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P.C. 마리보 '논쟁'

clint 2016. 3. 15. 21:39

원본과 번안본 두 편가 있음. 비교해서 보도록 추천

 

 

 

여자와 남자.. 과연 누가 변심하기 쉬울까? 이 논쟁의 답을 얻기 위하여 4명의 남녀는 서로를 만나지 못한 채 언어와 노래만을 배우며 자라게 된다. 그리고 성인이 되자 이들은 에덴동산에 방류되어 실험자의 의도에 따라 각기 남녀 한 쌍이 만나게 된다.
가면을 쓴 보호자인 울치와 만숙 외에는 만나지 못하였던 나와 누 그리고 너와 우는 처음 만나는 남자와 여자라는 존재에 기쁨을 느끼고 사랑을 겪게 된다. 그리고 서로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서로에게 숭배의 말을 전한다. 영혼, 생명, 영원히 변치 않을 사랑. 하지만 실험자의 잔혹한 실험은 이제부터이다. 이들은 한 쌍의 남녀로 맺어진 후 다시 각각의 여, 여 그리고 남남 그리고 각각의 남 녀 사이로 다시 만나게 되면서 이들은 혼돈의 감정을 갖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배신의 감정과 또 다른 사랑. 이렇듯 [논쟁]은 변하기 쉬우며 흔들리기 쉬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에덴동산을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하여 이들 4명의 남녀는 거리낌 없이 옷을 벗어던졌고 매우 자연스럽게 연기를 한다.
알몸 연기라는 부분에 대하여 언론에서 많이 노출하다보니 올 누드의 알몸 연기를 과연 맨 정신으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는 달리 연극이 시작하면서 이어지는 코믹한 장면과 대사들로 인하여 관객석은 시종일관 웃음바다였다. 게다가 언론에서 알몸 연기로 진행되는 연극임을 강조하며 한편에선 40대 남성의 문의전화가 많았다는 보도와는 달리 대부분의 관객석은 주 연극 관람층인 20~30대 층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알몸연기에 대한 기대가 많았던지 연극을 본 중에서 가장 많은 관객들이 극장 안을 꽉꽉 들어차고 심지어 입석으로 맨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서 보는 관객들도 많았다. 알몸연기를 하는 배우나 관람을 하는 관객이나 어색함 없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알몸연기를 해도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극단 서울공장의 연극 '논쟁'이 배우들의 전라 연기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29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논쟁'은 이달 13일 폐막까지 전회 공연이 이미 매진됐다.공연시에는 보조석까지 빼곡하게 관객이 차는 현상을 보인다. 극단 측은 16-27일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으로 무대를 옮겨 연장공연하기로 했다. 이처럼 '논쟁이' 뜨거운 관심을 받는 이유는 배우들의 전라 연기도 한 몫 하고 있다. 남녀 배우 4명이 전체 공연시간 70여분 중 50분가량이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연기한다. 배우들은 전라로 뛰고 구르며 거리낌 없는 연기를 펼친다.
연출을 맡은 극단 서울공장 임형택 대표는 "호기심으로 왔다가도 연극의 주제를 담아가는 관객도 많다"며 "관객의 외연이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가치 있게 평가하며 나체 연기보다는 작품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논쟁'은 18세기 프랑스 극작가 피에르 드 마리보(P.Marivaux)의 작품으로, 갓 태어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네 명을 격리시켜 자라게 한 후 성인이 되어 서로 만나게 함으로써 남자와 여자 중 어느 쪽이 더 빨리 변심하는가를 실험하는 과정을 그린다.

아무래도 원작이 18세기에 만들어진 작품이어서 그런지 18세기의 남녀차별의 정서가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듯 보였다.
게다가 과연 이 [논쟁]이라는 작품이 사랑에 대한 논쟁을 위한 작품인가 하는 것도 의심해볼 일이다.
내가 보기에는 [논쟁]은 그냥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이기적인 사랑의 비극적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각각 격리된 채 사회성을 익히지 않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방류되어 만나게 되지만 그들이 각각 소리쳐 외치는 것은 자신의 아름다움과 자신의 아름다움을 소리 높여 부르는 상대의 아름다움이다. 이들은 서로 만나 처음으로 요구하는 것은 자신을 숭배하라, 라는 것이다. 그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들은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 결국 이들이 사랑했던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고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소유욕에 기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찌 보면 사회성을 모두 탈락시켜버린 비뚤어진 교육과 이기심만을 부추기는 - 만숙과 울치는 나, 너, 누, 우에게 너희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고 세뇌시키듯 이야기 한다 - 교육이야말로 파국의 시초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Marivaux, Pierre Carlet de Chamblain de , 1688.2.4~1763.2.12

 

파리 출생. 랑베르 부인과 탕상 부인의 살롱에 출입하여 B.퐁트넬 등 문인들과 사귀었으며,
신구문학논쟁 (新舊文學論爭)에서는 근대파의 입장에 섰다. 1720년 《사랑으로 연마된 아를르캥》을 이탈리아 극장에서 상연하여 호평을 받았으며, 그 이후 대부분의 작품을 이 극장을 위해서 썼다. 몰리에르 식 전통적 희극을 개혁하여 여성의 연애심리에 대한 미묘하고 섬세한 분석을 특색으로 하는 희극을 창조하였다. 《사랑의 기습》(1722) 《사랑과 우연의 희롱》(1730) 《거짓 고백》(1737) 등이 대표작이며, 후에 A. 뮈세
, G. 포르토리슈 , J. 지로두 등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우아하고 세련된, 그리고 때로는 고답적인 문체는 마리보다지(marivaudage)라는 일반명사로 불린다. 또 《스펙타퇴르 프랑세》지(紙) 등을 단독으로 집필 ·간행하여 사회비평가로서도 활약하였다. 소설의 주요 작품인 《마리안의 생애》(1731∼1741) 《벼락부자가 된 농부》(1735∼1736) 등은 평민을 주인공으로 하여 풍속을 정확하게 묘사함으로써, 프랑스 근대 사실소설(寫實小說)의 선구적 작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