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베스 헨리 '마음의 범죄'

clint 2016. 1. 11. 10:36

 

 

 

 

 

 

매그래스가의 세 자매, 레니, 맥, 베이브를 둘러싼 멜로 드라마적 블랙 코미디다. 흑인 하녀의 미성년 아들과 간통을 하고 남편을 총으로 쏜 막내 베이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 자매가 할아버지 집에 모이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남편의 조종 속에 살던 세 자매는 수동적인 인간형으로 묘사되나, 극이 진행되면서 서로간의 대화와 이해를 통해 자연스럽게 유대감을 형성하게 되고 비로소 주체적인 자아를 인식하게 된다. 개인 스스로가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할 때 타인과의 관계 또한 행복해질 수 있다. 자의든 타의든 누군가의 조종 속에서 억압받고 있는 현대인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여성 작가 ‘베스 헨리’의 1976년 작품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지기도 전인 1981년 퓰리처상을 수상함으로써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매그라스 자매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고양이와 함께 목을 매달아 자살하고 난 후, 조부모 밑에서 자라게 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집에 혼자 남아있던 레니는 서른 번째 생일을 맞고, 뿔뿔이 흩어졌던 자매들은 베이브가 남편을 총으로 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시 한 집에 모이게 된다. 그러나 멕과 레니는 사사건건 부딪치며 서로에게 본의 아닌 상처를 주게 되고, 시누이가 고용한 사설탐정에게 흑인 소년과의 정사 장면을 찍힌 베이브는 궁지에 몰리게 된다. 할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자, 사촌인 칙은 바쁘게 비보를 돌릴 명단을 만들고 레니는 죄책감과 절망감에 빠진다.

한편, 멕은 자신 때문에 불구가 된 닥과 오랜만에 재회하게 되지만, 끝까지 가정을 지키는 그의 모습에 행복해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레니 역시, 멕을 험담하는 칙에게 빗자루 세례를 퍼붓고, 자신의 선천적인 난소 기형을 극복하며 사랑을 되찾는다. 베이브는, 변호사인 바네트가 자신 때문에 복수를 포기하고,
흑인 소년이 북쪽으로 떠나고, 남편에 의해 정신 병원에 감금될 위기까지 처해지자 마지막 수단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죽음 앞에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절실히 깨달으며, 레니와 멕이 함께라는 것에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된 베이브. 멕과 베이브는 하루 늦은 레니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자매들로부터 커다란 케잌을 받은 레니는 예상치도 않은 깜짝 파티에 크게 감동하며 행복하게 촛불을 분다.

이 작품에서는 드러나는 외부적인 범죄들(남편을 쏘고, 유부남과 놀아나는 등)와 그것들을 둘러싼 내부적인 근원의 관계, 단지 여성의 범죄라는 센세이셔널한 문제를 극화한 차원에서 벗어나서 파괴적인 충동을 자신과 남에게 폭발할 수밖에 없었던 배후, 즉 가부장제의 횡포를 고발한다. 베이브가 '그냥 정확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자신의 기사를 스크랩하는 것'처럼, 이번 작품은 왜곡하거나, 숨기거나 무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겠다. 여성간의 대화를 속에서, 스스로 문제점을 발견하고 가부장제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며, 결국 자주적인 인간으로 승화할 수 있는 계기를마련하는 것이다. 이 또한 다른 매력은 슬프고 비극적인 상황을 아이러니한 웃음으로 풀어 낼 것이다.
언 듯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자매들이 친근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짐은 곳곳에 숨어 있는 페이소스의 힘이리라. 유쾌하고 잔잔한 감동이 가슴속 깊숙이 파고들면, 결코멀지 않은 곳에 그네들의 슬픔과 희망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베스 헨리(Beth Henley)는 1981년 4월에<마음의 범죄>Crimes of the Heart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미국 남부 미시시피 출신의 여류 작가였던 베스 헨리에게 수여된 이 상은 여러 가지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즉 29세의 젊은 여성 작가가, 그것도 23년만에 처음으로 이 명예로운 상을 수상했다는 것이 하나이고 숭상작인<마음의 범죄>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이 되기 전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최초의 작품이라는 점이 또한 그러하다. 이러한 영광은 후에 이 작품을 영화로 각색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베스 헨리의 명성을 확고히 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로써 당시까지는 주변부에서 머물었던 여류 극작가가 미국 연극계의 주류에 진입하게 되고 그 선구적인 역할을 한 베스 헨리는 페미니스트 연극을 연극사의 주된 흐름에 합류시키는데 막대한 공헌을 했다. 페미니스트들은 베스 헨리의 퓰리처상 수상이 암시하는 페미니스트 연극의 사회적 약진에는 찬사를 보내면서도, 그녀의 극이 상투적인 남성 작가들이 선호했던 사실주의 전통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정치적, 예숙적으로 기존의 관습에 도전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베스 헨리는 케슬린 베츠코(Kathleen Betsko)와 레이첼 코닉(Rachel Koenig)과의 인터뷰에서 자기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히고 있다.
기자 : 극작품에 당신의 여성에 관한 관심이 나타납니까?
헨리 : 아마도 그럴 겁니다, 남부라는 지역적 요소와 동물에 관한 관심이 나타나듯이.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다 똑같이 나를 매우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들이지요.
기자 : 당신으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십니까 ?
헨리 : 그렇습니다.

