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히가시 겐지 '뼈의 노래'

clint 2016. 3. 16. 21:17

 

 

 

 

 

바다가 보이는 일본의 작은 시골 마을 센보라. 이곳 마을에는 사람이 죽으면 바다가 보이는 산에 묻어주고, 그 주변을 바람개비로 꾸미는 풍습이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흙에서 뼈를 꺼내 조각품을 만들어 유족이 간직한다. 죽은 사람을 마음에 품는 그들만의 오랜 풍습이다. 뼈 세공사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뼈의 노래’다. 이 작품은 일본 작가 히가시 겐지가 집필한 것으로 전통과 문명, 가족 간 소통의 부재 등 많은 이야기를 정서적으로 담고 있다.

아버지 겐고는 마을의 풍습을 지키는 뼈 세공사다. 사람을 보면 외형을 보기보다 살과 근육 안에 들어있는 뼈를 먼저 가늠하고 파악할 정도로 일평생 뼈 세공으로 삶을 이어왔다. 죽은 사람의 뼈로 세공을 하는 아버지가 탐탁지 않았던 큰 딸 카오루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도시로 떠났다. 그곳에서 동생 시오리와 함께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의 갑작스러운 행방불명 때문에 고향까지 내려왔다. 작품은 큰 딸 카오루가 고향집에 내려온 날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18년 만에 만난 아버지 겐고와 큰 딸 카오루. 오랜 시간 보지 못한 아버지와 딸이 18년 만에 처음 한 일은 창고에 숨어든 에뮤(조류의 일종)를 잡는 것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창고에 들어가 에뮤와 한바탕 푸닥거리를 한 카오루는 모든 소동이 끝난 후 아버지와의 서먹한 관계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고향집에 돌아온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동생 시오리가 이곳에 있냐는 질문이다.

뼈의 노래가 들린다면서 고향으로 내려온 시오리와 그런 시오리를 아직도 품안의 자식으로 챙겨주는 아버지 겐고, 그들 사이에서 이방인처럼 멋쩍게 서있는 카오루. 18년 만에 재회한 이들 가족의 모습은 어색하기만 하다. 불치병에 걸린 시오리의 상태를 잘 몰랐던 카오루는 고향집에서 생활하며 동생에게 일어난 일들을 알게 되고, 아버지에게 품었던 막연한 미움과 원망을 조금씩 거두기 시작한다.

무대는 겐고의 작은 시골집이다. 특별할 것 없는 전통 마을의 가옥 안에서, 한 가족의 오래된 소통부재와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 겐고가 전통을 지키는 입장이라면 큰 딸 카오루는 그것을 탈피해 문명과 도시화로 나아가는 인물이다. 아버지의 일을 야만적이라고 여긴 큰 딸은 전통과 풍습을 거부하며 고향을 떠났고, 18년 동안 한 번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얼굴 한 번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부녀간의 골은 매우 깊었던 것이다. 사실 어쩌면 이는 아버지에 대한 딸의 일방적인 상처일 수 있다. 아버지는 늘 같은 자리에서 언젠가 돌아올 딸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부정하던 카오루가 동생 때문에 고향에 돌아오는 만큼, 양 극단에 있던 두 부녀를 한 곳으로 불러온 건 결국 시오리인 셈이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가장 큰 불안이자 중요한 균형이다. 그녀가 가진 태생적 결함과 불안이 있기에 양 극단에 떨어져 있던 겐고와 카오루가 중심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가까이 할 수 없는 아버지와 큰 딸은 작은 딸에 의해 접촉하고 만난다. 그 만남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가져오고, 결국은 두 부녀 안에 있던 오래된 상처를 폭발시킨다.

시오리에 의해 처음으로 손을 맞잡게 된 아버지와 큰 딸. 이들은 아직 어색한 사이지만 시오리가 믿는 이 땅의 전설을 보여주기 위해 합심하기 시작한다. 시오리가 믿는 전설은 모든 고통과 슬픔을 사라지게 해준다는 바다의 신기루다. 천개의 바람개비를 만들어 돌게 하면 신기루가 나타난다는 전설인 것이다. 하나의 소망을 향해 그들이 바람개비를 만들 때, 이 가족은 서서히 하나가 되고 있었다.

