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동이향 '당신의 잠'

clint 2016. 8. 8. 08:26

 

 

 

이 이야기는 파산에 파산을 거듭하는 현대의 운명적 파국을 '주세희'라는 한 개인에게 드리운 소영웅 서사이다. 하지만 이 영웅이 무언가를 시도할수록 그는 창피해지고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며 결국 모든 걸 잃게 된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인물형이 무대 위에 구현되어야 한다. <당신의 잠>은 동시대에 관한 전혀 새로운 인물형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소수자의 정체성을 이야기한다. 남자를 사랑하는 중년 남자 주세희의 사랑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결혼이 용납되지 않는 법제와 풍토 하에서 동성애자들의 사랑은 부나방처럼 서로를 옮겨 다니는 것을 그 생리로 한다. 소수자의 정체성이란 낯설고 고통스럽다. 이는 또한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삶의 속성이다. 그리고 결코 나눠가질 수 없는 각자의 영역이다. 우리 각자가 매일 빠져드는 잠과도 같다.

 

 

 

 

 

주세희는 뒤늦게 자신의 성적 취향을 발견한 중년의 게이이며, 주세희의 엄마 임용순은 자궁암 말기의 시한부 환자다. 아슬아슬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중 임용순이 보이스피싱으로 사기단에게 돈을 날리고 주세희는 공장에서 실직한다. 어렵던 집안 형편이 그나마 더 어려워지자 주세희는 친구 이한수에게 돈을 빌리려 하나, 이한수와 김경린 부부사기단에 걸려 오히려 암을 치료한다는 지능형 티셔츠를 고액을 들여 사게 된다. 아들이 게이임을 안 엄마 임용순은 주세희에게 독약을 먹이고, 주세희는 약물에 중독된 상태로 친구 이한수에게 돈을 돌려 달라고 부탁하지만 실패한다. 만신창이로 찾아간 연인 의사 윤유호와도 더 이상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결국 죽어가는 엄마 임용순 곁으로 돌아온 주세희는 길고 지루한 시간들을 보내며 죽음을 이해하려 애쓴다. 결국 임용순은 떠나고 주세희는 혼자 남는다.

 

작품은 중년의 동성애자 '주세희'라는 인물이 연인과 어머니, 두 사람과의 이별을 겪는 이야기다. 세상을 향한 시선을 좀 더 확장하여 삶의 변두리, 외진 곳에서 조용하지만 격렬한 이별을 맞고 있는 주인공을 통해 현대인의 삶의 한 단면을 성찰하고 있다. 외로운 사랑이 운명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사랑에서 보상받기 힘든 늙은 동성애자와 나이든 여자는 곧 특정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의 한 속성을 대변하고 있다. 외로움이란, 낯선 정체성이란, 결국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삶의 굴레이다. 여기에서 죽음이란 충격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이 천천히 고요하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다가온다. 그것의 의미를 알기 위해 안간힘 쓸수록 혼란에 빠질 뿐이다. 이 작품은 사랑은 완성될 수 없는 것이며, 그렇게 못 다한 사랑들로 사람들 각자는 고유하다고 이야기한다.

 

동이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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