 하찮은 악당 혹은 가련한 피해자로만 등장했던 백성들은 어쩌면 소시민의 삶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현대인과 비슷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출발점이다. 다음번 얘기도 백성들에게 초점을 맞춰보고 싶다. 조명되지 못했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이 창작과 역사, 소설과 인문서 사이에 절묘하게 끼어있는 나의 역할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특이한 직업들을 통해서 그 시대를 이해하는 것은 출세와 성공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한번쯤 생각하게 해줄 수는 있다. 그것이 바로 '역사'의 진정한 얼굴이자 역할이니까 말이다. 글을 쓴다는 특별하지 않은 특별함 덕분에 좋은 인연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들에게 보답하는 것은 좋은 글을 쓰는 것뿐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쓰면 쓸수록 어려워지는 글 앞에서 자연스레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만큼이나 말이다.
저자 정명섭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커피를 좋아하는 책쟁이. 서른 즈음 커피 향에 매료되어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의 길을 걷는다. 다시 몇 년 후 글쓰기의 매력에 빠져든다. 어린 시절부터 인간의 지나온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많은 책과 자료들을 섭렵했다. 2006년 랜덤하우스 코리아에서 을지문덕을 주인공으로 하는 역사추리소설 '적패'1, 2를 출간했다. 2008년에는 황금가지에서 발간된 '한국 추리스릴러 단편선'에 단편 '불의 살인'이 수록되었으며 추리작가 협회에서 발간하는 "올해의 추리소설"에 단편 '매일 죽는 남자'를, 계간지 '계간 미스터리'에 '흙의 살인'을 수록했다. 올해 발간될 '한국 추리스릴러 단편선'2에 '빛의 살인'을 수록할 예정이다. 파주출판도시 아시아 정보문화센터에 있는 카페 인포떼끄에서 바리스타로 일하였다. '혁명의 여신들', '암살로 읽는 한국사', '조선백성실록', '조선의 명탐정들' 등의 역사인문서도 집필했다. 2013년 '기억, 직지'로 제1회 직지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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