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강백 '즐거운 복희'

clint 2016. 7. 8. 15:28

 

 

 

이야기의 양면성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면, 적합한 표현이 될 수 있을까. 이강백 작가의 '즐거운 복희'에 대한 이야기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에 갇혀버린 여인, '복희'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사람들에게 외면 받던 작은 소식도 이야기로 만들어지면 의미를 갖게 되고, 반면 인간의 탐욕 역시 미화(美化)된 이야기를 통해 아름답게 포장된다. 지난 수많은 역사에 빗대어 추측해 볼 때 아이러니하게도 이야기에 있어 중요한 건 팩트 (fact)가 아니었다. 사건을 해석하는 이야기꾼과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취사선택하는 청취자, 이 둘이었다. 너와 나의 역사가, 더 나아가 우리의 역사가, 그리고 대한민국의 역사가 스토리-텔러와 청취자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면? 작가의 출발지점이 어디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연극 즐거운 복희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이러한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영원한 동시대적 알레고리의 작가로 불리는 이강백 작가의 즐거운 복희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한 호숫가 펜션을 배경으로 탐욕과 이기주의에 물든 인간군상의 민낯을 조명하고 있다. 서울에서 멀찍이 떨어진 이곳 펜션에서, 한 여인의 곡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여인의 아버지인 장군이 사망하면서 그의 딸 복희가 구슬픈 울음소리로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다. 그곳에는 장군의 딸 이외에도 여섯 명의 남성들이 모여 있다. 대한제국의 백작 작위를 받은 백작과 장군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 자서전 대필가, 레스토랑 운영자, 전직 수학교사, 그리고 건달 등 직업도 성격도 모두 제각각인 이들은 펜션을 분양받은 당사자들로 장군의 죽음을 자신들의 펜션 마케팅에 이용하려고 한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일명 애도 마케팅이다. 장군의 죽음을 팔아사람들을 모으고, 더 나아가 그의 딸 복희의 슬픔을 팔아모은 사람들이 떠나가지 않도록 유도한다. 그들이 계속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복희의 슬픔이 반드시 필요하다. 때문에 그들은 복희에게 계속해서 슬픈 복희의 삶을 강요하고, 급기야 그녀와 사랑에 빠진 나팔수가 호수에 빠져 죽는 일이 발생한 후에도 그의 시체를 건져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애도 마케팅에 합류시켜 설화 같은 전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말에 의해 여론이 형성되고 그것이 기정사실화 되는 모습은 사람들의 말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세하는 SNS시대인 현재를 생각나게 하며, 호수에 빠져 죽게 되는 나팔수의 죽음은 세월 호 사건과도 묘하게 연결된다. 이야기를 만드는 중심에 서 있는 여섯 명의 펜션분양자들과 그들의 요구대로 움직이는 복희는 우리시대의 오묘한 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 듯하다. 우화와 상징의 표본으로 불리는 이강백 작가다운 비유다. 그는 이미 연극 파수꾼’(1974)을 통해서도 그만의 우화적 기법으로 현 대한민국의 실태를 그대로 언급한 바 있다.

 

 

 

 

 

작품의 내용과 더불어 또 하나의 볼거리는 바로 무대다. 본래부터 남산예술센터를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이강백 작가는 작품을 쓸 때부터 남산예술센터를 염두에 뒀다고 언급한 바 있다. 높고 깊은 무대는 호숫가 펜션을 표현하기에 적합할 뿐 아니라, 작품의 배경이 되는 호수나 잠겨있는 물 같은 이미지는 다른 극장에서 구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산예술센터는 비밀과 음모(?)로 가득 찬 호숫가를 표현하는데 아주 적합했다. 작품 중간 중간에는 실제로 무대 위에 물이 가득 들어찬 듯한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호숫가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객석에 전해줬다.

