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의 젊은 신사 클라렌스가 주말에 뉴욕을 방문한다.
그는 사랑스러운 흑인 소녀 트와일러와 그녀의 남자친구 마르세이를 만난다.
그들은 금방 친하게 되어 클라렌스의 호텔 방으로 가서 술을 마신다.
저녁이 되면서 클라렌스는 그들의 사진을 찍고, 그들이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며 신문클립과 자신의 사진을 보여준다.
결국 클라렌스는 그들의 앞에서 "셔츠"를 입고 끔찍한 변신을 한다.
클라렌스의 성격의 변화가 작품의 중반 이후 흐름을 바꾼다.
어설픈 사낸줄 알았던 그는 같이 어울리는 마시란 청년과
트와일러란 흑인여자의 은밀한 사랑에 흥분하여 돌변한다.
처음엔 지성적인 음성으로 안도감을 주는 남부억양으로 말하지만
셔츠를 입은 후부터는 돌변.
그는 젊어서 어린소녀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무자비한 사이코적인
성도착증 환자인 것이다. 과연 이 두 남녀는 어찌 될까?
1956년 7월코네티컷 주 오닐기념 극장에서 초연
극단 창고극장 공연작품, 10월12일~22일 삼일로창고극장 이원경 연출로 초연
이 작품을 현재의 시점(2018년)에서 들춰봐도 별로 작품이 초연될 1950년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여기에서 보여지는 사회의 또한 개인의 문젯점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맥락에서 보여지기에, 단지 시점과 상황이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충분히 극복되어질 것으로 보인다. 즉, 불편한 진실이지만... 이런 작품도 현재 시점에서 공연되어도 충분히 어필이 될 것으로 확신이 드는 작품이라 하겠다.
멀피는 이 작품 ‘셔츠’에서 마치 땅속으로 흐르는 물처럼 미국사회의 밑바닥을 흐르고 있는 편견, 차별, 유폐 등에 대하여 작가의 예리하고 냉혹한 메스를 가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미국사회의 모습에서 멜피의 분노의 시선을 느낄 수가 있다. 자가는 한 겹을 벗기면 어떤 미국인이든 간에 서로 같다는 생각에서 선의를 상징하는 백색 칼라를 가리키는 백색셔츠에서 종교적, 인종적 편견과 차별의 상징인 알로하셔츠로의 전환되는 모습을 클라랜스의 인간성을 통해 그리고 있다. 멜피는 “뉴욕의 지하창고 다락방에선 전혀 중압을 주는 일은 없다. 사람들은 관객과 함께 예술을 탐구할 수 있고 관객 앞에서 실수를 범한다 해도 관객을 위해 그 실수를 시정해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실험을 위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실험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일이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창작의 정열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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