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고연옥 '인류 최초의 키스'

clint 2016. 7. 27. 08:33

 

 

 

한 번의 실수로 17년을 살고 자신의 죄에 대해서 반성도 하였건만 계속해서 형량이 늘어가던 학수. 사기죄로 들어와 종교-개신교-에 심취한 성만. 큰형님 대신에 사람을 찌르고 감옥으로 들어온 폭력배 상백. 같은 감옥에 20년 동안 있으면서 그간에 정말 아무것도 안 한-같은 공간과 의미없는 시간들이 그를 무력하게 만들어버렸다. 방장 동팔. ... 작품은 계속 반복되는 그들의 하루하루의 일상으로 시작된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그들이 하는 말은 조금씩 그 버전만 달라질 뿐 결국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마누라와 딸을 그리워하다가 미쳐버린 학수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자신을 자신의 똥 속에서 발견하고 어느 날인가부터 정신이상이 된다. 그리고 감방 동료들은 점점 미쳐가는 학수를 보면서 자신의 기다림에도 끝이나 대답이 없을 것을 예감한다. 그들의 상황도 학수와 다르지 않다. 어느 나라 동료수감자들은 자신의 똥에 키스를 하고 사랑을 속삭이면서 그 더러운 것을 자신이라 부르며 아주 맛있게 먹고 있는 학수를 발견하게 된다. 동료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난동을 피우다가 죽고 자살을 하기도 한다. 결국 학수까지 미쳐서 세상을 뜬다. 마지막에 남은 방장 동팔은 재심사에서 가석방을 명받지만 나가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결국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기다림 받지도 못하는 이들이 죽음과 그 후의 자신들만의 세계를 추구하게 되는 조금은 비관적인 이야기이다. 작품의 초반부의 내용이 등장인물들의 재치 있는(특히 폭력전과자 상백이의 큰형님 모시는 말들) 대사들이 이러한 비관적인 내용을 무화시키지도 않고 반대의 간섭도 심하지 않다. 그냥 극을 따라가다 보면 등장인물들의 다소 광대적인 캐릭터들이 서글픈 마스크로 다시 한 번 곱씹어 진다.

 

 

 

 

 

<인류 최초의 키스>는 제목이 지시하는 낭만적 이미지의 외피와는 다르게 청송보호감호소의 수감자들을 소재로 삼고 있어 탈 낭만적인 것으로 전도된다. 이 제목은 수감자들이 죽어서야 감옥을 나갈 수 있었던 것처럼, 자유를 향해 떠나는 배라는 메타포로 함의된 구원을 상징한다. <웃어라 무덤아>도 무덤, 죽음 같은 외경적이고 비극적인 제례의 대상을 웃어라. 라는 명령어로 탈 낭만화한다. 동시에 무덤은 탑을 쌓는 소년, 죽어서 꽃이 되는 할머니, 길 등의 메타포로 인해 재생의 공간으로 재 의미화 된다.

