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미하일 불가코프 '조야의 아파트'

clint 2015. 10. 30. 15:05

 

 

 

 

 

 

 

<조야의 아파트>는 1920년대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의 러시아는 스탈린의 독재 하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불가코프는 <조야의 아파트>를 통해 소비에트 사회의 저류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부정부패를 폭로한다.
속물적인 35세의 미망인 여주인공 조야의 아파트는 낮에는 평범한 의상실이지만, 밤마다 문란한 파티가 벌어진다. 몰락한 귀족이자, 조야의 연인인 오볼리야니노프, 약삭빠른 사기꾼 아메치스토프, 하녀 마뉴시카를 두고 다투는 중국이민자 가솔린과 케루빔 등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기형적이다. 불가코프는 러시아 사회 전체를 상징하는 공간인 조야의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다수의 민중을 위한 혁명이 결국은 또 다른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조야의 아파트>는 3막으로 구성된 희곡이다. 이 희곡의 배경은 1920년대의 모스크바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혁명 직후 소비에트 시대의 러시아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불가코프는 1925년 9월에 <조야의 아파트>에 대한 선금을 바흐탄고프 극장으로부터 받은 후 1926년 1월 1일에 바흐탄고프 극장과 <조야의 아파트> 집필 계약을 체결했다. 불가코프가 <조야의 아파트>의 줄거리에 대한 영감을 얻은 것은 레닌그라드의 <붉은 신문>에 실린 기사에서였다. 그 기사는 조야 부얄리스카야라는 사람의 카드 도박장을 경찰이 수색했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그는 1924년 10월 <붉은 신문>에 실린 아델 아돌리포브나 트로스탼스카야 소송 사건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트로스탼스카야는 봉제 공장과 네일 마사지 숍으로 위장한 매춘업소와 불법 카드 도박장을 운영한 사건이었다. 불가코프가 모티브를 얻은 또 하나의 소재는 1921년 봄 조야 페트로브나 샤토프라는 여인이 불법 카드 도박장 운영 혐의로 그 도박장에 와 있던 유명한 시인인 아나톨리 마리옌고프와 세르게이 예세닌과 함께 체포된 사건이었다. 조야 페트로브나 샤토프가 <조야의 아파트>의 조야 데니소브나 펠리츠의 모델이 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1926년 1월 11일에 불가코프는 <조야의 아파트> 초고를 완성하였다. 그가 바흐탄고프 극장 측 인사들에게 초고를 건네주자 극장 측은 이 작품에 만족을 표했다. 그 뒤 불가코프는 극장 측과 의논하면서 작품을 다듬어나갔다. 애초에 4막으로 구성되었던 <조야의 아파트>는 3막으로 수정되었고 몇 구절은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삭제되었다. 시체가 등장해서 유행가를 부르는 장면이 이렇게 삭제된 구절 중 하나이다.
<조야의 아파트>는 바흐탄고프 극장에서 1926년 10월 28일에 초연되었다. 그러나 초연 후에 <조야의 아파트>의 결말은 중앙상연위원회의 정서에 맞게 수정되었다. 법과 노동자, 농민, 경찰의 승리가 더욱 부각되었고, 아메치스토프와 케루빔이 아파트를 무사히 빠져나오는 초고의 내용을 수정해서 그들이 경찰에 체포되는 것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1927년 11월 9일 <조야의 아파트>는 상연이 중단되었다. 1928년 4월이 되어서야 상연이 재기되었다. 198번 상연된 후 중앙상연위원회의 최종 결정에 따라 1929년 3월 17일에 상연이 금지되었다.
<조야의 아파트>는 불가코프 생전인 1929년에 베를린에 있는 한 출판사에서 독일어로 번역 ․ 출판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어로 처음 출판된 것은 1969년에 <새로운 잡지>(뉴욕, 1969∼1970, 97호, 98호)에서였다. 소련에서 처음으로 출판된 것은 <현대 연극>(1982, 2호)을 통해서였다.

