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수미 '잔치'

clint 2016. 7. 29. 10:00

 

 

 

독하다, 독해도 이래 독할 수가 있나!"

연극 '잔치'(김수미 작)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웃집 아낙 병길 네가 부르짖는 이 대사야말로 다정한 듯하면서도 비정하고, 편안한 것 같으면서도 문득 소름이 돋는 가족이란 집단의 본질을 잘 드러낸 것인지도 모른다.

올해 서울연극제의 공식선정 작인 이 작품은 2011년 제5회 차범석 희곡상 수상작으로, 극단 한양레퍼토리에 의해 올해 들어서야 처음 무대에 올랐다. 시골집에서 병든 남편과 사는 노모는 육개장과 전과 나물 같은 음식을 잔뜩 준비하고 있다. 자식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온다. 정치인이 된 큰아들, 미국 가서 살던 딸, 연극판에 몸을 담은 막내는 고단한 삶을 토로하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연신 내뱉는다. 형이 내건 공약은 쓰레기고 그 속엔 사람이 없다, 이혼한 너보단 제대로 살고 있다, 예술가라는 명분으로 가난을 훈장처럼 떠벌리고 있다. 어머니는 다음 날 새벽 혼자 일어나 조등(弔燈)을 내건다. 순경이 집으로 찾아오면서 어머니가 준비했던 '잔치'의 정체가 밝혀지고 세 남매는 오열한다.

 

차범석 희곡상 수상 당시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결단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작품'이란 평을 받았다.

 

 

 

  

 

기와 지붕위로 하늘이 너무나 파랗다. 지붕위로 동백꽃이 화사하게 피어있다. 무대가 너무 아름다워 더 슬프다. 결말을 알고 나면 왜 이 무대가 그렇게 아름다웠는지 곱씹게 된다. 우리들의 지난 시절은 그렇게 화려하거나 화려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던 것처럼 말이다. 무대는 그렇게 관객의 마음속에 강한 인상을 심는다. 바닷가에서 평생 파도와 싸우던 남편은 중풍으로 쓰러져 이제는 꼼짝없이 누워있다. 자식을 위해 평생을 일한 노모는 이제는 치매 증세도 가끔씩 있어 불안하다. 자신이 치매로 기억을 완전히 잃으면 타지로 나가 있는 자식들 때문에 남편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것이다큰 아들은 정치인으로 이제는 국회의원이 되기를 원하며 산다. 큰 딸은 미국 시카고에서 산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셋째는 80년 민주항쟁에서 하늘나라로 갔다. 막내아들은 히트 작 없이 연극 연출을 하며 살고 있다. 평생 가슴에 묻고 산 셋째 아들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평생을 노모를 짓눌렀다. 또 자식들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노모는 이제 자식들을 모두 집으로 불렀다. 집 마당에서 전도 부치고 감주도 만들고 잔치 준비를 한다. 처음에는 그것이 객지에서 살던 자식들을 위한 잔치로 알았다.

 

이제 우리 사회는 핵가족화로 핏줄만 섞였다는 사실만 존재할 뿐 남이나 다름없는 가족의 형태가 비일비재한 게 사실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했다. 오랜만에 만난 자식들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다. 서로를 원망하고 타박이다. 밤이 새도록 자식들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노모는 벌써 그 사실을 예견하고 있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온 딸은 오빠 때문에 동생이 죽었다고 말하고 그런 말을 들은 큰 아들은 충격으로 몸을 지탱하기가 힘들어 술의 힘을 빌리고 연극 연출을 하던 막내와 큰 아들은 또 자신들의 정의에 대해 논쟁이다. 가족이라는 명제만 존재할 뿐 그들은 그렇게 하룻밤을 온통 서로에 대한 타박과 원성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한다. 아침이 되고 늙은 노모는 자식들의 아버지를 자식들에게 짐 지우지 않으려고 스스로 힘든 결정을 한다.

 

이 장면에 도달하면 남자는 함부로 울지 않는다는 교육을 받고 자란 남자 관객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속으로 울거나 2/3가 밖으로 울음을 토해낸다. 언젠가 자신도 죽어야 하고 부모님도 떠나보내거나 또 이별을 해야 하는 수많은 관객 앞에 연극<잔치>는 슬픔의 상차림을 그렇게 펼쳐 보인다. 그건 관객 모두의 슬픔이었다노모의 유일한 친구 병길네의 툭툭 던지는 대사가 관객의 웃음을 자극한다. 그런 웃음마저 없다면 관객은 아마 견디기 힘든 공연이 되었을 것이다. 순경과 함께 가는 노모 앞에 자식들은 무너지고 지붕위로 죽은 셋째가 어등(漁燈)이 되어 나타난다. 원래 동백은 꽃잎이 일순간에 떨어져 집에서는 키우는 게 아니라는 속설이 있는데 노모위로 떨어지는 동백은 순식간에 눈송이처럼 내린다.

 

<잔치>는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른 부부가 마지막 존엄(尊嚴)을 지키기 위해 내리는 결단을 통해 가족과 삶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는 작품이다. 극 구성이 탁월하고,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력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은 <잔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이 해체되어가는 초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가족과 삶의 참된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김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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