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정옥 '노을진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

clint 2016. 8. 29. 17:12

 

 

 

노을진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
문예회관 소극장
1992. 10. 25- 11. 7


광대놀이에 의한 역사의 아이러니 - 자유극장의<노을을 날아가는 새들>자유극장은 특이한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프랑스적인 세련된 지적 놀이의 측면이며, 또 다른 일면은 우리 연희전승의 걸쭉한 놀이마당 재현 같은 것이다. 자유극장의 시작은 김정옥(金正鈺) 연출의 프랑스 감성으로 특성지워지다가 이병복(李秉福) 대표의 ‘카페 떼아뜨르’ 경영과 함께 한국 연희전승의 도입으로 차츰 작품 경향이 달라져 갔다.
1970-80년대는 이병복 대표와 김정옥 연출의 ‘우리것 찾기’식 내지는 ‘우리 것의 세계화’ 지향의 모색기였다.<무엇이 될고 하니>같은 장승설화의 집단창작 시도 이전에도 최인훈의<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같은 전래설화의 내세관이라거나 만남의 인연과 죽음에 대한 연극적 표현이 두드러졌던 자유극장은 반사극(反史劇) 형식에 의한 역사의 조명을 민중이라는 다수를 대변하는 집단창작 방식으로 양식화한다.
이런 연극적 방법론은 이른바 마당극 형식과는 또 다른 민중적 집체 형식이면서 그 감성의 근거는 프랑스적이라는 사실이 자유극장의 국제화를 용이하게 한다.<노을을 날아가는 새들>(1992. 11.7일까지, 문예회관 소극장)도 역사물로서는 시대나 배경 혹은 인물설정 등 하나도 구체적인 것이 없다. 사건 진행 가운데 느닷없는 현대인의 등장과 노래판 설정 등 전작<무엇이 될고 하니>의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도 없다. 그러면서 양식화의 경향은 뚜렷하다.

 

 

 

 

우선 무대와 의상(이병복)이 결정적인 변혁을 보여주는데 무대 좌우의 벽면 형식과 출입구 기능이 두드러지고 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일본의 ‘하나미치’(花道)를 확대시킨 것 같은 주무대는 소극장 구조에 특이하게 기능한다. 거기에 인형미를 더해 주는 의상과 실제 종이인형의 소도구와 가면 등은 자유극장이 추구하는 광대의 철학을 연극적으로 살아나게 하였다.
굳이 사실적으로 풀이한다면 광대의 후손들이 외국쯤으로 건너가 광대짓을 그만두고 건국의 주도 역할을 했다가 그 역할, 곧 신분 변경에 따른 신의 노여움, 아니면 그것이 바로 역사의 아이러니지만 또 다른 무력 침략에 따른 동화(同化)과정이 굿거리 형식을 통해 제의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패망한 나라의 공주 무당과 침략군의 왕자 사이에 벌어지는 사랑, 그리고 공주를 빼내려는 오빠 왕자 휘하의 무사들이 광대인가 아닌가를 놓고 지나치게 사리를 분명히 할 것은 없다. 이 연극은 그런 모호한 것이 매력의 일부이며, 집단창작 형식을 통해 연극의 흐름도 그날 그날의 관객 반응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색깔과 태마저 달라진다. 그 달라지는 상황 속에서 가장 뚜렷한 변조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 광대들의 놀이이며, 그 놀이의 핵심이 시대비판 내지는 역사비판이다. 노래판으로 벌어지는 막간극 형식의 한 토막은<무엇이 될고 하니>의 거지들의 장타령 놀음판과 유행가 가락, 그리고 촌철(寸鐵)살인의 메시지 전달로 이미 정평이 난 자유극장의 전매특허이다.
그러나 이번<노을을 날아가는 새들>에서는 이 막간극 형식이 상당히 양식화되어 있어서 질펀한 놀이판으로 떠오르지 못했고, 그만큼 집단창작의 열기가 가시화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역사에 대한 반역사적, 혹은 연극예술적 접근은 반드시 합리적이어야 할 까닭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역사를 내세운 자유극장의<노을을 날아가는 새들>은 시작과 끝, 그 노을의 시간 사이로 날아가는 역사적 존재인 인간의 영원한 죽음에 대한 제의극이라는 표현이 옳을지 모른다.

 

망한 나라의 왕은 전사하고 왕비는 자결을 했다. 왕자는 재기의 꿈을 안고 이웃나라, 섬나라로 떠나려 한다. 그러나 공주는 나라를 떠나지 않고 싸움에서 죽은 부왕과 왕비, 망해 가는 나라와 순국한 조상, 병사들을 위하여 진혼의 굿판을 나루터에서 벌린다. 공주를 구출해 떠나가기 위해 몇 명의 근위병이 남고 왕자의 일행은 떠나간다. 그러나 공주는 함께 떠나기를 거부하고 마침내 근위병들의 상상 속에서 공주는 살해된다.

 

 

 

조국을 버리고 떠나온 패망한 나라의 왕자와 장수, 유민들은 폭풍을 만나고 많은 배들이 난파당한다. 광대들이 탄 배 한 척이 이웃나라, 섬나라에 표류하게 되고, 광대들은 자구책으로 광대임을 숨기고 패망한 나라의 귀족들처럼 위장한다. 섬나라에서 펼치는 광대들의 세계는 또 하나의 허구의 세계이다. 공주는 굿판을 계속한다. 승자가 된 이웃나라의 왕자가 혼담이 오갔던 공주에게 그의 사랑을 고백하고 새로운 통일된 나라의 왕비로 모시겠다고 제의한다. 그러나 공주는, 그러한 제의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하며 오직 굿판을 끝내게 해달라고 청원한다. 굿이 끝날 무렵 어디서 날아온지 모르는 화살이 공주의 가슴을 뚫는다. 공주는 이웃나라 왕자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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