 

 

 

 

불가코프는 이 희곡이 초연되기 3주 전에 잡지 <새로운 관객> 40호에 실린 글에서 <조야의 아파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이것은 비극적인 희극이다. 그 속에서 주인공들은 가면을 쓰고 오늘날 모스크바에서 일어나는 네프(신경제정책)파로 인해 생기는 일련의 사건들을 펼쳐 보여준다.
당시 사회를 풍자하고 진실을 찾고자 했던 불가코프는 <조야의 아파트>에서 조야라는 애칭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조야를 통해 우리에게 통쾌한 웃음과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조야의 아파트'는 1926년 초연 당시에 '비극적인 광대극'으로 소개된 작품으로 네프 시기의 소비에트 세태를 다룬 작품이다. 네프 시기 소비에트의 모습은 모스크바에 대한 희망과 절망, 삶과 괴저가 뒤얽혀있는 부조리하고 그로테스크한 환영을 보는 것 같은 삶이 그려져 있다. 그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돈과 쾌락을 위해, 어떤 사람들은 겨우 얻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또 어떤 사람들은 모스크바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인다. 내전을 다룬 작품들에서처럼 작가는 어느 한쪽의 편을 들고 있지 않는다. 불가코프는 그들 모두를 우스꽝스럽고 기형적인 인간으로 묘사했고, 또 그들 모두를 동정하기도 한다.
작품에서는 소비에트 체제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전 백작 오볼리야니노프에 대한 작가의 동정이 더 많이 느껴지는데, 그건 소비에트에서 그 존재를 부정당한 인텔리로서 갖는 동정이라 봐야 될 것 같다. 굳이 소비에트 러시아가 아니더라도, 현실의 부조리에 대해 민감하고 그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갖는 동정이다.
불가코프는 1929년 〈조야의 아파트〉에 공연 금지 명령이 내려지고 몇 년 후에 작품을 다시 수정한다. 이 작품은 1926년 판본으로 번역된 것이다. 1933년에 불가코프가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조연출로 일하고 있었을 때프랑스에서 일한다는 라인하르트라는 여배우에게서 편지를 받고, 〈조야의 아파트〉의 불어판 출간과 파리에서의 공연 계약 건으로 작품을 수정한다. 그때 다시 읽어보니까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더더기로 보이는 대사들도 좀 있었고. 그래서 그런 대사들과 몇몇 장면들을 삭제하고, 일부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바꿨다. 이를테면 오볼리야니노프는 아볼리야니노프로, 할렐루야는 포르투페야로 바꿨다. 전체적으로 보아 크게 바뀐 것은 없다. 1934년 판본이 이전 판본보다 좀 더 완성도가 높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거친 표현들이 다듬어지면서 풍자의 날이 다소 무뎌졌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용상의 변화를 지적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이를테면 전체적으로 음울한 분위기가 짙어졌고. 오볼리야니노프의 고독이나 소비에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의 내면에 좀 더 비중을 두었다고 보는 견해들도 있다.
불가코프는 "1930년대에는 제 상황이 오볼리야니노프와 더 비슷해졌어요. 전 소비에트에는 필요 없는 작가라는 판결을 받은 전 작가였지만, 비자 발급조차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는 없지만 주어진 자리는 지키라는 거였죠."

 

 

 

 

미하일 불가코프(Михаил А. Булгаков, 1891~1940)
미하일 아파나시예비치 불가코프는 1891년 5월 15일 키예프 신학교 교수 가정에서 키예프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근무했다. 혁명 후부터 모스크바에서 여러 신문과 잡지에서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주로 소비에트 정권에 비판적인 작품을 썼는데 그로 인해 스탈린 치하에서 그의 희곡 작품들은 여러 번 상연이 금지되는 아픔을 겪었다. 결국 그는 1930년 3월, 스탈린과 소비에트 정부에게 자신이 소련을 떠날 기회를 주거나 극장에서 생계를 위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호소하는 편지를 쓴다. 한 달 후에 스탈린은 불가코프에게 전화를 걸어 극장 일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해 준다. 그 후 불가코프는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조감독으로 일하게 되었지만, 그의 작품들을 출간할 수는 없었다.
1938년, 희곡 <바툼>이 스탈린이 중심인물이라는 이유로 상연 금지되자 그는 1929년에 집필을 시작했다가 중단했던 장편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Мастер и Маргарита)≫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이 작품의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부은 불가코프는 1940년 2월에 작품을 탈고하고 한 달 후인 3월 10일 모스크바에서 숨을 거둔다. 그러나 이 소설은 출간되지 못하고 27년이 지난 1967년이 되어서야 출간될 수 있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운명의 알들≫(1925), ≪개의 심장≫(1968), ≪백위군≫(1925), 희곡 <투르빈가의 나날들>(1926), <조야의 아파트>(1926), <적자색 섬>(1927), <도주>(1928), <몰리에르에 대한 희곡>(1929), ≪거장과 마르가리타≫(196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