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기리쉬 까르나드 '나가 만달라' (인도희곡)

clint 2016. 3. 19. 11:50

 

 

 

 

Nāga-Mandala
원작: 기리쉬 까르나드(Girish Karnad)
번역: 허동성

 

 

기리쉬 까르나드(Girish Karnad)

[인드라는 친구가 된 가루다에게 호의를 베풀어,새가 뱀을 잡아먹을 수 있는 권한을 준다. 이로 인해 새 종족인 가루다와 간다르바는, 뱀족인 나가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생물적으로 우위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간다르바가 나가에게 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아래의 설화에 근거해서 나온 이야기이다. 인드라는 천계의 왕이었던 천공신 디아우스와 대지모신 프리티비의 아들로, 하늘과 땅의 결합이라는 혈통 자체도 대단하지만 그의 특이점은 그가 탄생하기 전의 수십 년간으로 인해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그는 탄생해야 할 시기가 된 후에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고, 수십 년간을 어머니의 태내에서 성장이 멈춘 채로 머물러 있었다. 그 덕분에 어머니의 능력을 흡수해 세상에 태어난 인드라는, 대지를 밟는 존재- 즉 생명체간의 균형에 대해 간섭할 수 있는 힘과, 이상하리만치 강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 능력은 아슬아슬한 평행을 유지하던 천계(아마라바티)와 마계(안다카)간의 세력구도를 단숨에 천계의 우위로 기울게 만들 정도의 비정상적인 강함이었고, 결국 이것으로 인해 그는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생명체간의 상하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세상의 균형이 어긋날 정도로의 변화는 일으킬 수 없지만, 한 종족 대 종족 간의 관계 정도는 그의 뜻대로 바꿀 수 있었다. 이 힘으로 그는 새를 뱀보다 먹이사슬에 우위에 두었고, 새 종족을 상위로 올렸다. 이 '새가 뱀보다 강한'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뱀은 강제로 그 능력을 제한당했다.
이것이 바로 '뱀 종족'인 나가족이 '새 종족'인 간다르바족에게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 이유이며, 간다르바족의 '권한'을 유지하기 위해 나가족에게 나타난 '저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나가족의 간략한 설명은 아래와 같다.

 

 

 

마계의 한 곳에 위치한 나가족의 나라에 거주하는 뱀신으로, 반신/정령에 속하는 종족이다. 토지를 비옥하게 하는 대지의 속성을 가져, 농민들의 숭배 대상이 된다. 신성으로는 신보다 낮으며, 지위상으로 마신의 아래에 있다. 대지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땅은 비옥하며, 흙을 이용해 생활공간을 만든다. 하반신이 뱀이고, 알에서 태어나는 란생(어미가 나가족일 경우에만 알로 태어난다)이다. 나가는 창백한 피부와 노란 눈에 뱀과 같은 가는 세로형 동공을 가지고 있다. 하체가 뱀이고, 소매 없는 옷을 입으며, 약이 든 주머니를 가지고 다닌다.

나가는 강한 체력과 스테미너의 소유자로, 특히 가장 높은 스테미너를 가져 쉽게 지치지 않는다. 금속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무기는 잘 사용하지 않으며, 거의 맨손으로 싸운다. 매우 강한 악력 (손아귀 힘)을 가지고 있고, 그들만이 다룰 수 있는 독특한 약과 독을 사용한다.
파드마의 보상에 따라 가지고 있는 약과 독을 추가할 수 있다. 성정은 내성적이고 조용하며, 종족간에 결속이 강하고, 인내심이 강하며 은밀한 부분이 있다. 나가(Naga)라고 하면 인도어로 뱀 혹은 뱀신을 뜻하는데 대대로 뱀은 땅을 비옥하게 해준다는 생각과 독을 가진 무서운 종족으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인도의 마신으로 분류되는 아수라를 모시는 정령으로 여겨졌다. 이를 통해 유추해보면 뱀은 나가족의 하수인으로 여겨지며 신성시되는 동물이라 할 수 있다. 허나 신성시여겨지는 동시에 뱀의 독과 그 외관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즉, 라니가 뱀의 여자, 뱀의 여신으로 여겨지는 것에는 인도 신화 속의 나가족과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잡다하고 쓸모없지만 알아두면 재미있는 잡지식:Q  참 여기에 나온 '간다르바'라는 종족은 인간의 모습에 황금빛 날개를 가진 반인반조의 종족이라 보면 됩니다.

