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지영 '소풍'

clint 2016. 8. 29. 11:47

 

 

 

'소풍'은 자폐아들 은우를 평범한 생활 속에 키우고 싶던 엄마 정희는 여의치 않은 환경들과 남편 범석의 반대로 힘든 나날을 보낸다은우의 수학적 능력이 서번트 증후군이라 굳게 믿고 희망을 꿈꾸던 중 정희는 위암 말기 진단을 받게 된다. 딸 은지는 오빠에게만 매달리는 엄마에게 서운하고, 치매를 앓는 할머니 역시 요양원에 모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자신이 죽으면 더 이상 은우를 돌봐줄 사람이 없음에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던 정희는 은우와 마지막 소풍을 떠난다.

 

 

 

 

 

이지영 작가의 '소풍'은 우리 사회의 어느 가정에서도 마주칠 법한 문제들과 균열을 차분한 풍경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그 전개 방식이 비교적 담담하다정신적 장애를 가진 아들과 치매에 걸린 노인을 둔 한 가정의 이야기를 인물들의 심리 궤적을 따라 차분히 풀어간다.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해온, 혹은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것이다. 그럼에도 '소풍'은 이지영 작가의 치밀한 극적 구성과 살아있는 인물 묘사로 인해 깊은 울림을 남긴다.

 

 

 

 

 

정희는 은우와 함께 소풍을 떠난다. 그리고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읊조린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현실이 싫어 거실 어항에 얼굴을 담가 보기도 하고 아들이 즐겨 먹는 요구르트에 수면제를 넣어 같이 죽어볼까도 했다. 하지만 엄마인 정희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건 인생을 잠시 왔다가는 소풍이라 여기는 달관이고 낙관이었다.  극의 끝에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관객이 이를 불평할 수 없는 건 그게 바로 쉽지 않은 우리의 사람살이인 탓이다. 아무런 구심점 없이 제각각 분열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대화와 이해가 사라진 채 해체되는 지금의 가족과 닮아 있다.

극을 보는 관객은 고단한 정희를 본 뒤엔 나와 닮은 모습의 인물을 찾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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