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현탁 '화무십일홍'

clint 2016. 12. 5. 14:19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 ▶ 열흘 붉은 꽃이 없다. 곧 어떤 성하거나 좋은 현상이 영구히 계속되지 못하고 조락되거나 변한다는 뜻.

 

헌애왕후(천추태후) [獻哀王后, 964~1029]

고려 경종의 비. 태조의 아들 대종(戴宗:추존왕)의 딸. 목종의 어머니. 헌정왕후와 친자매로 함께 경종을 받들었다. 외척인 김치양과 음탕한 생활을 공공연히 하며, 그 사이의 아들을 목종의 후계자로 삼기 위해 왕실의 유일한 후계자 대량원군 순(詢:헌정왕후의 소생으로 뒤에 현종)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실패, 유배되었다. 태조의 아들 대종(戴宗:추존왕)의 딸. 목종의 어머니. 헌정왕후(獻貞王后)와 친자매로 함께 경종을 받들었으며, 외가의 성을 따라 황보(皇甫)라 하였다. 경종이 죽고 오빠인 성종이 즉위했다. 천추궁(千秋宮)에 있을 때, 외척인 김치양(金致陽)의 출입이 잦아 추문이 퍼지자 성종이 김치양을 유배시켰다. 997년(성종 16) 성종이 죽고 아들 목종이 즉위하자, 천추궁에서 섭정하여 천추태후(千秋太后)로 불렸다. 김치양을 유배지에서 불러 우복야 겸 삼사사(右僕射兼三司事)에 임명하여 음탕한 생활을 공공연히 하였으며, 그 사이에서 생긴 아들을 목종의 후계자로 삼기 위하여 왕실의 유일한 후계자인 대량원군(大良院君) 순(詢:헌정왕후의 소생으로 뒤에 현종)을 죽이려고 하였다. 1009년 병든 목종이 대량원군을 후계자로 임명하자 김치양이 궁궐에 불을 지르고 대역을 감행하려 했으나, 서북면도순검사 강조(康兆)가 군사를 이끌고 들어와 대량원군을 즉위시키고 김치양을 죽여 난을 평정하였다. 섬으로 유배되었다가, 뒤에 황주(黃州)에 내려가 여생을 보냈다. 천추태후는 경종의 황비로 동생인 헌정황후가 함께 경종의 황후가 되었다. 그러다가 목종이 2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경종이 붕어하자 성종이 즉위하였고 성종은 불교행사를 폐하고 연호도 폐하고 유교통치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성종이 3성6부 체제를 만들었는데 이 제도는 황제국가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 이다. 즉 내부적으로는 황제국 체제를 완성한 것이다. 성종이 후사 없이 죽자 헌애왕후의 아들 목종이 즉위하는데 헌애왕후가 천추궁에 머물면서 권력을 휘둘러 사람들은 헌애왕후를 천추황태후라 불러서 천추태후라고 알려진 것이다.

문제는 목종이 동성애자라서 후계자가 없었다. 그런데 천추태후와 김치양사이에서 황손이 생산되자 천추태후는 목종후계자로 김치양소생을 올리려하자 대신들은 왕욱과 헌정황후의 소생인 현종을 후사로 올리자고 받아친다. 이에 불만을 품은 유학자들이 천추궁에 불을 지른다. 때마침 목종이 강조에게 밀서를 보내서 황도로 입위할 것을 명한다. 그런데 천추궁의 변란소식을 들은 강조는 황도에서 변란이 일어 난지 알고 변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정예군5천을 이끌고 황도로 가던중 평주에서 황제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황명 없이 군사를 움직였으므로 그는 서경으로 돌아간다고 하여도 역모로 몰려죽을 판이었다. 그래서 주변설득에 힘입어 황제를 폐위시키기로 결정하고 황도로 난입하여 김치양부자를 참살하고 태후와 황제를 폐위시켜 유배를 보낸다. 그다음 자객을 보내 목종을 시해한다. 이에 대신들과 강조의 옹립으로 대량원군 즉 현종이 고려8대 황제로 등극하는 고려역사상 불륜의 아들인 대량원군이 고려의 만인지상 일인지하인 황제가 된 것입니다. 현종은 아주 영민하여 등극하자말자 황권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팔관회와 연등회를 부활시켰다. 이때 거란황제 성종이 이 소식을 듣고 40만 대군으로 고려를 침공한다. 이에 현종은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하여 강조를 선봉에 세워 21만대군으로 막게 하였는데.. 이는 현종이 강조가 막으면 다행이고 못 막으면 간단하게 황제를 시해한 난신적자를 척결 할 수 있는 기회로 현종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강조는 대패하여 전사하였고 현종은 몽진을 떠났다. 황도가 함락되자 내조를 약속하여 거란군이 물러갔으나 지키지 않자 다시 침공해온다. 이때 귀주에서 강감찬이 20만 대군으로 침공한 소배압 10만 대군을 몰살시켰다. 이후 현종의 개혁정치로 고려는 태평성대를 누리며 황금기로 들어가면서 거란은 두 번 다시 침공하지 못하였다.

김현탁

김현탁

“모든 것들은 아마 나만의 것에 대한 열망, 할 줄 모르는 것에 대한 수치심, 그로인해 더욱 굳건해진 나만의 세계. 그 세상이 품고 있는 절대 순수성 지향과 연극의 성격변형의 목적을 향한 과도한 강박관념, 현대에(연극의 현실 포함)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적대감, 부르조아 조직 관습 미적가치 대중의 수준 등의 부정적 견해에서 비롯된 것 같다.” <열녀 춘향>(놀이동산 야외 서커스장)과 <효녀 심청>(제천수영장)을 각각 재구성/연출했으며, <돼지를 잡아먹은 소크라테스>(상상 화이트홀, 서울)와 <화무십일홍>(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서울)을 각각 작/연출했다. <화랑 원술>(유치진 작 l 아리랑 소극장)과 <젊은 베르테르의 새로운 슬픔>(울리히 작 l 쁘띠 아뜨리에)을 재구성/ 연출하고, <엄마의 치자꽃>(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l 스튜디오 극장)을 연출했다. 또, <풀장의 하녀들>(청주공연예술제 l 쟁 주네 작)과 <메디아, 연극의 본질>(제10회 서울변방연극제 l 유리피데스 작), <김현탁의 산불>(차범석 작 l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을 재구성/연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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