 

 

 

 문학과 연극, 동양과 서양 사이에 존재하는 ‘희곡’이라는 이름
나는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희곡을 쓰는 작가이다. 한국은 남과 북이 이념적 대립으로 갈려져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다. 1950년에 벌어졌던 한국전쟁으로 인해 공산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조선 민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과 자본주의 체재를 받아들인 ‘대한민국(남한)’은 반 백년이 넘은 지금 이 시각까지 정전 상태가 아닌 휴전 상태를 유지한 채 서로 대립, 반목하고 있다.
한반도의 남쪽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나는 그곳에서 ‘시’도, ‘소설’도 아닌 ‘희곡’을 쓰고 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희곡은 일찍이 엄연한 문학의 한 장르로 인정받아 왔지만 연극 쪽에서는 배우, 관객과 더불어 연극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문학과 연극은 예로부터 한 식구였다. 가무희(歌舞戱)가 결합된 동양과 서양의 제천의식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詩學]은 그 자체가 ‘시에 관한 이론’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에 관한 이론’이었고 고대 그리스의 시인은 극작가이자 배우였으며 그 자신 스스로가 한 사람의 관객이었다. 중국의 오래된 문예 이론서인 [문심조룡 文心雕龍]과 인도의 연극 이론서인 [나티아샤스트라 Natya Sastra] 역시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희곡은 문학이면서 연극이다. ‘문학성’이 풍부한 희곡은 그 희곡이 뛰어난 연출가에 의해 무대 위에 올려지면서 비로소 ‘연극성’이라는 몸을 얻는다. 그리스의 극작가들과 영국의 셰익스피어, 러시아의 체호프뿐만 아니라 중국의 잡극(雜劇)과 원곡(元曲), 곤곡(崑曲)과 경극(京劇), 일본의 가부키(歌舞伎)와 노(能), 교오겐(狂言)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비언어 연극인 인도네시아의 그림자극이나 한국의 전통 그림자극인 만석중 놀이 역시 역설적이게도 짙은 문학성 때문에 오히려 연극으로서의 가치를 발한다.
희곡은 영어로 ‘drama’ 혹은 ‘play’, ‘theater’ 등으로 불려진다. ‘drama'는 그리스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행동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고 ‘play'는 ‘놀다’, 'theater'는 ‘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연극으로서의 희곡은 행동하고 유희하며 함께 보고 즐기는 예술인 셈이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그 중에서 ‘drama'와 ‘theater’는 다분히 서양적인 개념이고 ‘play'는 동양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동양에서는 ‘판’을 벌려 ‘논다’는 얘기가 있다. 서양에서 희곡을 인간의 행동을 표현하는 문학 혹은 극장에 들어와 보는 문학이라고 생각한 반면 동양에서는 배우와 관객이 한 자리에 모여 여러 가지 몸 재주들을 보여주며 다같이 한바탕 흥겹게 노는 행위예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양에서는 연극을 말할 때 ‘굿’이나 ‘짓거리’에서 빌려온 ‘축제’ 혹은 ‘잔치’라는 개념이 따라온다. 문학적인 색채가 짙은 서양 희곡에 비해 동양의 희곡들이 한 편의 연극을 만들기 위한 대본으로서의 연극성이 강한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번 발표에서 한국에 소개된 인도 희곡의 면면을 소개하고 한국의 희곡에 나타난 인도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언급하는 ‘희곡’이라는 단어 속에는 위에서 전제한 문화사회사적인 사상과 배경이 깔려있다는 점을 인식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에 소개된 인도 희곡의 흐름
