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미하일 불가코프 '적자색 섬'

clint 2015. 10. 31. 09:26

 

 

 

 

 

 

불가코프의 희곡<적자색 섬>은 1928년 12월 11일 A. 타이로프의 연출로 모스크바 카메르니 극장에서 초연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연극에 대한 공식 평단의 평가는 부정적이었고, 결국 희곡은 상부의 압력과 언론의 거센 반대 여론으로 인해 1929년 6월, 60여 회의 공연을 끝으로 상연 금지 처분을 받게 된다. 이로부터 반세기가 훌쩍 지난 뒤인 1988년에야<적자색 섬>은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되는데 이는 사라토프 아카데미 드라마 극장의 연출가 알렉산드르드제쿤에 의해서였다. 희곡의 출판 역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적자 색 섬>이 활자본으로 첫 선을 보인 때는 1968년으로, 뉴욕의 《New Journal)》(통권 93호)을 통해서였다. 러시아에서는 이보다 훨씬 뒤인 1987년, 잡지《민중의 우정>에 희곡이 처음으로 게재되기에 이른다.
<적자색 섬>은 희곡으로 창작되기 이전인 1924년 베를린의 신문《전야(On the Eve)》에 동명의 풍자 단편으로 발표된 바 있다. '미하일 불가코프가 이솝의 언어로 불어 본에서 번역한 쥘 베른 동지의 소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소품은, 과장되고 우스운 풍자로 가득한데, 이후 창작된 동명의 희곡 작품에 비하면 당연하게도 상당히 단조롭다. 희곡 속 등장인물인 극작가 디모가츠키의 창작극<적자색 섬>은 이 단편의 모티프를 상당 부분 취한 것이다. 깊이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미래 희곡의 단초가 발견된다는 점에서 이 단편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불가코프가 직접 “드라마적 팸플릿”이라고 정의한<적자색 섬>은 작가의 희곡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이 자정치적 경향성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작품으로, 그 예술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무엇보다도 희곡이 겨냥한 비판의 표적이 너무도 분명하게 설정된 때문일 텐데,<적자색 섬>을 가득 채우고 있는 1920년대 소비에트식의 조야한 삼류 좌익혁명 극에 대한 열띤 패러디와 예술가의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검열 제도에 대한 신랄한 비난이 시대 풍자극이라는 한정된 틀로 보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보통 풍자극은 해당 시기 당대의 관객들에게 많은 인기를 누리다가 차츰 그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적자색 섬>이 갖는 밀도 높은 시사성, 당대성, 암시, 패러디 효과 등이 장점인 동시에 한계로 작용함으로써 극은 오늘날 그 시의성을 상실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혁명의 열기가 가라앉으면서 점차 경화되어 가는 소비에트 연극계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예술적 고발장으로서의 희곡의 가치는 폄하되어서는 안 되며, 이런 맥락에서<적자색 섬>은 마야콥스키의 미래주의 풍자극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초기 소비에트 예술계의 실상을 가늠케 해주는 흥미롭고 중요한 텍스트라는 점을 밝혀 둘 필요가 있다.
물론 희곡의 의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적자색 섬>의 선명한 메시지 뒤에 숨겨진 불가코프의 인간에 대한 성찰과 뛰어난 희극적 재능까지 함께 읽어 낸다면 희곡은 1920년대 소비에트 시사 풍자극의 한계를 넘어, 예술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한 편의 고전 작품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적자색 섬>의 구성에서 가장 눈에 띄는 극중극 형태는, 패러디를 용이하게 함과 동시에 당대 극장의 부조리하다 못해 코믹한 현실을 고스란히 재현해 내는데 큰 몫을 한다. 희곡에 붙은 부제 '겐나디 판필로비치의 극장에서 있었던 쥘 베른 동지 희곡의 총리허설’이 암시하듯, 희곡의 줄거리는 극단장 겐나디 판필로비치가 디모가츠키의 창작 희곡<적자색 섬>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리허설 과정을 골자로 한다. 우선 프롤로그에서 상부의 사전 검열을 받기 위해 급조된 리허설을 준비하는 과정이 유머러스하고 활기차게 제시된 뒤, 이어지는 4개의 막은 전부 디모가츠키가 가져온 희곡의 총리허설에 바쳐진다. 유럽 제국주의와 제3세계 간의 투쟁이라는 당시 익숙한 주제를 다룬 디모가츠키의 유쾌한 풍자극이, 레퍼토리총국 위원장 사바 루키치에 의해 '반 혁명적인 희곡'으로 판명되어 상연 금지 처분을 받게 되면서 4막이 끝난다. 고조된 긴장감 속에서 상연 허가를 받기 위한 극단 장의 필사적인노력이 펼쳐지는 무대가 에필로그다. 여기서 극작가의 풍자극은 권력의 압력에 의해 세계혁명을 부르짖는, 당파성과 민중성으로 점철된 저질 선동 극으로 전락하고 만다. 겐나디와 디모가츠키의 운명을 손에 쥔 권력자 사바 루키치는 당시 '레퍼토리 총국' 이라는 이름으로 횡행하던 관료주의의 폐해와 상부의 폭력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작가의 창조적 상상력과 예술적 권리를 구속하고 탄압하는 당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이토록 경향적인 작품인<적자색 섬>에 상연 허가가 났다는 사실 자체가 불가코프의 말대로 '불가사의' 였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희곡이 상연되었던 1920년대 말 소비에트가 풍자라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불가사의한 기적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편, 희곡의 메시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때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예술가인 겐나디와 디모가츠키 모두 사바 루키치로 상징되는 권력의 일방적인 희생양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바 루키치와 단원들을 다루는 겐나디의 태도는 그가 당시 극장의 불합리한 관행에 익숙한 기회주의자임을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약자인 단원들에게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는 독재자와 같은 연출가다. 