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니트 안드레예프의 희곡<생각>이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1914년의 일로, 이 희곡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동명의 단편소설이 발표되었던 1902년 이후 12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였다. 안드레예프가 자신이 12년 전에 썼던 단편소설을 희곡으로 재탄생시키려는 생각하게 된 것은 그의 범심론 극 이론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사상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연극계가 풀어야 할 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해 1910년대에 집필했던 논고 '연극에 관한 서한들'에서 범심론 극에 대해 역설하면서, 허기도, 배고픔도, 그리고 야심도 아닌 바로 인간의 '생각'이야말로 범심론극에서 우리들의 삶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새로운 주인공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통과 기쁨과 투쟁 속에 있는 인간의 '생각'이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삶을 가감 없이 보여 줄 수 있는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사실주의극과 조건극에 빠져 있었던 시기를 거친 안드레예프는 변화하는 현대의 삶 속에서 극작가인 자신의 의무를 범심론극의 창조와 발전에 기여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주장하고 있었던 새 시대의 연극은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드러나는 기분'을 표현하는 극이 아니라, '숨어 있는, 전체 적인 기분'을 나타낼 수 있는 극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안드레예프는 철학 용어인 '범심론'을 문학 이론에 도입하게 된다.
물활론, 또는 범신론과 종종 헷갈려 이해되기도 하는 범심론의 뿌리는 고대의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범심론'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생물뿐만 아니라 무생물까지도 영혼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각자의 고유한 생명과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각각의 '생명체'들은 태초에 하나의 커다란 '우주혼'의 구성 성분들이었으며, 그렇기에 세상 만물은 각각 따로 떨어져 존재하나 궁극적으로는 모두 다 하나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범심론에 따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항상 개별적인 실체로 형상화되어 있으며, 이러한 실체들 안에서 이 세계와 그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 생명이 없거나 피상적인 것은 없다는 뜻이다. 이런 범심론이 안드레예프 작품 세계에서 형성되고 발전해 나간 것은 1890년대에서 1900년대 사이의 일이다. 그러나 안드레예프가 의식적으로 자신이 정립한 문학 이론으로서 범심론을 완성해 가고 도입했던 것은 1910년대의 일로, 이 시기에 집필된 희곡들로는 그 발전과정으로 봤을 때 초기 범심론 극이라 정의 내릴 수 있는<예카테리나 이바노브나>와<스토리친 교수>, 중기 범심론극으로 볼 수 있는<생각>, 그리고 완숙기 단계의 범심론극인<따귀 맞는 이>와<개의 왈츠>가 있다.
언뜻 보기에 이 작품의 주제는 배신당한 사랑에 대한 처절한 복수인 것 같다. 그러나 내면을 더 파고들어 가보면,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는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개인이 느끼게 되는 극도의 고독이다. 다른 인간들과 조화, 세상 만물과 조화 속에서 심적 안정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정서적 만족을 찾아야할 인간들은 점점 더 산업화되어 가고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속에서 너와 나의 하나 됨을 발견하지 못한 채 스스로의 생각 안에 갇혀 버리고 만다. 그리고 유일하게 자신과 함께하는 스스로의 고독을 우주와 내가 하나임을 증명해 줄 유일한 친구라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갇힌 채 자신의 고독안에서 쓸쓸하게 자멸해 간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안톤 이그나티예비치 케르젠체프로 그는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타티야나를 어릴 적 친구이자 이제는 저명한 작가로 성장한 알렉세이 콘스탄티노비치 사벨로프에게 빼앗겼다는 질투심에 사로잡힌 채 두문불출하며 오랑우탄 실험에만 빠져 있는 의학박사다. 이렇듯 케르젠체프는 자이푸르에게 자신의 절망적인 과거를 투영하고 있다. 그는 타티야나를 사랑하고 있었던 때의 자신을 왕이었던 시절 자이푸르처럼 최고의 존재로 기억하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케르젠체프에게는 갑자기 자기 앞에 벽처럼 나타나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을, 즉 완전히 행복해지는 것을 방해한 존재가 바로 사벨로프였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청혼한 타티야나가 반해 버린 남자다. 또한 자신의 어릴 적 친구이자 경쟁 상대이기도 했다. 