호숫가 위로 길게 드리운 달빛, 비 오는 날 새벽의 어스름한 호수, 언뜻 봐도 외곽에 놓여있을 것 같은 펜션의 내부 등 남산예술센터는 작가의 계산을 빈틈없이 수행했다. ‘즐거운 복희는 작가의 작품과 연출의 섬세함, 더불어 극장의 구조 등 삼박자가 고루 갖춰 만들어진 연극임을 알 수 있었다.

작품의 말미, 복희는 슬픈 복희를 벗어던지기 위해 스스로 펜션을 떠난다. 물론 여섯 명의 펜션 분양자들은 그녀가 펜션에서 없어진 것조차 죽음으로 몰고 가 마케팅에 이용하지만 복희는 이야기의 덫에서 스스로 걸어 나와 즐거운 복희가 되기로 결심한다. 스스로 현실의 장벽을 뚫고 나온 복희로부터 작품의 제목인 즐거운 복희가 파생된 셈이다. 마치 제목처럼 우리의 삶, 그리고 현실에 대한 생각을 파생시키는 연극이다.

 

 

 

 

 

작가 아강백의 글

즐거운 복희는 일곱 번이나 고쳐 쓴 희곡이다. 초고에는 주인공 복희를 등장시키지 않았다. 제목도 하나를 둘러싼 여럿이었다. 여섯 명의 인물이 등장해서 복희라는 인물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 주려고 했다. 인간이 모여 사는 곳에서 라는 존재는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부모를 비롯한 가족의 기대가 만든 존재이기도 하고, 학교라든가 회사 등 사회적 요구에 의해 만든 존재이기도 하며, 국기의 정책이 만든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내가 자신과 갈등이 크지 않다면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갈등이 너무 크면 나는 괴롭고 슬픈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즐거운 복희에서 복희를 만든 인물들은 팬션 운영자들인데 장군의 딸 복희가 언제나 슬퍼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야 장군 묘소에 참배객들이 와서 펜션 손님으로 머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픈 복희는 즐거운 복희가 되고 싶다. 복희를 만든 인물들과 복희 사이에 갈등이 큰 것이다. 복희를 무대에 등장시키지 않고 쓴 초고를 여러 번 고친 이유는, 복희의 부재를 통해 복희의 존재를 부각시키려 했던 내 의도가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복희가 등장하는 장면만을 따로 써서 막간극으로 넣었다 부재 인물의 표현을 고민하면서 얻은 경험은 유익했다. 그 경험으로 나중에 쓴 !’에서 등장 않는 비가시적 인물 함석진(심벌즈 연주자)을 표현할 수 있었다.

 

즐거운 복희남산예술센터극단 백수광부공동제작으로 2014826일부터 921일까지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하였다. 연출가 이성열 씨가 연출을 맡았고, 김옥란 씨가 드라마터그를, 손호성 씨는 무대 미술을 맡았다. 유복희 역은 전수지 씨, 화가 역 이인철 씨, 백작 역 이호성 씨, 박이도 역 강일 씨, 김봉민 역 유병훈 씨, 남진구 역 박완규 씨, 조영욱 역 박혁민 씨였다. ‘즐거운 복희공연에는 행운이 따랐다. 2014년도 한국연극협회의 연극대상에서 작품상올 받았고, 손호성 씨가 무대미술상을 받았다. 서울연극협회의 연극인대상에서는 김창기 씨가 조명 상을 수상하였다. 무대 미술상의 수상과 조명 상 수상은 내가 받은 것처럼 기쁨이 컸다. ‘즐거운 복희공연을 앞두고 기자간담회가 있었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즐거운 복희드라마센터에서 꼭 하고 싶은 이유들을 말했다. 내가 연극을 처음 시작한 곳이라는 의미도 있고, 즐거운 복희의 상징인 깊은 호수를 표현하려면, 관객석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드라마센터의 무대가 가장 적합한 곳이기 때문이다. 무대 미술상 수상자 손호성 씨와 조명상 수상자 김창기 씨가 그런 뜻을 충분히 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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