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고연옥 '달이 물로 걸어오듯'

clint 2016. 7. 27. 07:58

 

 

 

화물차를 운전하는 쉰 살의 수남은 비록 술집에 있는 여자긴 하지만 젊고 예쁜 경자와 사랑을 하게 된다. 그 사랑이 본인은 달이 물로 걸어오듯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생각하지만 경자에게는 목적이 있는 접근이었다. 자신을 아버지로부터 멀어지게 한 계모와 의붓동생에 대한 복수. 결국 계모와 의붓동생을 살해하고 수남에게 뱃속의 아이를 빌미로 대신 감옥에 갈 것을 종용한다. 수남은 기꺼이 사랑하는 경자를 대신해 죄를 뒤집어쓰고 자수하지만 계속 되는 수사 중에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을 통해 자신이 속았다는 결론을 얻고 절망한다. 수남은 확실한 알리바이로 겨우 풀려나고 경자는 사형선거를 받는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경자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수남은 아기를 안고 면회를 가지만 결국 어떤 확실한 답도 얻지 못하고 다시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달이 물로 걸어오듯>에서도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의붓 어머니와 여동생을 죽이는 사건이 벌어진다. 주인공 여자를 너무나 사랑했던 남자 주인공은 여자의 죄를 모두 자신이 한 것처럼 뒤집어 쓴다. 그런데 대질 심문 과정에서 지나치게 자신을 범인으로 몰고가는 여자의 태도를 보면서 남자는 의문이 생겨난 것이다. 과연 여자는 자신을 정말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 하고 말이다. 그는 감옥 안에서 난생 처음으로 생각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여자가 자신을 이용하려고 거짓 사랑을 한 것도 같고, 여자의 진실을 자신이 모르는 것도 같고, 생각이란게 하면 할수록 그와 여자의 사랑의 본질을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처럼, 고연옥 작가는 살인 사건을 소재로 다분히 연극적인 작품을 형상화하였다. 그녀의 주제의식은 관념적이고, 철학적인데, 이처럼 가볍지 않은 문제들을 무대 위에서 극적 형상화하는 방식은 문제적이면서 재미있다.

 

 

 

 

 

 

 

 

작가의 글 : 고연옥

작품은 아내와 함께 아내의 의붓어머니와 딸을 살해하고 암매장했던 한 남자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구상되었습니다. 아내보다 중형을 선고받은 그는 판사에게 자신의 형량을 낮춰달라는 탄원서를 쓰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망설였습니다. 저는 그 남자의 얼굴을 깊은 밤 커다란 화물차 운전석에서 졸음과 고독을 이기며 달려가는 화물차 운전수에게서 발견했습니다. 돌이켜보면 5년 전, 이 작품을 쓸 때 무척 행복했습니다. 극은 시종일관 비극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영원과 조우하려는 한 인간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언제나 그 경계에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의 고독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공연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고, 어쩌면 영원히 무대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표현의 미숙함은 있을지라도 혼자만의 허상이라고는 비하하진 않았습니다. 사실 지금 이 순간도 저의 작품이 산울림극장에 오르게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일찍이 꿈꿔 본 것도 사실이지만, 이렇게 성큼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임영웅 선생님과 연출자와 작가로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선생님 보시기에 얼마나 부족해 보일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뵐 때마다 늘 어렵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산울림 극장에 오를 자격이 있었다고 평가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져 봅니다. 아직 채 날을 세우지 못한 제게 공연기회를 주신 오증자 선생님. 임영웅 선생님께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닫게 해주신 박상종님을 비롯한 배우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 작품 속에는 제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얻은 많은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저를 엄마라는 새로운 존재로 탄생하게 해준 사랑하는 민주와 홍주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항상 저의 첫 관객이 되어주는 남편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연옥 '웃어라 무덤아'  (1) 2016.07.27
고연옥 '인류 최초의 키스'  (1) 2016.07.27
고연옥 '일주일'  (1) 2016.07.26
최은영 '무한각체가역반응'  (1) 2016.07.25
고연옥 '발자국 안에서'  (1) 2016.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