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고연옥 '일주일'

clint 2016. 7. 26. 23:46

 

 

 

 

 

한 시골 동네에서 불량배로 낙인찍힌 세 소년 길수, 영배, 덕배는 인근 야산에서 발생한 특수강간치사사건의 용의자로 경찰에 구속되었다.

첫날, 담당 조형사와 강형사는 주범이라고 짐작되는 길수를 심문한다. 길수는 범행을 부인하지만 형사들은 사건이 일어나던 곳에 토끼덫을 놓았다는 것과 평소 그의 행실을 들어 강하게 추궁한다. 부모, 형제 없는 고아라는 것 때문에 동네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생각한 길수는 자신을 밀고한 동네 사람들에게 적의를 드러낸다. 형사들은 길수의 내면의 분노와 거친 성장을 보면서 길수의 범행을 확신한다.

둘째 날, 형사들은 길수와 함께 구속된 영배와 덕배 형제를 심문한다. 형제는 첫날 심문 이후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계속 범행을 부인하는 형제들에게 조형사는 길수와 사귀는 바람에 너희 신세가 망치게 생겼다며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길수의 범행이라고 진술하면 너희 둘은 살려 주겠다고 회유한다.

셋째 날, 길수와 덕배, 영배 형제는 구속적부심을 받기 위해 법원 대기실에 와 있다. 구속적부심이란 모든 피의자들이 형사입건 48시간 내에 판사로부터 받는 구속, 불구속을 가리는 절차이다. 얼떨떨해 있는 그들에게 대기실의 남자는 법이란 범행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빠져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진실이든 거짓이든 범햄을 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고 일말의 희망을 준다. 판사 앞에 선 세 사람은 눈물로 지난날의 결백을 호소하지만 판사는 그들의 알리바이와 뚜렷한 직업이 없다는 이유로 구속수사를 인정하는데....

 

 

 

 

 

매스컴에서 많이 지적하였듯이 그의 두 작품의 주인공들은 남성들이다. <일주일>은 어느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형사들과 네 명의 마을 청년들의 투쟁이야기다 작가의 데뷔작 <인류 최초의 키스>가 청송감호소에 수감된 4인의 남성 죄수를 다루고 있었다는 것을 포함시킨다면 <백중사 이야기>와 더불어 가히 남성 3부작이라 할 만하다. 강력한 권력 관계와 그 속에서 파열하는 인간. 역사상 이 문제는 언제나 사회적 주도권을 가진 남성들끼리의 싸움이었고, ‘아직까지는남성들의 영역이 주 무대가 되는 것 같다.

 

<일주일<백중사 이야기>는 요즘 연극에서 보기 힘든 선 굵은 서사를 간작하고 있다. 강렬한 사실성, 치열한 갈등, 치명적 사건들이 배우들의 에너지와 합쳐져 연극의 스케일을 키운다. 고작 4x6미터 정도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일주일>의 사건들이 작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서사 속에서 개인은 존재(정체성)를 확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고립된 공간과 일직선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들의 운명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한다. 작가는 주인공들, 사회 속에서 아무 것도 아닌것으로 인식되는 하찮은 인물들인 이 주인공들이 처해있는 바로 그 존재 조건으로서 공간의 법칙과 시간의 냉혹함을 그려낸다. 가장 사실적인 상황 밑바닥에 시간과 공간, 인생에 대한 형이상학적 질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일주일>에서 살인사건의 범인을 쉽게 검거하려는 형사들의 수사망에 포착되는 네 명의 무직 청년들은 유치장에 갇힌 상태에서, 자유로웠던 자신들의 과거가 역설적으로 무가치했고 그 때문에 이곳에 갇혔음을 발견한다. 이처럼 슬픈 호명 방식이 있을까 이들은 이제 무언가가 되어보려고 결심한다. 그러나 형사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말을 구체적인 성과로 바꾸는 일일뿐이다. 일주일 안에 천지창조가 일어났듯이 일주일안에 현실이 된다. 진실과 거짓의 구분은 무의미해지고 의도된 결과만이 이들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밀폐된 공간에 갇힌 청년들은 그들을 가둔 형사들의 의지 밖으로 탈출하지 못한다. 죄 없이도 노숙자라는 이유로, 노동운동 했다는 이유로, 사회에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삼청교육대로 꿀려갔던 사람들이 있는 이 나라에서 이 희곡은 단지 부조리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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