그가 나타나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앗아 가버린 것이다.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하고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타티야나를 사벨로프가 앗아간 일은 케르젠체프에게 자신의 뇌를 멈추게 할 만큼 치명적으로 작용한 '어떤 끔찍한 일'이 된다. 케르젠체프에게 그녀는 단순히 사랑하는 여인을 넘어선다. 그녀는 그에게 유일한 가족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가 자라면서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버지에 관한 언급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불행해 보인다는 크라프트의 말을 케르젠체프는 격하게 부정한다. 그는 자신에게는 '바로 이것', 즉 생각이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고 행복하다고 주장한다. 크라프트와 나누는 대화에서 자신의 근본적인 상처를 드러내게 된 케르젠체프는 배신당한 사랑 때문에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 보복할 것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작품에서 불행한 사람은 케르젠체프만이 아니었다.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세 사람, 케르젠체프와 사벨로프, 그리고 타티야나 모두 나름의 이유로 불행했던 것이다. 글 쓰는 직업에 대해 환멸을 느낀 사벨로프는 부인인 타티야나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항상 남편의 모든 일을 도와주며 정성으로 남편을 돌보는 타티야나 역시 그를 도와줄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 그녀 역시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낀다. 타티야나와의 대화중에 케르젠체프는 자신의 상처를 언급하며, 그녀로부터 거절당했던 게 그에게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만큼의 충격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케르젠체프는 자신이 쓰고 있는 글의 내용인 것처럼 자신의 계획을 타티야나에게 상세하게 이야기해 준다. 그의 의도는 타티야나를 경악하게 한다. 또한 이 대화를 통해 케르젠체프가 저지르게 될 살인이 사실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타티야나가 알아줬으면 하는 지극히 감성적인 원인에서 출발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살인을 저지른 후 케르젠체프는 내적 혼란에 빠진다. 미친 척하며 살인을 저지르고 정신병자로 인정받아 감옥 대신 병원에서 잠시 머물다 다시 자신의 안락한 집으로 돌아오게 될 거라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완벽했던 그의 계획이 살인을 저지른 직후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조종할 수도 있고 충분히 제어할 수도 있다고 믿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 역시 감성에 휘둘리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평범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정신병원에서 만난 마시는 그에게 빛과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정상인들로 가득 찬 바깥세상에서 사람들의 속물근성에 치이며 깊은 상처를 받았던 케르젠체프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미친 사람들로 가득 찬 정신병원에 들어가서야 자신의 영혼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를 발견하게 된 셈이다.
케르젠체프를 찾아와 남편을 죽인 그에게 도리어 자신을 용서해 달라는 타티야나에게 케르젠체프는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하며 매달린다. 하지만 타티야나는 매정하게 그를 떠나 버리고, 홀로 남은 케르젠체프는 공포와 외로움을 호소하며 절규한다.
스스로 유일한 친구로 생각했던 생각은 그를 배신해버렸고, 자신이 그토록 존중해 마지않았던 고독은 이제 공포의 대상이 되어 병실에 갇힌 그를 위협한다. 평생 유일한 사랑이었던 여자는 자신을 내버려둔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으며, 이제 그는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뱃속 깊이 차오르는 절망을 느끼며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자신의 생각을 완벽하게 조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들에게 멋지고 통쾌하게 복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한 인간의 끝이 없던 오만은 그 모든 게 사랑 때문이었다는 이유로도 용서받지 못했다. 스스로의 생각을 조종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사실은 한 나약한 인간이 자신의 생각에 조종당하고 있었다는 써늘한 진실보다 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한 인간이 끝내 그 방법을 깨우치는 곳이 '멀쩡한 사람들로 가득 찬 바깥세상이 아니라 '미친' 사람들로 가득 찬 정신병원이 라는 신랄한 진실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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