한국과 인도 양국간의 문화교류의 역사는 일천하다. 먼 옛날 아유타 왕국의 허 황후가 가야의 김 수로 왕을 찾아 바다를 건너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제외하면 아주 오랫동안 두 나라 사이의 문화적인 교류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신라 유학생들이 인도 북부에 존재했던 세계 최초의 학교인 날란다 대학에서 공부했다는 오래된 문헌의 기록을 빼고 나면 그 흔적은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한국과 인도는 여태껏 지리상의 거리뿐만 아니라 심정적인 거리에서조차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한국과 인도 양국 모두 서구 및 아시아 열강의 식민 지배를 거쳐 독립을 쟁취한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교류의 싹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이 아주 오래전부터 문화적인 관계를 맺어온 것에 비하면 한국과 인도의 문화정신사적인 만남의 역사는 보잘 것 없다. 특히 문학 중에서도 희곡의 경우는 그나마 작은 흔적이라도 남아있는 시와 소설에 비하면 크게 거론할만한 수준의 것이 못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비견되는 인도의 정신적인 양대 문학유산인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Mahabharata]와 [라마야나 Ramayana] 그리고 산스크리트 연극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극시인 칼리다사가 [마하바라타]의 일화를 흥미롭게 극화시킨 인도 고전극<샤쿤탈라 Sakuntala>가 1990년대 초반에서야 한국에 번역됐다는 사실은 이러한 저간의 속사정을 반영해주고 남음이 있다.
한국에 소개된 인도 최초의 희곡은 시인이나 교육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작품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문화예술인을 중심으로 인도와 교류해왔던 한인문화연구회에서 펴낸 한인문화 제 4호에 타고르의 대표적인 희곡<우체국>(1986년)이, 제 5호에<찟드라>(1987년), 제 6, 7, 8호에<봄의 윤회(輪廻)>(1988-1990년), 제 9, 10호에<고행자>(1991년)가 시인 김양식의 번역으로 실려 있다. 그 중<우체국>은 1999년 4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공연장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한국의 중견연출가 채윤일에 의해 ‘20세기 대표작가 연극제 시리즈’의 하나로 공연되었다.
1997년 가을 서울/경기 지역(Seoul-Kyonggi)에서 열린 제 27차 ITI 총회를 겸한 세계연극제(’27 ITI Congress&Theatre Of Nations ’97)에서 인도 최초의 극작가로 알려져 있는 바사(Bhasa)의<중간의 것 Madhyama Vyayogam: The Middle one>이 남인도 케랄라 주의 ‘소파남 극단(The Sopanam Institute)’에 의해 현대적으로 각색되어 공연되었다. 제목 중에서 ‘마드야마’는 ‘중간’을 의미하고 ‘뱌오감’은 인도 연극사에 등장하는 하나의 특수한 연극형태를 일컫는 이 작품은 판다바 왕자와 100명의 사촌들이 왕권을 놓고 벌이는 암투에 관한 내용으로 인도의 고전 [마하바라타]에서 등장인물을 차용했다.
세기가 바뀐 2002년 가을 한국의 신석기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집터가 남아있는 서울 암사동 선사주거지에서 열린 세계 통과의례 페스티벌(Rites of Passage Festival 2002)에서는 예술감독 스루티 반도파타이(Sruti Bandopadhay)가 이끄는 스루티 예술단(Sruti performing Troupe)에 의해 인도 벵갈 지역의 통과의례 풍습이 선보였다.
2004년 여름엔 서울 국립국장 야외무대에서 인도 제 3세대 극작가 바달 시르카르(Badal Sircar)의 희곡<행렬 Michhil>을 한국에서 인도연극 이론을 전공한 허동성이 연출하여 무대 위에 올렸다. 캘커타를 무대로 지배 계급에 의해 착취당하는 민중을 통해 인도의 사회상을 대변하는 작품이었다. 바달 시르카르의 희곡은 ‘가난한 연극’을 주창한 유지니오 그로토프스키와 ‘민중 연극’의 창시자 아우구스트 보알 그리고 ‘환경 연극’에 대한 관심을 일관되게 보여 온 리차드 쉐크너가 지향하고 있는 작업의 연장선 위에 놓여있다.
2005년엔 인도 남서부 까르나따까 주의 전래설화에 바탕을 둔 기리쉬 카나드(Girish Karnad)의 희곡<나가만달라 Nagamandala>가 잡지 ‘동양현대연극연구’ 1호에 실렸다. ‘뱀과의 유희’라는 뜻을 품고 있는 이 희곡은 한국의 구렁이가 담을 넘는 설화와 유사하다.

