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배유안 '뺑덕'

clint 2016. 7. 17. 16:59

 

 

 

심청전의 의뭉스러운 악녀 뺑덕 어미에 주목해 그녀의 아들 병덕의 입장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는 애증을 딛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뺑덕>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뺑덕어멈이란 이름이 그렇다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고전 소설 <심청전>의 등장인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심청전>은 영화나 연극 등 수많은 형태로 재창조되어왔기에 현대에도 매우 친숙하다. 이런 배경을 두고 배유안의 소설 뺑덕이 만들어졌다. 심청전에서 악역으로 등장한 이래로 심술궂고 못된 여성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뺑덕어멈을 새롭게 탄생시킨 것이다. 소설에서 그녀는 고된 삶에 치인 불쌍한 존재로, 겉은 사납지만 속에는 상처가 깊은 다면적인 인물이다. 더군다나 원작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뺑덕을 창조해내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뺑덕을 각색한 <뺑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솔직히 말해 아쉽다. 장편 소설을 2시간의 연극에 담으려다보니 삭제된 부분이 많았는데, 그로 인한 문제가 많이 보였다. 삭제된 부분 중 가장 큰 것은 진주 이야기와 심청이 이야기인데, 중심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이 삭제되어 버리니 어쩔 수 없이 기승전결 모든 부분이 조금씩 바뀔 수밖에 없었다. 첫째, 진주가 없으니 결말에서 뺑덕 어미에게 돈을 주는 장면 대신 무언가 알 수 없는 징표를 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뺑덕 어미는 이 징표를 보고 곧바로 뺑덕이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채는데 개연성이 아주 부족한 결말이다. 둘째, 심청이 이야기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강재의 죽음도 그 힘을 잃는다. 소설에서는 심청이와 강재 둘 다 물에 빠져 죽는 인물로, 두 사연이 겹쳐져 이야기가 풍성해졌었다. 그러나 연극에서는 강재만 물에 빠져 죽기 때문에, 관객들은 강재라는 인물에 감정 이입하기도 전에 그의 죽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표현에도 한계를 찾을 수 있었다. 첫째, 깡치가 죽는 장면이 그러하다. 소설에서는 깡치가 죽는 장면이 생생하고 극적이게 묘사된다. 그러나 연극에서는 오히려 생동감이 덜하다. 연극은 폭풍에 흔들리는 배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동시에 보여준다. 강한 파도는 파란색 종이를 흔드는 것으로 대신하고, 흔들리는 배는 사람 한 명 크기의 작은 모형으로 표현된다. 동시에 옆에선 배 안의 모습이 표현되며 강재가 물에 빠지는 것도 이 장소에서 나타난다. 동시에 두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몰입도 쉽지 않고 소품도 너무 초라하다.

둘째, 뺑덕 어미의 과거를 설명하는 장면이 그러하다. 소설에서는 단숨에 적을 수 있는 과거 이야기지만 연극에서는 그것들을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 연극은 그것을 위해 마치 춤추는 듯한 장면을 넣었다. 등장인물들은 시계가 똑딱거리는 듯한 음악 소리에 맞춰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러면서 장꾼 한 명이 등장해 뺑덕 어미와 술을 주고받더니 뺑덕 어미와 함께 사라진다. 그러나 뺑덕은 불행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이것으로 뺑덕 어미가 이 남자, 저 남자를 거쳤으나 늘 불행하기만 했다는 설명을 대신한다. 그러나 원작 보다는 그 효과가 크지 못하다.

 

 

 

 

 

애초에 글을 연극으로 바꾸면서 생기는 많은 문제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한계를 극복해보고자 종이 애니메이션, 소품, 인형 등을 이용했지만 원작에는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어떤 형식으로든 리메이크되는 작품을 볼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 있다. 원작자는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작은 원작일 뿐이고 그것이 재창조된 것은 또 다른 작품이다. 스토리를 그대로 따르든 일부만 빼고 전부 바꾸든 그건 원작자가 개입할 부분이 아니다. <뺑덕>은 어떠할까. 내 생각에는 애매한 것 같다. 스토리를 따르되 연극에 담기 위해 많은 부분을 수정했다. 그로 인해 많은 연결고리가 없어졌는데, 그것을 메우려다 보니 스토리를 따라가는 데만 급급한 느낌이다. 연극으로서의 <뺑덕>만의 새로움을 느끼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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