그가 '극장을 사원'으로 여기는 예술지상주의자의 이상으로 극장을 지켜 냈다기보다는, 지나친 극장 운영비 절감과 권력에 영합하는 처세술로 버려 왔음이 희곡 곳곳에 암시되어 있다.
디모가츠키 역시 겐나디의 말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가로 보기는 어렵다. 익살과 기지 가득한 디모가츠키의 풍자극은, 그러나 작가 자신의 언급대로 '혁명에 관한 알레 고리'를 보장하기에는 한참 모자란다. 혁명의 붉은색과 수구 세력의 상징인 백색, 유럽 제국주의와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대비, 케렌스키 수상과 유사한 키리-쿠키, 레닌의 혁명을 암시하는 듯한 카이-콤과 파라-테테의 행적 등은 모두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어 진부하기 짝이 없다. 인물들은 등장인물 소개에서 이미 드러나 있듯, 긍정적인 인물과 부정적인 인물이라는 지극히 평면적인 대립 구도를 따라 움직이는 탓에 이들 간의 심리 드라마는 애초부터 불가능 하다. 그 결과 극중극은 차라리 한바탕 소극에 가깝다.
새로운 극장을 만들어 보겠다는 작가의 야심 찬 선언은 결국 기존의 클리세를 답습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극중극을 통해 밝혀지면서 디모가츠키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는 혁신을 외치나 자기도 모르게 클리세에 집착하고 마는, 자신만의 비전을 갖지 못한 말뿐인 초라한 예술가에 불과하다. 애초 자신의 작품보다 훨씬 더 저급하게 변질된 연극의 결말에 절망하는 대신, 상연 허가를 받았다는 이유로 기뻐하면서 미래의 부와 명예를 상상하는 작가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작가의 속물성은 그가 맡은 극중 인물 키리-쿠키의 교활한 성격과 겹쳐지면서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진정 고뇌하고 사색하는 인물은 불가코프의 희곡<적자색 섬>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겐나디뿐만 아니라 디모가츠키, 그리고 배우들이 빈번히 인용하는 고전 문구들이 이러한 한계를 직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들의 박식함과 재치가 오랜 세월 연극계에 몸담아 온 자들의 연륜과 순발력을 증명하며, 또한 연극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는 둥의 순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이들 장면은 예측 불가능한 실제 현실에 대처할 만한 사고력과 반성력을 지니지 못한 인물이, 현실을 예측 가능한 허구적, 연극적 상황으로 대체해 타인의 말로 규격화하고 마는 인식의 한계를 드러낸다. 극에서 인용되고 있는 그리보예도프나 셰익스피어, 수마로코프, 푸시킨 등은 그래서 어느 순간 고전의 매력과 힘을 상실하면서 공허한 말장난으로 변질되고 만다.
그러나 작가 디모가츠키 속에 투영된 불가코프의 전기적 사실 - 궁핍한 모스크바 생활이나 유년 시절의 연극 체험- 과 디모가츠키가 절규하는 차츠키의 명대사를 인용하는 에필로그의 장면에서 감지되는 얼마간의 비극적인 정조는, 이 재능 없는 예술가의 형상에 보다 더 복잡 미묘한 뉘앙스를 부여한다. 덕분에 풍자와 패러디 정신으로 점철된<적자색 섬>의 소란스러운 웃음 뒤로 권력과 투쟁하는 예술가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작가의 묵직한 사색이 묻어난다. 이 주제에 대한 불가코프의 관심은 그의 후기 역작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 보다 더 풍요로운 결실을 맺는다.<흑마술사>라는 제목으로 역작의 초고 1장이 쓰였던 시 기가<적자색 섬>의 창작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희곡은 '재능 있는 작가의 장난'으로 그치고 만 작품이 아니다.<적자색 섬>은 불가코프 창작을 관류하는 예술가의 자유와 권력의 문제 - 러시아 고전의 유구한 주제이기도 한 - 를 다루고 있는 묵직한 작품이다. 오늘날 불가코프가 러시아 고전의 전통을 잇는 작가로 인정받는 것은 그래서 지극히 자연스럽다.
더불어 그 무엇보다도 무대를 사랑했던 불가코프의 연극을 향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적자색 섬>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모르핀 없이 살수 없는 모르핀 중독자와 마찬가지로 극장 없이는 살 수 없다던 극장 중독자 불가코프의 개인적 체험이 없었더라면, 관객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무대 뒤의 모습을 그토록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되살리는 희곡 속 장면들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역시 사실적으로 묘사된, 극작가와 연출가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은 불가코프와 동시대 연출가들 사이의 갈등을 보는듯해 더욱 흥미롭다. 또한, 지겨울 틈 없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희곡의 웃음 포인트는 극작가 불가코프의 희극적 재능을 한충 빛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