 

 

2007년 처음 열린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The International Festival of National Theaters)에서는 인도 소파남 공연예술 연구원의<마야&카르나바람 Maya&Karnabharam>이 극단 대표인 카왈람 나라야나 파니까르(K. N. Panikkar)에 의해 공연됐다. 이 작품은<마야>와<카르나바람>두 편을 각각 말라얄남어와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한 것인데<마야>는 9세기 경 케랄라 주의 시인이었던 샥티바드라가 쓴 산스크리트 희곡<아샤라 추다마니>의 3막 마야 시탐캄을 원작으로 해서 락샤사들의 왕인 라바나(Ravana)가 라마의 아내 시타(Sita)를 납치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반면<카르나바람>은 산스크리트 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 바사의 걸작으로 거대한 영웅 카르나가 몰락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극단의 이름이 ‘무한을 향한 계단, 즉 절대의 존재로 나아가는 디딤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세계를 시각화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1970년대 초에 창단된 ‘소파남’ 극단은 고대 인도의 희곡, 시, 설화들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같은 해 가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eoul Performing Arts Festival)에서는 주목받는 인도의 젊은 여성연출가 줄레이카 차우다리(Zuleikha Chaudhari)가 2007년 뉴델리연극제에 출품하여 인도 연극계 신구세대간의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던<아라비안나이트 Arabian Night>를 무대 위에 올렸다. 독일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인 롤란트 쉼멜페니히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천일야화의 가혹한 열기를 품은 도시 속의 삶을 숨 막히는 욕망과 엇갈림의 스릴러로 그려냈다.
줄레이카 차우다리는 2008년 봄 아시아 연극 연출가 워크숍(Asia Theater Director Workshop)을 통해 뛰어난 텍스트 재 해석력을 발휘하면서 셰익스피어의 고전극<맥베스>를 강렬한 조명과 절제된 움직임으로 무대 위에 형상화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작업은 인도 독립 후 입센, 고골리, 사르트르, 까뮈, 로르카, 피란델로, 오닐, 밀러, 베케트, 이오네스코 등을 번안, 번역해서 무대 위에 올렸던 인도 현대극의 흐름과 결코 무관하지만은 않다.
한편 2007년 겨울 사단법인 한인교류회와 인도를 생각하는 예술인 모임 주관으로 막을 올린 ‘인도 문학예술의 밤’에서는 [마하바라타]의 축약본인<바가바드기타 Bhagavad-Gita>의 일부분이 시타르의 라이브 연주를 배경으로 해서 공연되기도 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극시나 희곡 형태로 존재하는 인도의 고전극이나 현대극은 지난 세기인 20세기 후반부터 조금씩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단지 문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연극과 춤, 음악을 통한 공연예술의 형태로 희곡이라는 텍스트는 존재한다. 그것은 ‘희곡’이라는 장르의 확대를 통해 ‘희곡적인 속성이 무엇인가?’라는 보다 더 근원적인 물음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현재 한국에서 인도 희곡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텍스트는 희곡 그 자체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희곡적인 어떤 것, 이를테면 희곡 속에 잠재돼 있는 문학적인 기미나 전조가 깃든 능동적이고 가변적인 텍스트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시’가 아니라 ‘시적인 것’을 모색해나가듯 ‘희곡’이 아닌 ‘희곡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할 때 진정한 희곡은 비로소 쓰여 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희곡에 나타난 인도의 모습
동양에서의 희곡은 그 시대의 각종 문학과, 음악, 무용, 미술 등 문화전반에 걸쳐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처음 인도의 영향이 문헌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고대 연극 중 종합예술의 성격을 띠고 있는 고구려의 연희를 말하면서이다. 