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강백 '날아다니는 돌'

clint 2016. 7. 8. 22:07

 

 

 

 

작품에서 날아다니는 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것을 손에 넣으려는 한 경매업자가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을 함께 보여주는 작품으로 작가의 문학적 여백과 진지하고 통찰력이 엿보인다.

성공한 경매업자인 이기두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숙부에게서 날아다니는 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돌을 사기 위해 강원도에 은거하고 있는 박석선생을 찾아간다하지만 여러 번의 방문에도 날아다니는 돌의 소유자인 박석선생은 이기두가 전 재산을 준다 해도돌을 팔지 않겠다고 한다. 이기두의 통장 안에 들어있는 숫자들을 보며 그와의 결혼을 꿈꾸고 있는 김혜란은 날아다니는 돌을 사기위해 강원도를 드나드는 이기두를 못마땅해 한다. 하지만 숙부는 이기두가 박석선생에게서 날아다니는 돌을 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데. 주인공 이기두는 물건과 돈에 민감한 경매업자이며 이기두와 결혼하고자 하는 김혜란 역시 이기두의 통장 잔고를 사랑한다그 속에서 자유로운 영혼은 날아다니는 돌의 소유주였던 숙부와 현재 소유주인 박석 선생이다. 물질과 숫자로 이루어진 세상과 다르지 않은 말세와 같은 자본의 논리와 잣대로 움직이는 시대에 사람들의 상상력은 고갈된 지 오래다. 구체적인 수치를 잣대 삼아 모든 것을 결정하는 지금의 사회에서 상상력의 부재는 우리에게 주는 무한한 자유를 제한하게 된다.

 

 

 

 

 

작품 속에서 오랜 시간, 시대를 거쳐 이어져 내려오던 날아다니는 돌의 숙부와 박석선생의 뒤를 이어 그 돌의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던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상상력이 없는 세상을 곧 재앙이라고 말하는 작품의 메시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연극 날아다니는 돌은 상상력이 제공하는 무한한 자유를 꿈꾸게 하며 그 자유는 말세와 같은 지금 우리 시대에 구원이자 희망일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

 

 

 

 

 

혹자는 이 작품을 보기 전, 제목만을 보고 날아다니는 돌이라는 제목은 하나의 비유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은 이를 비유로만 사용하지 않고,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성공한 경매업자 이기두는 죽음을 목전에 둔 숙부로부터 날아다니는 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돌을 얻기 위해 강원도에 은거하는 박석 선생을 찾아가게 된다. 돌을 얻기 위해 여러 차례 그곳을 방문하지만 박석 선생은 그야말로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돌을 팔지 않겠다고 한다. 이기두는 진기한 그 돌을 갖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그의 애인 김혜란은 돌을 얻기에 여념이 없는 이기두를 이해하지 못하며 못마땅해 한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이기두는 결국 거금의 돈을 들여 돌을 사게 된다. 하지만 그는 곧 깨닫게 된다. 날아다니는 돌이란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게 아닌,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그야말로 이리저리 발에 채이고 손에 잡히는 게 돌이다. 너무나 평범해서 어떠한 가치도 느끼지 못하는 그 돌로부터, 이강백 작가는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마치 스스로를 흔한 인간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가치를 부여하듯.

 

이강백 작가가 만들어낸 돌은 직접 날아다닐 뿐 아니라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한다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돌을 잘 볼 수 있는 이 필요하다. , 믿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돌의 능력을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신통방통한 돌의 모습이 드러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결국 이기두가 깨닫는 것 역시 이 지점이다. 날아다니는 돌이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 자신의 어리석음왜 세상 도처에 깔린 모든 돌이 날아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에 대한 깨달음. 아마 작가는 관객들에게 이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스스로를 움직이지 않는 쓸모없는 돌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모두 날아다니는 진귀한 돌이라고 말이다.

 

이성열 연출 특유의 간결하고 임팩트 있는 연출력이 작품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소품은 최대한 간단하게, 더불어 배우들이 돋보일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집중도를 높였다. 직접적인 소품의 사용보다 조명을 통해 간결한 무대를 선보인 게 작품의 표현력을 더욱 높인 지점이 아닌가 싶다. 연출과 작가, 배우의 호연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작가의 글

날아다니는 돌에 진행자들을 등장시킨 것은 연출인 이성열의 아이디어이다. 진행자들이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였고, 여러 인물로 변화하며 대본에 없는 멋진 장면들을 만들었다. 날아다니는 돌의 지문에는 돌이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실제 공연에는 그 피아노 소리를 녹음으로 할 것인지, 직접 연주할 것인지 선택해야한다. 연출가 이성열 씨는 죽은소리 녹음보다 살아있는 소리 생음을 택했다. 무대 전면 우측 밑에 피아노를 설치하고, 피아니스트 김정선 씨에게 연주를 부탁하였다. 극적 효과는 만점이었다. 관객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보면서도 날아다니는 돌이 연주한다고 상상하며 들었다. 그때 연주한 곡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월광), 드뷔시 달빛), 라벨 소나티네 Op.3), 바흐 골드베르그 변주곡), 바흐 파르티타 No.6 E minor BWV 830)이다.

날아다니는 돌은 희극이다. 돌이 어떻게 날아다닐 수 있느냐, 근엄한 표정으로 묻지 않기 바란다. 그럴 수도 있구나, 짐짓 아량을 베풀고 보는 것이 이 연극을 즐기는 방법이다, 우리는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사실의 세계는 협소하다. 연극은 인간에게 더 넓은 세계를 보여준다날아다니는 돌의 공연은 출연한 배우 모두가 빛났고 앙상블도 훌륭했다. 특히 오현경 선생은 배우의 품격을 보여줬다. 이생에서는 남자로 살았으므로 내생에는 여자로 살고 싶어 여자 옷을 입고 화장을 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숙부 역은, 남자 배우가 여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우스꽝스럽고 천박해 보일 우려가 높다. 그런데 오현경 선생은 참 우아했다. 모든 관객들이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오현경 선생이 숙부 역을 하였기에 날아다니는 돌은 재미와 품위를 아울러 갖춘 연극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쓴 여섯 편의 희곡들 중에서 결점 없는 것은 없다. 아마 생각이 얕아서 그럴 것이다. 소금물은 마시고 또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내 희곡이 그렇다. 쓰고 또 써도 자꾸만 목이 탄다. 그런 희곡들을 모아놓고 보기에 참 좋았다.. 이 여닮 번째 희곡집을 읽는 독자들 에게 미안하고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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