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은 왜 자살했을까. 연극 ‘소월’은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한때 시인을 꿈꿨고 지금은 연극을 하고 있으나, 그마저도 그만둘 위기에 처한 심현규. 그는 스승의 유언에 따라 시인 김소월의 마지막을 담은 연극을 만들게 된다. 스승이 왜 이런 유언을 남겼을까 궁금해하던 그는 점점 소월의 생애로 빠져든다. 예술가이자 한 집안의 장손이고 가장인 ‘인간 김정식’의 모습에서 자신의 오늘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김소월이 왜 자살했는지, 과연 자살했는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심현규가 김소월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듯, 그때 그 아픔이 예술가들에게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시절 예술가들이 나라를 잃은 슬픔에 울어야 했다면, 지금 예술가들은 대중을 잃은 슬픔에 울어야 한다.
문학으로 구국운동을 하던 ‘사조’에서 벗어나 삶의 희로애락을 읊었던 김소월이 허약한 시인이라 비난 받았던 것처럼, 지금의 예술가들도 유행과 책임감 속에서 방황한다. 그런 점에서 심현규의 부인이 노래방을 운영한다는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마음을 읽어주는 시보다 스트레스를 날려줄 노래가 더 환영받는 세상. 김소월의 시도 작은 화면과 전자음으로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다. 실제 노래방 반주기로 심현규와 부인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관객은 동행처럼 그들을 지켜보게 된다.
이 작품은 극본을 쓰고 연출한 작가 우현종 본인의 고민이 담긴 연극이기도 하다. 예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려는 주인공은 밤마다 꿈에서 소월을 만나고, 남들이 자살이라고 단정짓는 소월의 사인에 계속해서 의심을 품는다. 이것은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는 예술, 혹은 예술적인 것에 대한 그의 질긴 집착을 보여준다.
소월이 왜 죽음에 이를 정도의 고통을 겪었는지에 대해 좀더 분명히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소월의 마지막 10여년은 극중 극의 형식 속에서 끝내 명확히 해결되지 않았다. 죽을 수도 없고 죽지 않을 수도 없고, 그만둘 수도 없고 그만두지 않을 수도 없는 그 고민의 끝은 결국 무엇인가
현규는 대학시절 은사님인 난대 오주경 선생님의 부고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가게 된다. 난대의 손녀딸인 채란이 현규에게 반갑게 인사하고는 할아버지의 유언이 담긴 봉투를 건넨다. 어느 날 악몽을 꾸고 새벽녘에 잠이 깬 현규는 채란이 건넨 봉투를 열어 편지를 읽는다. 내용인즉 소월의 죽음을 밝혀달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봉투 안에는 일억 원 권 수표가 들어있다. 다음 날 소월과 안서의 시 제목으로도 유명한 ‘삼수갑산’이라는 고급술집에서 화려한 채란을 만난다. 채란은 현규와 소월의 처지가 비슷한 점, 실제로 나이도 엇비슷하고 조혼을 했고 집안의 장손이며 아버지의 아픈 과거가 있고, 무엇보다 뛰어난 예술적 감수성, 마지막으로 현재 시를 쓰지 않는 점이 같다고 말한다. 채란은 현규에게 소월을 소재로 연극을 만들어달라고 말한다. 현규는 스스로 부인에게까지 감추고 있던 자신의 우울증과 비애들이 점차 소월의 모습과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고 시인 김소월과 인간 김소월을 다시 보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소월에게 빠져들게 된다. 현규는 중요한 몇 가지를 알게 된다. 소월의 스승인 안서의 친일행각이 밝혀진다. 전보다 더 심한 불면증과 정신질환을 앓는다. 소월의 죽음에 둘러싼 사실과 추측을 토대로 희곡을 완성시키려 한다. 하지만 우연찮게 발견한 ‘가면’이란 잡지를 통해 현규의 은사인 난대의 친일행각이 밝혀지는데....
우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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