고구려악과 중국악, 서역악을 거론할 때 서역 중 천축(인도)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또 신라의 토착 음악인 향악 중에서 처용무와 오기를 언급할 때 사자무가 인도 특유의 동물의 의장을 한 춤이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그 후로 중세 연극을 거쳐 근대 연극에 이르기까지 인도에 관한 특별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전통극이 현대극으로 넘어오는 과정 이를테면 판소리와 탈놀이, 남사당놀이와 꼭두각시놀음이 창극과 악극을 거쳐 신파극과 여성국극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인도처럼 서양의 근대극에서 영향을 받은 한국 희곡에서 인도의 모습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서양 근대극의 세례를 톡톡히 받았던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한국 근대극의 시조에 해당하는 극작가 유치진과 김우진의 사실주의와 표현주의 희곡에서도 인도는 여전히 아주 먼 나라였고 해방 이후 등장한 반사실주의 계열을 대표하는 작가 오영진과 이근삼, 박조열과 이현화의 희곡에서도 그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 희곡에 인도의 모습이 간접적으로나마 투영된 것은 1990년대 초반에 발표된 이만희의 작품<피고지고피고지고>에서였다. 이만희는 그의 희곡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각각 ‘왕오’, ‘천축’, ‘국전’, ‘혜초’라고 지어 그가 16세에 당나라로 건너가 인도에서 건너온 바즈라보디(금강지)의 제자가 된 신라의 고승 혜초가 남긴 [왕오천축국전]의 영향을 받았음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만희 자체가 소년시절 불가와 인연을 맺었고 대학에서는 인도철학을 전공했으며 불교적인 인생관에 유난히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보다 더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1990년대 중반에 발표된 중견 작가 이강백의<느낌, 극락 같은>에서는 불상제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연극을 형식과 내용이라는 다소 이분법적인 구분법으로 접근했다. 희곡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 가령 ‘동연(동양 연극)’, ‘서연(서양 연극)’, ‘함묘진(묘한 진리)’ 등을 통해 두 가지 세계관을 함께 아우르려는 작가의 철학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그리고 이 희곡을 무대위에 올린 연출가 이윤택은 인도음악을 사용하여 작품이 품고 있는 관념적인 세계에 구체적인 옷을 입혔다.
세기가 바뀐 2004년 가을 국립극장에서 막을 올린 극작가 유진월의<푸르른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의 남자 주인공 현우는 연상의 연인 인경을 만나러 인도로 간다. 인경과의 재회를 통해 현우는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 실마리를 찾는다. 이 작품에서 인도는 등장인물에게 구원의 빛을 발견케 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그려진다.
2005년 겨울에 공연된 최창근의 희곡<12월 이야기>에서도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여행자’를 통해 인도 바라나시 강가의 풍경이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인도 속담이 인용되기도 하는 이 희곡에서 묘사된 인도의 모습은 다분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한 종교적인 측면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다.
<여행>이라는 작품을 끝으로 2007년 여름 아까운 나이에 불현듯 생을 마감한 연출가 겸 극작가 윤영선은 평소에 ‘인도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결국 그 바람을 성취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마음에 둔 인도 역시 지극히 이상적인 명상과 신화의 나라였을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지금까지 공연된 한국 극작가의 희곡에서 인도의 자취나 흔적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한국 시나 소설에서 ‘인도’라는 나라가 글감으로 등장한 것이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듯 한국 희곡에도 머지않아 인도의 아주 다양한 면들이 그려지리라고 기대해본다. 그 예로 최근 십년간 인도를 여행하고 돌아온 한국의 극작가와 배우, 연출가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그 추세는 이어지리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희곡을 통한 한국과 인도 양국의 문화적인 교류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오래된 미래’로 가기 위한 . . . 멈출 수 없는 ‘놀이’ . . .
동양의 대표적인 전통 연극 이론서인 인도의 [나티아샤스트라]에서는 연극의 기본 요소로 배우 및 연기술, 춤과 음악, 극장과 무대, 희곡, 청-관중을 들고 있고 또 하나의 대표적인 동양의 전통 연극이론서인 중세 일본인 제아미가 쓴 [화전서(花傳書)]에서는 배우훈련법, 분장법, 상연법/연출법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나머지 요소들은 별로 다루지 않는다. 또한 중국의 대표적인 전통연극인 경극에서는 연기, 음악, 의상 및 분장, 소도구, 무대 등을 중심으로 이론이 구축되어 있다.