 

 

 

따뜻한 작품이다. 일본 작품 특유의 섬세하고 세밀한 정서가 곳곳에 포진돼 있으며, 사소하고 작은 것을 통해 인물의 심리와 변화의 지점을 나타내고 있다. 작가 히가시 겐지가 과거 상처받은 사람들이 그 일에 맞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주로 그린다고 했다. ‘뼈의 노래’ 역시 그렇다. 모든 인물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고 있다. 섬세한 필치로 대범한 행동을 쓰는 작가의 문법이 캐릭터를 더욱 극대화 해 보여준다.

극 중 시오리는 불치병 때문에 환청을 듣는다. 겐고는 이것을 ‘뼈의 노래’라고 표현한다. ‘제대로 된 살을 붙여달라는 외침’이라고 이야기 한다. 곱씹어볼수록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대사다. 아마 이 대사가 ‘뼈의 노래’를 가장 잘 대변하는 구절이 아닌가 싶다.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을 찾았던 관객에게 잘 어울리는 연극이다.

연극은 소통이 부재한 한 가족의 갈등을 통해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가치와 삶, 존중과 회복에 관한 의미 있고 진중한 메시지를 전한다. 더불어, 결국에는 비로소 함께 누리는 화합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작품의 원작자이자 연출가인 '히가시 겐지'는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과거의 일이나 사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그것에 맞서는 삶의 모습을 그리는데, 감상적인 작풍과 역동적인 무대장치가 가미된 그의 작품 세계는 '삶'에 대한 희망을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주력한다. 최근의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치유의 부재에 대해, 히가시 겐지의 작품들이 해답을 주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번역가의 글(한국 공연 연출)

희곡 <뼈의 노래>는 2007년 한국연출가협회가 주최하는 '아시아 연출가 워크숍'을 통해 한국에서 첫 무대를 선보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옛날 일본의 한 지방에서 실제 있었던 토장과 바다를 향해 무덤을 만들고 그 위에 바람개비나 횐 꽃을 꽂은 뒤. 몇 년 후에 다시 사체를 파내고 그 뼈에 조각을 해서 간직하는 특이한 풍습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래서 현대의 일본 사람들도 익숙하지 않은 이런 풍습을 담은 희곡을 한국 연극인들에 의해 공연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또한 일본적인 요소들이 작품 곳곳에 보이는 작품이라 연출가를 비롯한 배우, 스태프들의 고생과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이 희곡을 한국관객에게 선보여 주시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작가 히가시 겐지는 극단 신주쿠양산박에서 활동했으며 1999년에 극단 사지키도지를 창단하여 활발한 연극 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다 히가시 겐지의 작품은 대부분 그의 고향인 큐슈지방 후쿠오카률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시골 마을이나 동네 등 작은 공동 사회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과거나 사회로부터 상처 받고 세상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 인물들이 그 상처에 맞서면서 그래도 살아간다는 보편적인 인간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 히가시 겐지 희곡의 근간이며 특징이다. 또 다른 특징은 마지막에 다이내믹한 무대장치의 연출로 삶에 대한 갈구를 힘차게 보여주는 점이다. <뼈의 노래〉의 경우 둘째 딸이 지붕에서 떨어지고 수많은 바람개비들이 바람에 도는 환상적인 장면인데, 이 외에도 극장에 거대한 풀을 설치한 <황금의 원숭이>. 무대에 탱크가 등장하는 〈뒷간의 변사> 등 작품 곳곳에 이런 볼거리들이 있다. 여담이지만 그가 추구하는 풍경을 무대에서 실현하기 위해 단원들과 함께 몇 달이나 무대 세트 작업을 한다. 이런 점들이 그의 작품이 일본에서 세대를 넘어 많은 관객들에게 호평 받고 있는 이유이다. 최근에 그는 극단에서의 작업뿐만 아니라 기획사에 작품을 제공하거나 외부연출가로 참여하는 둥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고 앞으로 기대되는 극작가. 연출가로 주목을 받고 있다.  2007년에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 배우들과 함께 <뼈의 노래〉를 만들었을 때 그는 오직 아는 사람만이 아는 작가였는데 이렇게 알려지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뼈의 노래〉 번역자로서 앞으로 히가시 겐지의 또 다른 희곡들도 한국에 소개되기를 기대하며. 독자가 <뼈의 노래>를 즐거운 미음으로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