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재엽 '맨버거(manburger) 그 속엔 누가 들어있나?'

clint 2016. 7. 1. 20:11

 

 

 

 

어둠 속에서, 굉음이 들려온다. 확대, 증폭되어 무척이나 폭력적으로 들려오는 이 소리는, 타자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다. 불이 켜지면 시나리오 작가인 '치치'가 타자기로 글을 쓰고 있다. 치치는 말한다. 영화 대부의 꼴레오네가 로버트 드 니로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꼴레오네가 드니로인지 알파치논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고. 얼핏 스쳐 지나가는 대사 같지만, 무척 중요한 대목이다. (이 대사는 훗날 치치의 죽음과 연관된다) 꼴레오네는 알파치노가 연기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다. 왜곡된 진실을 신념처럼 믿는 사람들. 그들은 위험하다. 잘못된 그의 신념이 그의 삶을 이끌어온 원동력이라면 더욱 그렇다.

 

 

 

 

 

연극 <맨버거, 그 속엔 누가 들어있나?>에는 특별한 주인공이 없다. 모두가 주인공이고, 모두가 중심이다. 무대에 오르는 십여 명의 인물에겐 저마다의 욕망이 있고, 그들의 욕망이 크고 작게 충돌하며 극은 전개된다. 그들에게 지금 이 순간은 인생의 마지막 기회다. 벼랑 끝의 인물들은 더욱 크게 충돌하고 부딪힐 수밖에 없다. 충돌한 그들의 욕망은 마치 폭죽처럼 극의 곳곳에서 터진다. 그러나 그런 갈등과 대립이 신경질적이거나 무겁지 않고, 무척이나 감각적이다.

이 극에서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은 치치, 모모, 페페 이렇게 셋이다. 그들의 관계가 흥미롭다. '치치'는 잘 나가던 시나리오 작가로 지금은 세상에 없다. '모모'는 치치처럼 잘 나가고픈 시나리오 작가로, 세상에 있다. 그러나 이름을 알린 죽은 작가와 아직 무명인 살아있는 작가. 어느 쪽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죽은 '치치''모모'에게 자신의 남은 육신을 먹어줄 것을, 그리하여 계승하여 줄 것을 요구한다. 또한 '치치'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시나리오 주인공 역할에 흠모했던 웨이트리스 '나나'를 캐스팅해줄 것을 부탁한다. 죽은 '치치'는 이미 이 세상에 없지만, 그는 타인을 통해서라도 존재하고픈, 존재의 욕망을 품은 자다. 한편 시나리오 작가인 '모모'와 사설탐정인 '페페'는 자꾸 얽힌다. 영화에, 욕망에 눈먼 자들이 그 둘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상 역시 무척 비슷한 모습으로 설정되었다. 같은 디자인의 옷에 포인트를 준 소품의 배색만 다른 식이다. '모모''페페'의 직업은 정반대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무척 닮아있다. 인간을(혹은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는 작가와 인간이(혹은 인간의 욕망이) 얽힌 사건을 탐구하는 사설탐정은 '탐구'한다는 맥락에서 같다. 그러나 둘은 직업은 다르다. 작가는 현실을 통해 허구의 세계를 만들고 탐정은 오직 현실을 기초로 한다. 다른 듯 닮은 두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작가가 되었다가 주방보조가 되기도 한다. 인생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등장인물들은, 누가 작가고 누가 사설탐정인지 차분히 판단하지 못한다. 그들의 욕망은 그들이 보고 싶은 대로 사물을 바라보게 한다. 눈 먼 욕망은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진실을 왜곡하며, 왜곡된 진실을 진리인양 믿게 한다.

 

 

 

 

 

인생의 벼랑 끝에 선 인물들의 욕망은 비뚤어지기 쉽고, 그것은 결국 인육을 먹는 극단적인 행위에 이르게 된다. 맨버거를 먹는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일탈적이고 그로테스크하며, 또한 매혹적이다. 그들이 먹은 사람 고기는 바로 시나리오 작가인 '치치'의 육신이다. 그들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동물적으로 인육을 먹는다.

'치치'는 호텔 주인인 '파파'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인육으로 요리되어진다. '파파''치치'를 죽인 이유가 재미있다. 대부의 꼴레오네가 드 니로라고 믿었던 '파파', 꼴레오네는 알파치노라고 분명히 말하는 '치치'를 죽이는 것이다. '파파'는 꼴레오네가 알파치노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것은 자기 인생의 믿음이었고, 그 믿음이 깨지면 그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믿음이 무너지고, 자신의 인생이 흔들리는 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 평생을 믿어온 진실이, 실은 진실이 아니었다는 사실. '파파''치치'를 살해하고 그를 먹는 행위로 진실을 먹어 없애버린다. 하여 자신의 거짓된 믿음을 지켜나간다. 그는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은 강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파파' 역시 결국 '나나'에게 살인을 당한다. 그들이 인육을 먹는 장면에서부터 비약해 작품은 갑자기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인육을 먹고,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고, 다시 맨버거를 먹기까지의 과정은 너무 빠르게 전개되어 어지럼이 일었다.

 

'욕망''그로테스크', 혹은 '잔혹'은 매우 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 돈에 대한 욕망, 성공이나 출세에 대한 욕망, 몸에 대한 욕망, 관계에 대한 욕망 등등욕망이 넘쳐나는 시대다.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비대한 욕망을 한 입 베어 물어 보자. 연극 <맨버거, 그 속엔 누가 들어있나?>를 보고, 욕망을 맛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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