서양의 극작/희곡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볼 수 있듯이 거의 모두가 문자기록 방식으로 창작되는 희곡에 관한 것이다. 반면 동양의 희곡 표현수단은 행위전승방식, 구비전승방식, 문자기록방식 등 세 가지 방법에 골고루 의존하면서 이루어져왔다. 이 점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문자기록방식 중심의 극작 전통보다 더 많은 장점들과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구성상에서도 서양 희곡의 구성은 대체로 ‘이야기’를 얽어 짜는 작업이 중심이라면 동양의 극작은 전통적으로 ‘행동의 덩어리들’을 얽어 짜는 데에 주력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극작의 긴장성을 획득하는 방식 역시 등장인물들의 갈등관계에 중심이 있지 않고 등장인물이 지니고 있는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나 풍요로운 음악, 스펙터클한 경관 등이 공연자와 청-관중 사이의 조화로운 개방적 상호관계를 맺는 차원에서 융합되는 데에 있다.
그와 연관하여 나는 이 발표문의 끝을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아주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사건을 소개하면서 맺고 싶다. 한국은 2008년 벽두 경제 살리기를 최고의 목표와 과제로 생각하는 대기업 CEO 출신의 대통령을 수반으로 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다. 그리고 그가 취임한지 백일이 채 안되는 때에 한국정부가 미국정부와 졸속으로 맺은 쇠고기 협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인터넷을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공유한 국민들은 스스로 한 자루의 촛불을 켜들고 한국의 수도 서울의 한복판인 시청 앞 광장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른바 ‘촛불정국’이라 일컬어지는,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이 촛불집회에 재밌는 현상이 벌어졌다. 우선 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이념의 성향을 떠나 남녀노소 불문하고 아주 다양했다. 어머니 손을 잡고 나온 꼬마가 있는가 하면 나이 지긋하게 드신 어르신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소풍을 나오듯이 집회에 참여했다. 집회 현장 한복판에서 학생들은 자유롭게 게임을 즐겼고 시민들 스스로가 마련한 작은 콘서트도 군데군데에서 열렸다. 게다가 국민들이 외치는 구호도 독재정권에 강력하게 저항했던 지난날 한국의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었던 것처럼 획일적이고 딱딱하지가 않았다. 새벽까지 진행된 집회 때는 시민들 스스로가 준비한 김밥과 초코파이가 등장해 밤을 꼬박 새운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었다.
집회가 열렸던 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 일대가 한순간 해방구로 바뀌었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그전에는 결코 찾아볼 수 없었던 진풍경이 마치 각본 없는 드라마처럼 아득하게 펼쳐졌고 그때마다 극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나는 대로 한복판에서 그 눈부신 광경을 지켜보면서 바로 이것이 희곡이고 문학이자 연극이라고 생각했다.
축제, 곧 카니발은 억압된 자들의 저항의 문화이며 민중들이 바라본 새로운 질서이자 유토피아를 향한 일종의 리허설이다. 축제의 장은 비 일상의 세계이다. 일상적인 현실의 세계는 일과 노동이 공존하는 실속의 세계지만 비 일상의 세계는 놀이의 세계이며 꿈과 희망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 일상의 세계에서 신화의 시간과 신성한 공간이 탄생하고 그 시간과 공간이 인간을 진정으로 인간답게 만든다고 볼 수 있다. 환상의 부활과 축제의 부흥을 통해 서민들은 고통과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는 현실의 역사를 용서하거나 긍정하고 당대 지배층인 정치권력을 풍자함으로써 그 권력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드러내고 그것을 넘어선 또 하나의 세계를 꿈꾸었다.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보는 축제의 이상은 자연스럽게 국가와 종교와 이념을 초월하여 모든 이들이 평화롭게 자유를 누리며 공유할 수 있는 생태적인 세계를 희구한 아나키즘의 사상과 연결된다. ‘무정부주의’가 아니라 ‘자율주의’로 해석해야 하는 아나키즘의 궁극적 목표는 공동체 문화에 기초하여 인간의 원시적인 감성과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한국의 전통축제는 그랬기에 생활축제였고 잔치가 벌어지는 판은 당연히 동시대의 춤과 노래가 어우러지는 가무백희(歌舞百戱)의 터였으며 그것이 곧 공연축제로 이어졌다.
병든 문명을 치유하는 그 축제의 공간에서 우리는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인류의 아름다운 미래를 불현듯 마주치고 만난다. 그렇다면 오래된 미래를 끌어당기기 위한 멈출 수 없는 놀이, 그것이 바로 모든 문학과 예술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희곡, 곧 ‘희곡적’인 것이 아닐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