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땅>은 2014년 창작산실 연극부문 대본공모 당선작으로 2015년 우수작품 제작지원 선정 작이 되어 2016년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초연작이다.
무대는 흔히 볼 수 있는 농촌마을이다.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시멘트 전봇대가 무대 하수 쪽과 객석에 세워지고, 객석 앞 무대 좌우 좌석에 백발의 남녀노인 인체조형물이 자리를 잡고 있다. 무대 상수 쪽 한가운데에 내다버린 것 같은 냉장고가 보인다. 냉장고에는 비닐이 덮여 있다가 출연자들에 의해 벗겨진다. 보트형태의 조형물에 평상을 싣고 출연자가 들여오고 내 가기도 한다. 비닐하우스는 양계장 역할을 하는지, 마을 노인들이 통에 담아내온 닭을 칼로 절단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소품으로 이동 형 트렁크가 등장하고, 무대 맨 앞좌석 가까이에 깊이 파인 직사각의 공간이 보인다.
내용은 아버지 장례를 치르러 온 아들과 부인의 이야기다. 아들은 20여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것으로 설정된다. 아버지 장례를 치른 후 아들은 아버지 소유의 땅을 팔아 빚을 청산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장례 날 아버지의 시신이 없어지고, 시신이 없어지건 말건 아들의 부인은 문상을 온 같은 회사의 젊은 직원과 몰래 정분을 나눈다. 그런데 남편은 부인을 믿고 부인의 동태에 무신경이다. 그리고 빚을 갚아주겠다는 이 고장 후배의 말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그런데 이 고장에 웬 낯선 인물이 찾아온다. 아버지를 찾는다는데 그 아버지 성함이 죽은 주인공 부부의 아버지와 같은 이름인 것으로 소개가 된다. 낯선 방문객은 트렁크를 끌고 다니는데 트렁크의 무게가 몹시 무거운 것으로 보아 트렁크 안의 내용물이 심상치가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원래 이 땅에서는 양계를 했으나, 주인공 부친의 죽음으로 양계장이 부도가 난 것으로 설정이 되고, 여기서 일을 하던 촌로들은 임금을 받기 위해 닭을 도살해 팔기로 한다. 장례 날인데도 주인공부부의 여식은 친구를 만나러 나가 행방이 묘연하다. 주인공 부인은 같은 회사 직원과 야외 은밀한 장소에서 적나라하게 성행위를 펼친다. 시신이 없어졌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주인공은 시신 없는 장례를 치르기로 한다. 그런데 낯선 방문객의 트렁크 안의 물건이 시신으로 추측되기 시작한다. 주인공의 처와 불륜행각을 벌이던 회사직원이 주인공에게 귀신의 전언이라며 한마디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은 자신의 무능과 죄책감에서 아버지가 남긴 마약을 몽땅 입에 털어 넣는다. 닭을 도살하던 촌로들이 죽은 사람의 시신이 없어진 것과 이 마을에 연쇄살인범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이야기한다. 마약으로 의식이 몽롱한 주인공에게 낯선 방문객이 트렁크를 넘겨주고 사라진다. 그리고 난 후 그 주변을 주인공의 딸과 친구들이 놀이를 하듯 배회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어두운 것들의 집합이다. 불륜과 연쇄살인, 시신 분실 등 작가는 금기의 상징을 사용해 ‘떠도는 땅’에서 일어나는 불안의 심리를 일관된 코드로 이야기한다. 이야기는 미스타 노가 중심이 돼 발생하지만 관극 후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주변 인물이다. 닭 목을 사정없이 내리치는 노인들, 미쎄쓰 노의 불륜 상대인 김대리, 마을을 배회하는 아이들, 큰 트렁크 가방을 낑낑거리며 들고 다니는 미스터 리가 그들이다. 특히 스쳐가는 대사 곳곳에 작품의 키워드가 삽입돼 있어 다양한 의미를 되새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를 들면 ‘미스터 리’ 에 대한 소개를 듣고 ‘미스테리?’ 라고 싱거운 농담을 건네는 미스타 노의 대사 등이다. 실제로 ‘미스테리’는 이 작품을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그야말로 온갖 미스테리로 가득하다. 노 영감의 시신이 왜 사라졌는지, 누구의 소행인지, 미스터 리는 정말 미스테리의 인물인지, 미스타 노의 첫사랑은 결국 살해를 당한 것인지 등 작품은 확실한 대답을 안겨주기보다 결론의 무드(mood)만 제공한 채 거대한 느낌의 덩어리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작품의 시각적 분위기는 어둡고 진지하지만 극 중 배우들의 대사는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낸다.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극 중 가장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다. 위탁 양계를 업으로 하는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천연덕스러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닭의 목을 치고 배를 갈라 내장을 쭉 빼낸다. 칼을 들고 닭을 잡는 모습이 모종의 불안감을 조종하지만 우스운 농담과 한 데 섞이며 묘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무대는 전체적으로 깊고 높다. 안으로 쑥 들어간 무대는 관객의 시선을 멀리 이끌었고 높은 무대는 극에 여백을 만들어줌으로써 독특한 공기를 제공한다. 무대가 너무 크지 않을까 싶었지만, 오히려 큰 무대가 작품의 불안한 정서를 살려줬다.
생명을 탄생시키고 유지해주는 땅의 의미가 변질된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동이향은 서강 대학교 출신으로 한겨레신문 기자로 활약하다가 2007년 국립극장 창작공모에 입선했고, 2008년 서울문화재단 젊은 예술가 지원사업 연극부문에 선정된 작가 겸 연출가다. <떠도는 땅, 2016> <엘렉트라 파티, 2014년> <어느날 문득, 네 개의 문, 2009년> <당신의 잠, 2010년> <내가 장롱메롱 문을 열었을 때, 2011년>을 쓰고 연출하고, <버그는 존재하지 않는 주스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숲을 이룬다> <기차길옆 오막살> <해님지고 달님안고> 등을 집필 공연했고, 2009년에는 최명희 작 <오해>를 연출한 앞날이 기대되는 여류 작가 겸 연출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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