<인류 최초의 키스>는 범죄자나 감옥의 수인을 주인공으로 삼는 많은 서사나 극이 대체로 빠지고 있는 도덕적 이분법의 전도나 그들에 대한 지나친 공감 및 휴머니즘에 맥을 같이 하면서도 희화화와 아이러니라는 희극정신의 도움으로 균형감을 획득한다. 물론 이 극에는 도덕적 이분법을 보여주는 두 부류의 인물 군이 등장한다, 청송보호감호소의 수인들인 학수, 성만, 상백, 동팔은 위험한 범죄자로 분류되어 수감되어 있다. 그들과 대립관계의 인물들로, 수형자들을 짐승 취급하는 교도관, 수형자들의 출소 여부를 심의하는 사회보호 위원인 판사, 심리학자, 변호사가 있다. 수인들이 이름을 가진 개성적 인격체로 그려진 것과는 달리, 대립적 인물들은 직책으로 불린다는 점에서 사회 안의 권력이나 위계관계를 대표하는 전형이다 특히 희비극적 비전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학수의 보호감호 만료 심의를 하는 장면이다. ‘한 번 죄인은 영원한 범죄자라는 고정관념을 가진 심리학자는 학수의 위험한 인격을 입증하기 위해 학수의 얼굴을 움켜쥐고 전형적인 범죄자의 두개골과 관상학이라는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이 장면은 명백히 작가가 각색 작업에 참여한 바 있던 뷔히너의 희곡 <보이체크의 영향을 보여준다. 의사가 실험대상인 보이체크를 동물 취급하는 것이나 시장 호객꾼의 장광설 동물 관상학을 연상시키는 이 장면에서, 반성의 빛을 띤 순진한 표정으로 얼굴을 맡기고 있는 학수와 그 얼굴을 물건처럼 움켜쥐고 마구 돌리면서 범죄자의 관상학을 늘어놓고 있는 심리학자의 모멸행위는 첨예한 대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희극적이면서 동시에 비극적이다. 이들의 관계가 바로 사회적 힘의 속성, 권력- 폭력의 위계관계를 전경화시켜 보여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절대로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비천한 수형자들이 학수가 먹는 똥과 비유적 관계에 놓인다는 점도 희비극적 비전의 예이다. , 사기꾼 성만이 가출소 심사를 받는 장면에서 기도하는 성만에 조응하듯 빛과 꽃비가 내리는 신비현상이 자못 희극적으로 묘사되는 재치 있는 장면에서, 희극적 아이러니를 만들어 내는 것은 이런 기적에 대한 심리학자의 왜곡된 해석이다. 심리학자는 이 기적을 시든 꽃잎몇 조각 날리게 하는 이상한 짓을 평가절하하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이반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대심판관같은 해석을 내린다.

즉 전과 7범의 사기꾼이 메시아로 추앙받을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 출소를 시켜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도적 상황은 장면이 전개되어 갈수록 더욱 점층 된다. 동팔이 만 65세 이상의 수형자에게 내리는 출소 명령을 거부하자 그동안 한사코 죄수들의 출소를 막았던 사회보호위원들이 죽을 때까지 나라 밥만 축낼 생각이냐며 나가서 일을 하라고 명령하는 장면에서 아이러니는 극치에 달한다.

 

 

 

 

 

작가의 글 - 고연옥

첫 작품인 <인류 최초의 키스>는 그야말로 겁 없는 도전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된 청송감호소 출신 남성과 한 시간 가량 인터뷰를 하면서 그의 세계와 나의 세계를 구분 지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작품을 쓰는 내내 나의 순진한 망상과 격렬히 투쟁해야 했습니다. ‘인류최초의 키스라는 꽤나 낭만적인 제목에 무시무시한 청송감호소의 수형자들 얘기라니....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첫키스 하기까지의 두려움과 고통을 아실 겁니다. 물론 첫키스의 감미로움은 그 기억을 쉽게 지워버리지만, 두 사람은 그 전과는 분명 다른 관계에 있게 될 겁니다. 키스란 아주 독특한 것이죠. 사전엔 묘한 흥분과 두려움을 주고, 사후엔 자유를 줍니다. 그건 분명 자유입니다. 연극 '인류최초의 키스'의 주인공들은 이 사회의 하수구만을 전전했던 쓰레기 같은 인생입니다. 하지만 운이 억세게 나쁜 그들이야말로 인생을 아주 격렬하게 산 사람이죠. 그들에게서 '최초의 인간'의 이미지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최초의 인간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못했을 겁니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자신과 그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겁에 질려 있었을지 모릅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에 대해서도요. 시간이 흐르는 것. 혹은 시간이 머물러 있는 것에 두려움을 가져 본 적 있습니까? 아주 힘들었던 경험이었을 겁니다. 그 최초의 인간들에게 자유와 구원은 어떻게 올 것인가를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인류최초의 키스'라는 제목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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