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막내아들이 공사현장에서 실족사 한다. 어머니는 흩어져 사는 가족들에게 이 소식을 전한다. 저녁 무렵 아버지와 형, 누나들이 어머니의 집으로 모인다. 12년 만에 동생의 죽음으로 가족들이 다 모인 것이다. 가족들은 서로의 근황과 실족사한 막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장의사가 도착하고, 아버지는 최고급의 장례절차를 주장한다. 하지만 또 그렇게 가격이 비싼 이유가 뭐냐며 장의사를 추궁한다. 엄마는 아버지의 소심한 성격을 꼬집으며 사사건건 잔소리 하지 않겠다면 다시 같이 살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것 저것 따져보다 이를 거절한다. 두 딸은 남자이야기를 한다. 동생은 언니의 옛 애인을 사귄다며 자랑한다. 그녀는 이미 임신 4개월이다. 형은 막내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이상하게도 마지막 부분이 찢겨져 있다. ‘혹시 막내가 자살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가족들은 함께 일기를 읽으면서 조각난 옛 기억들을 조금씩 불러내고 막내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차츰 깨닫게 되는 데…
유미리는 그의 천재적인 글 솜씨뿐만이 아니라, 그의 불우했던 성장과정 때문에도 유명하다. 불행한 어릴 적 가족사가 왜곡 없이 자주 보여 지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접한 사람들이 그 충격적인 소재 때문에 놀라고는 한다. 이번<물고기의 축제>역시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마치 개인사를 밖으로 끌어낸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사실은 우리가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지 않을 뿐인, 우리의 이야기이다. 그 점이 바로 우리가 더욱 놀라는 까닭이다. 엽기적이면서 블랙 코메디 같은 유미리 작품의 가족은 이<물고기의 축제>에서도 다르지 않다. 이혼한 아버지와 어머니,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족, 언니의 애인이었던 사람과 동거하는 동생 등, 역시 평범하지 않다. 늘 자신의 가정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막내 동생은 한꺼번에 가족들을 죽여버리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한 자리에 모이지 않을 가족이기에 막내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의 자살을 택한다. 그렇게 해야만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엽기적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서까지 자신의 장례식에 ‘어떤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이 가족의 재 결합을 열망하는 막내 아들이고, 장례식에 모인 ‘어떤 사람들’이 12년 만에 서로 처음 마주치는 아빠와 엄마, 형과 누이들이라면 얘기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것은 엽기적인 것 그 이상인 것이다. 거기에 이 작품의 숨결이 있고 감동이 있다. 가족들은 죽은 막내 아들의 은밀한 흉계에 속아 함께 하루 밤을 보낸다. 여전히 다툼과 질시, 오해와 고집이 맞부딪치지만 막내의 유골을 안치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옛날 모습 그대로 함께 가족 사진을 찍게 된다. 예수의 말대로 한 알의 밀알이 썩어져야만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다. 이 작품은 유미리 특유의 가족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끔찍한 원망과 함께 교차되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얼핏 그로테스크 하고 엽기적으로도 보일 수 있고, 부분적으로는 황당하고 어색한 코메디로도 보인다. 하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그 모든 것은 이미 깨어져 버린 가족의 고르지 못한 표피에 불과한 것이다. 무척이나 자연스러우면서도 부드럽고 애교스러운, 하지만 피를 토하듯 절절한 그 내면을 느껴야 한다
작가소개 _ 유미리(柳美里)
"쓰지 않으면 숨 쉴 수 없다."
1968년 일본 가나가와 현에서 출생. 고교 중퇴 후 도쿄 키드 브라더스를 거쳐1988년 청춘 5월당(靑春五月黨)을 결성하여 극작가 겸 연출가로 활동하였다. 1993년 스물다섯 살 최연소의 나이에 희곡<물고기축제>로 기시다 구니오 희곡상의 영예를 안았다.<정물화>,<Green Bench>등의 희곡 작품과<가족의 표본>,<사어사전>,<유미리의 자살>등의 에세이를 출간했다. 첫 소설집<풀 하우스>로 제 24회 이즈미 교카 상과 노마분게 신인상을 연달아 수상했다. 제 113회, 제 114회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올랐으며, 1997년 중편<가족시네마>로 제 116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였다. 일본의 20대 순수문학의 기수로 손꼽히며, 가족 및 삶과 죽음을 테마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물고기 축제>(1994. 7.9-8.16일, 성좌소극장)의 희곡을 펼쳐 보면 첫 장에서부터 절벽에서 떨어질 위험성을 가족 나들이 카메라 촬영이라는 즐거운 회상으로 얼버무리는 대목이 있다. 떨어짐, 낙하라는 주제가 이렇게 해서<물고기의 축제>를 일관하는 라이트 모티브로 살아나 공사현장에서 떨어져 죽은 한 젊은이의 장례식에 모인 가족들의 낙화(落花) 같은 삶의 단편을 반영시킨다. 죽음은 차다. 그러나 살아 있는 자들의 이기심도 그만큼 차다. 도대체 물고기 같은 제각각의 부유동물들이 벌이는 잔치가 무슨 축제가 되겠는가. 그 여린 목숨은 자기들의 이기심을 채우기에 바쁘고 그래서 그들의 세계는 모래알처럼 흩어진 공허한 가족공동체일 뿐이다. 필자는 유미리의 희곡세계가 지닌 그 문학적 형성력을 평가한다. 죽음을 보는 그의 눈은 감상적일 수도 있고 허무주의적일 수도 있다. 20대의 인생관은 그런 것이다. 그러나 그의 희곡 문학은 죽음을 무대 위에 올려 놓고 일본적인 잔치로 꾸미게 한다. 아니, 오히려 현대의 20대가 벌이는 건조하고 이기적인 잔치의 모습이 반영된다. 연출 윤광진은 다지고 억제시킨 장례식을, 그리고 죽음 주변에서 벌어지는 각박한 의식의 파편들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죽은 젊은이의 가족들이 그의 죽음을 통해 유인된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연극 속에서 앙상블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각기 튀는 연기로 이 장례식이 얼마나 튀는 죽음인가를 증명해 보인다. 가라앉은 장례식 분위기에 회상들은 또 얼마나 튀는 장면들이며 죽음과 마주한 현실의 삶,곧 빨래를 널거나 수박깨기를 하거나 조문객 맞이 준비 또한 얼마나 튀는가를 우리는 실감할 수 있다. 그러면서 죽음과 대칭을 이루는 목숨의 복선이 이 희곡문학의 구원의 창이다. 한국의 장례식이 좀 호들갑스럽고 수다스러운 데 비하면 유미리의 장례식은 그가 사는 일본문화 풍토의 영향을 엿보이게 한다. 그러면서 그는 또래의 세대의식인 차갑고 싸늘하고 비정하면서 세상사에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현대의식을 상처받기 쉬운 가슴으로 정리해 일련의 가족사를 서술해 나간다. 그 가족사는 일본문학의 사(私)소설적 형식의 극화라고 말할 수도 있다. 교포 극작가 주카 고헤이처럼 24살의 젊은 나이로 일본의 권위 있는 희곡상을 받은 유미리의 작품세계는 민중극단에 의해서 ‘유미리 연극전’으로 기획되어<해바라기의 죽음>(8.20-10.2일)도 선보이게 된다. 필자는 작가 개인의 인생편력에는 관심이 없다. 그가 삶의 고뇌에 찌들었다 하더라도 작품으로 형상화되지 않은 체험들은 한낱 너스레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뛰어난 작가를 만난 기쁨을 누려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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