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노벨상을 수상한 하우프트만의 풍자와 재치가 돗보이는 희극이다. 당시에는 반응이 신통찮았는데 최근에 재평가되는 작품이다.
1893년 베를린에서 초연되었으며, 완결된 5막극의 전통적 드라마 형식을 거부하고 장면의 구분 없이 4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도둑희극(Diebskomödie)’이라는 부제가 붙은 작품이지만 도둑이 잡히지 않은 채 끝나는 열린 결말을 보여준다.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두 세계는 볼프가족으로 대변되는 ‘늪지의 야생초’와 같은 소시민 집단과 베르한으로 대변되는 관료주의적이고 독단적인 지배계층의 세계이다. 두 세계의 이질성은 볼프 가족이나 여타 인물들이 구사하는 언어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작품의 무대인 베를린의 방언이 주로 구사되며, 매끄러운 완전한 대사가 아니라 말더듬이나 불완전한 문장 등을 그대로 재현한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특정한 환경에 노출된 각 개인의 기질을 정확하게 관찰하여 기록하고자 했던 자연주의적 특징을 보여준다.
1막의 장소는 볼프의 누추한 집, 시간은 한밤중이다. 볼프의 가족은 밀렵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볼프 부인은 밀렵으로 잡은 짐승을 비싼 값에 흥정해서 뱃사람 불코브에게 넘긴다. 그녀의 딸 레온티네는 한밤중에 많은 양의 장작을 옮기라는 크뤼거의 지시에 반발해서 집으로 도망쳐 와서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볼프 부인은 크뤼거 집 앞에 장작이 놓여있다는 얘기를 듣고, 남편 율리우스에게 그 장작을 집으로 옮겨오도록 한다. 크뤼거는 장작 도난사건을 고발하지만, 지역 경찰서장 베르한은 사회주의자 플라이셔 박사를 잡아넣을 궁리만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사로운 도난사건에는 별 관심이 없다. 볼프 부인은 이어서 자신이 세탁부로 일하는 크뤼거 씨 집의 해리모피를 훔치기로 작정한다. 크뤼거 부인이 자신의 남편에게 값비싼 해리모피를 선물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으며 평소 관절염으로 고생하던 불코브가 그런 모피라면 얼마든지 큰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볼프 부인은 이 모피를 훔쳐다가 불코브에게 팔아넘긴다. 해리모피마저 도난당한 크뤼거는 경찰서장 베르한에게 이를 신고한다. 베르한은 해리모피를 입고 있는 허름한 뱃사공을 보았다는 목격자의 진술이 보고되나 정치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다. 그리고 우연히 그 자리에 있던 불코브에게 그런 사사로운 보고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무시한다. 크뤼거는 볼프 부인을 의심해서 행한 자신의 행동을 경찰서장의 집무실에서 도리어 사과한다. 이 사건의 범인인 볼프 부인의 도적행위는 발각되지 않은 채 오히려 “진실한 여인”이라는 칭찬을 받으며 작품은 막이 내린다.
'해리 모피'는 한 교활한 여인의 도둑질을 소재로 한 4막의 희극이다.
주인공인 세탁부 볼프 부인은 부자 크뤼거의 하녀로 있다가 도망 나온 어린 딸을 통해 정직, 근면만으로는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남 보기엔 계속 성실하게 일하면서 밀렵한 사슴을 팔아 돈을 벌기도 하고 크뤼거네 집의 장작더미와 해리 모피를 훔친다. 또 한편으로는 딸을 장차 배우로 대성시켜 호사를 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플라이셔 박사에게 각별한 호의를 베푼다. 박사의 동생이 베를린에서 극장 관리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우직하고 융통성 없는 자기 남편을 범행에 동참시키기 위해 애쓴다. “일단 부자가 되어 마차를 타고 다니면 그 돈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묻지 않아요." 라고 말하며 사기의 부도덕한 계획을 합리화한다. 그녀의 깜찍한 행동에 무능하고 어리석은 지방 판사 베르한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다. 판사는 그녀를 무한히 신뢰한 나머지 그녀가 우직하리만치 성실하고 정직하며 때로는 제법 사람을 볼 줄 아는 눈도 있다고 믿게 된다. 반면에 아무런 죄도 없는 플라이셔 박사에 대해서는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아주 위험한 정치적 인물로 간주해버린다.
베르한 판사의 부질없는 신경과민, 허무맹랑한 자기 망상에의 집착, 구제불능의 무딘 판단력과 어리석은 고집, 그리고 끝내 발각되지 않고 넘어 가는 교활한 볼프 부인의 도둑질 - 이 모든 것들은 법과 관의 우매함에 대한 조소이며 당시의 사회적 동향에 대한 예리한 풍자로서 작가 하우프트만의 다른 작품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주제이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직조공'이 가진 자들에 대한 갖지 못한 자들의, 상층계급에 대한 하층계급의 공개적이고도 전면적 도전이라면 '해리모피'는 같은 관계 속에서 은밀하고도 간교하게 진행된 게릴라전이다.
이 같은 처벌받지 않은 도둑질과 제 5 막이 없는 미완성의 결말은 전통적 도덕관념과 전통극의 관습에 익숙한 관객의 기대와는 사뭇 동떨어진 것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문학 사회학자 프란쯔 메링( 'Franz Mehring)의 말대로 베르한 박사가 부질없는 신경과민과 어리석은 판단으로 인해 쓸데없는 짓을 계속하는 것 외에도 이 작품에 필요한 해결이 더 있을까? 이와 길은 미해결의 결말은 「직조공」이나 「한넬레의 승천」을 비롯한 모든 이념 극에 일관하는 작가 하우프트만의 입장의 구현이다 하우프트만에 의하면 진정한 희곡에는 완성된 결말이 있을 수 없다. 삶이란 계속되는 투생으로서 거기에선 항상 새로운 변형과 무한한 행동양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전 시대의 극작품에서와 같은 계기적 해결은 현실의 삶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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