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장우재 '햇빛샤워'

clint 2016. 8. 31. 13:40

 

 

 

 

'햇빛샤워'19세의 순진한 청년 동교와 그의 집 반 지하 셋방에 사는 백화점 직원 광자를 통해 비틀린 삶의 양상과 부조리한 인간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낸 작품이다.

9회 차범석 희곡상, 17회 김상열 연극상, 월간 한국연극 2015 올해의 공연 베스트 7 선정, 52회 동아연극 상 연기상(김정민/광자 분) 등 주요 연극 상을 수상하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주인공 광자를 두고 누구는 쌍년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깨끗한 애라고 한다. 또 다른 주인공 동교는 늘 착하고, 그 선행이 과잉되어 보이기에 환상과도 같다. 동교- 선의를 선의로만 알지만, 광자는 동교의 행동이 누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인지 안다 선택에 기로에 놓이는 것은 광자이다 광자는 환상을 뚫고 나와 새 이름으로 주어지는 삶의 불가능성을 깨닫는다. 그러고는 허상과 불순물로서의 이데올로기를 제거하고. 세상의 빛으로 살아갈 광자로 거듭 태어난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느닷없이 땅이 아래로 푹 꺼져버리는 싱크-홀 그 부조리한 봉합의 공간에 광자가 있다. 불행은 막을 수 있었다.

 

 

 

 

 

세상 살기 좋아졌다지만, 어떤 이들에게 세상은 여전히 더럽고 치사하다. 어떤 이들 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대다수의 이들이 그렇게 느낄 지도 모른다.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영민하고 기특하게 버텨 나갈지는 전 인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장우재가 쓰고 연출한 연극 햇빛샤워는 척박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를 위해 두 남녀가 나온다. 광자와 동교다. 광자는 동교네 집에 세 들어 사는 여자다. 동교는 연탄가게 부부의 양자다. 행실이 성자만큼 착하다. 단순히 광자와 동교 두 남녀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작품은 광자와 동교가 세상을 대하는 대응방식에 대해서 보여준다. 바로 광자와 동교의 관계 맺기를 통해서다. 광자는 아주 지독할 정도로 이 관계 저 관계에 얽히고설켜 있다. 사람들은 광자를 어떤 방식으로든 기억하고 있다. 착하고 예쁜 아가씨이기도 하고, 아주 엉큼하고 성적인 여자로 평가받기도 하다. 건강하고 명랑하며 쾌활한 아가씨, 버릇없는 젊은 것 등 각양각색이다사랑스러운 아이부터 썅년까지 별의 별 평가가 다 있다. 평가가 좋든 나쁘든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광자가 무던히도 사회와 인간 속에서 아등바등 관계를 맺어 왔다는 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삶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빚을 막기 위해서, 끝도 없이 깊어지는 외로움의 구멍을 막기 위해서, 광자는 사회와 짝짓기 하면서 살아왔다. 그만큼 치열하게 살아왔다. 동교는 저변의 인물, 소외계층, 가난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광자와 비슷하다. 하지만 관계 맺기에 관한한 광자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동교는 관계 맺는 것을 좋아하지도 원치도 않는다. 관계없는 사람들을 관계없이 도와주는 것이 그의 삶의 기쁨이다.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연탄을 기부하기도 하고, 고등어도 나눠주고, 정과 따스함도 수와 셈 없이 나눠준다.

 

 

 

 

 

관계 맺기가 중요한 현대 사회 속에서 동교의 등장은 다소 낯설다. 낯설지만 이상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동교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를 되돌아보게 된다. 사회생활에서는 인맥이며 인간관계가 중요하다고 떠들어 댔지만 정작 우리가 인간과의 관계를 어떻게 대했는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관계없이 사랑하였나, 정을 주었나 등을 성찰하게 만든다. 쓰리게 가슴 한 편을 때리는 지점이다. 관계없는 사람에게 얼마나 관계없이 가슴을 내주었나...

광자는 원하는 이름으로 개명을 한 뒤, 집에 돌아와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 이유가 궁금해진다. 관계 맺기의 실패, 관계있는 사람과 관계있는 관계 맺기의 허망함을 깨달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관계란 것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 같은 것이다그때 광자는 떠올린다. 관계라는 허망한 구멍이 따스하게 채워졌던 순간을 말이다. 아무 관계없이 아무 관계없는 사람(동교)에게 브래지어를 선뜻 내줬던 기억이, 햇빛으로 샤워를 하는 것처럼 가장 따뜻했던 순간으로 그녀에게 남아있다. 그게 생각나자, 광자는 억장이 무너진다.

 

 

 

 

 

작품은 누구의 대응방식이 잘됐고, 잘못됐다는 식의 해답을 주는 건 아니다. 그저 오롯이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광자와 동교의 경계선에서 묻는다. 아무 관계없이 자신의 가슴을 내어주면서 살고 있느냐고, 수와 셈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을 내주었냐고 시리게 묻는다광자와 동교는 개성이 매우 강하고 다소 비현실적인 인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그렇지 않다고 느낀다. 서로 다른 성격이지만 험난한 세상 한 번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한다는 점에선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여 두 주인공은 높은 공감대를 형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