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소설

더글라스 케네디 '빅 픽처'

clint 2022. 12. 30. 08:09

 

 

지금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면? 누구나 한번쯤 품어본 생각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꿈과 동떨어진 일을 하는 사람, 바쁜 일상에 매몰돼 꿈이 바래가는 걸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또 다른 삶에 대한 동경은 더욱 사무칠 것이다.

이 소설 빅 픽처의 주인공 벤은 그런 사람이다. 앞날이 탄탄하게 보장된 뉴욕 월가의 변호사, 안정된 수입, 뉴욕의 중상류층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교외의 고급 주택 거주자,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이룬 가정 그저 외양만 보자면 모두들 부러워 할 대상이지만 벤 자신은 조금도 즐겁지 않다. 벤의 꿈은 사진가로 성공하는 것이었다. 이제 그의 꿈은 값비싼 카메라와 장비들을 사들이는 호사스런 취미로 남아있을 뿐이다. 벤은 원하지 않는 생을 살고 있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시니컬한 면을 보이기도 하고,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게다가 부부 사이도 심각할 만큼 삐거덕거리고 있다. 자존심 강한 미모의 아내 베스는 작가가 되고 싶었던 꿈이 좌절된 후 벤에 대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베스는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전원주택가의 가정주부로 눌러앉게 된 게 전적으로 벤의 탓이라며 감정의 골을 넓힌다. 벤은 부부관계가 원만해지기를 바라며 여러모로 애쓰지만 결국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벤은 아내 베스가 이웃집 사진가 게리와 혼외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목도한다. 게리를 찾아갔던 벤은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한다. 소설은 이제 범죄에 대한 은폐와 완벽한 도주를 모색하는 벤의 이야기로 돌변한다. 도주의 종착지인 몬태나 주 마운틴폴스에서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사진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 벤, 그는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빅 픽처는 미국 중상류층 사람들의 삶에 대한 묘사로부터 시작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범죄와 도주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벤에게 주어진 두 번째 삶과 마운틴폴스에서 새롭게 시작된 앤과의 로맨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는 숨 돌릴 틈 없이 전개된다. 작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들을 한데 섞고 버무려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독자들은 벤이 살인자라는 걸 알면서도 사건이 완벽하게 은폐돼 벤이 결국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심리상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벤이 겪는 슬픔 아내 베스의 혼외정사로 겪는 배신감,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 좌절하는 모습이 벤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3부로 된 구성에 4백 페이지가 넘는 긴 내용이지만 손에 집어 드는 즉시 단숨에 읽어나갈 수 있을 만큼 속도감 넘치는 소설이다. 특히 산불 장면을 위험을 무릎쓰고 벤이 멋진 컷을 찍는 것을 읽으며 보는 것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2014 프랑스 영화로 제작되어 상연되었으나 소설을 읽은 사람들의 기대를 실망으로 바꿔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