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그리보예도프 '지혜의 슬픔'

clint 2015. 10. 30. 16:30

 

 

 

 

 

 

러시아 극작가 그리보예도프의 4막 희극(喜劇). 1822∼24년 작. 1829년에 일부가 초연되었고 1831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전작(全作)이 초연되었다. 상류 귀족계급에 대한 신랄한 비판ㆍ풍자 때문에 작자의 생존 시에는 상연ㆍ간행이 금지되었다. 본문이 수백 부에 달하는 사본(寫本)으로 유포되어 1858년 국외에서, 1862년 러시아 본국에서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진보적 청년층의 환영을 받아 수백 부에 달하는 사본이 유포되었다고 한다.

 

 

 

 

줄거리
1820년대의 모스크바. 3년 만에 외국유학을 마치고 애인 소피아를 만나려고 모스크바 고향집에 돌아온 차쯔끼가 예전에 알았던 팜소프 가(家)에서 본 것은 거만과 추종, 인습과 우매의 세계였다. 그는 집에 모여드는 상류사회인사들의 무지ㆍ위선ㆍ탐욕ㆍ비굴을 혐오하여 무도회에서 이를 맹렬히 공격한다. 그러나 추악으로 가득 찬 상류계급을 매도하지만, 오히려 애인에게까지 광인(狂人) 취급을 당하고 상심하여 절망에 빠진다.
외국에서 새로운 사상을 배운 청년 차쯔끼는 조국 러시아로 돌아오자마자 첫사랑의 대상인 소피아의 집부터 찾아간다. 그러나 의외로 소피아는 냉담했다. 차쯔끼는 전에 소피아가 위트와 유머를 즐겼던 사실을 생각해 내고, 그 수법을 써보았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녀는 이미 차쯔끼를 사랑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소피아의 아버지 파무소프는 딸을 스카리주프 대령과 결혼시켜 장차 장군의 부인이 되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날 밤 상류사회의 무도회가 열렸다. 거기서 차쯔끼는 소피아의 애인이 아버지의 비서인 몰차린임을 알게 되었다. 이윽고 무도회가 시작되었다. 관료적인 파무소프와 미련하면서도 오만한 스카리주프, 비굴한 몰차린과 경박스러운 여러 사람들, 한마디로 구역질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무도회가 끝나자 소피아는 하녀 리자를 시켜 몰차린을 배웅했다. 몰차린은 리자를 껴안고 사랑을 호소했다. 그 현장을 처음부터 지켜본 소피아는 그제야 남자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자기의 참다운 애인은 차쯔끼임을 깨닫게 된 소피아는 진심으로 차쯔끼를 부르고 있었다. 때마침 차쯔끼가 그 자리에 나타나자 소피아는 달려가 그를 힘껏 껴안았다. 그러나 바로 그때 소피아의 아버지가 등장하여 그 광경을 보고는 노발대발했다. 그러면서도 "밤중이라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무엇보다 다행한 일이야. 내 딸은 순결한 여성으로 결혼할 수 있게 되었어."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감수성과 지성이 넘치고 거기에다 위트까지 넘치는 젊은이 차쯔끼는 이렇듯 위선으로 가득 찬 도덕과 풍조를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힘으로 이 현실을 깨뜨려 고칠 수 없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아울러 소피아란 여성은 자기 자신이 온갖 정열을 바쳐 사랑할 만한 값어치가 없는 여성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결국 자기의 절망스러운 감정을 아무 곳에도 쏟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차쯔끼는 유일한 돌파구를 찾아 끝없는 유랑의 길에 나서게 되었다. 다음과 같은 말 한마디를 남기고서. "주인이면서 하인, 주인이면서 종, 마누라의 심부름 꾼- 이것이 모스크바 스타일의 이상적 남편이란 말이지?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이 정도만으로 충분합니다.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당신과 헤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한없이 명예롭게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지성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하면서도 무력한 지식인의 전형적인 인물을 창조하였다. 고전극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이를 극복한 새로운 형식의 희극을 창출했다는 점에서 19세기 리얼리즘 연극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작중에 나오는 신랄한 경구(警句)들은 후세에 격언으로 자주 인용된다. 이 작품은 봉건적 농노제의 러시아에 대한 통렬한 풍자희극으로서 극중 대사가 관용구처럼 되고 등장인물의 이름이 보통명사가 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엄격한 검열을 받았고, 작자 생전에는 공연이 허용되지 않았다. 소피아는 고전 희극 속에서는 보기 드문 전형적인 인물이 아니며 즉, 이상화되지도 않고 희화되지도 않은 인물이다. 여주인공인 소피야는 이상하고 무미건조한 낭만적인 취미를 가진 인물로 묘사되며, 희극에서 주요한 힘을 가지고 플롯은 그녀의 행동에 의해 진전된다. 직선적이고 강력한 성격을 가진 소피야는 환경적으로는 자유롭지 못한 인물로 형상화되고 있다. 작품 내에서 그녀는 경박한 프랑스풍의 소설에 빠져있고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규범과 습속을 익힌다. 차쯔끼가 스깔로주뿌가 어떠냐고 물을 때 그녀의 대답은, "제 소설의 주인공은 아니에요." 라고 말하는데,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자신의 환상 속의 남자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랑문제에 있어서도 어릴 적 연인이었던 차쯔끼를 잊고 아버지가 원하는 스깔로주쁘를 마다하며 그녀는 어린이며 하인으로써의 남편 상을 원한다. 쁠라똔이 그의 아내 나딸리아에게 하는 대사에도 있듯이, 소피야가 원하고 당시 여성들이 원하던 남편상의 모습이 쁠라똔을 통해 묘사된다.
"난 당신의 몸종이니 밤새도록 붙어있어야겠지. 지금이라도 원한다면 춤이라도 추겠소"
"난 노예노릇이 고달프다는 거야. 누가 우릴 결혼하라고 했는지..."

 

 

 

 

알렉산드르 그리보예도프(Aleksandr Sergeevich Griboedov) 러시아의 시인·극작가.
1795.1.15 ~ 1829.2.11
모스크바 출생. 귀족 집안 출신으로,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역사 ·정치 ·경제 ·철학 ·외국어에도 능한 교양인이었다. 모스크바대학 재학 중에 미래의 데카브리스트(12월 당원)들과 교분을 맺었다. 1812년 조국전쟁(나폴레옹 전쟁) 때에는 지원해서 종군하였다.
평생을 문학에 종사하려 하였으나 근친들의 간곡한 희망으로 외교관이 되었다. 1826년에 데카브리스트의 봉기사건에 연좌되어 체포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가, 페르시아 공사로 재임 중 반러시아 세력이 일으킨 폭동에 희생되어 죽었다.
초기에 있었던 일련의 희극작품을 제외하면 남아 있는 작품이 별로 없다. 대표작으로 희극 《지혜의 슬픔》(1822∼1824)이 있는데, 이 작품 하나로써 그는 감상주의와 낭만주의에서 탈피한 사실주의 연극의 창시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