 

 

본고에서는 베스 헨리가 근거를 두고 있는 미국의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연극적인 뿌리와 배경을 살펴보고, 이러한 초기 페미니즘과 그녀의 페미니즘이 어떻게 다른가를 고찰해 보겠다. 미국의 페미니즘은 1960년대의 사회 운동에서 시작된 여성 운동이 문화적 차원으로 확대되면서 생겨난 문학 이론을 일컫는 말로서 당대의 사회, 정치적 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 미국은 대외적으로 월남전 참전과 쿠바 위기가 있었고, 국내적으로는 흑인운동,여성 해방운동 등과 같은 기존의 체제를 전복하고 새로운 문화를 구축하려는 반 문화 운동이 정치,사회 예술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난 정치적인 반항의 시기였다.
이때 중산층 지식계급에 속하는 상당수의 여성들이 집안의 안락함을 박차고 나와서 여성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며"공동사회를 강조하는 신좌파 이념을 수용하고 인종 차별주의, 빈곤,제국주의 핵군비와 함께 부르주아 가족 구조에 도전"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여성들은 곳곳에서 모임을 결성하여 직장에서의 여성차별, 대중매체의 여성에 대한 왜곡된 보도 등에 항의를 하며 시위를 벌였다. 더 나아가 이들은 시위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일상 생활에서 겪는 좌절을 거리에서 극적으로 보여 주었다. 어빙고프만(Erving Goffman)이<일상 생활에서의 자아의 제시>The Presentation of the Self in Everday Life에서 본질적인 자아는 바로 "행위적"이라고 주장한 것처럼(Bigsby 10),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진정한 삶이라고 여겼던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몸으로 보여 주고자 했다.
즉 이 시기에는 시위가 곧 연극적인 성격을 띠어 정치와 연극의 구분이 흐려지게 되었으며 기존 텍스트의 "재현"보다는 "제시"가 더 큰 관심사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내용은 헬렌 케이사(Helene Keyssar)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도 알수 있다.
1968년 가을에 많은 여성 단체들이 가두 연극의 관례를 사용하여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의 성차별주의를 연극적으로 항의했는데, 이것은 사회의 다른 구석에서 연극과 정치가 결합하는 이벤트이자 소생하는 여성 운동의 공적인 첫 번째 인정을 의미했다. 2년후 영국 여성들이 미tm 월드 대회에 항의하기 위해 이와 비슷한 연극적 시위를 했다. 페미니스트 연극이 비로소 탄생하게 된 것이다.
헬렌 케이사는 이러한 운동과 현재 미국 드라마에 중요한 흐름의 하나를 형성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연극의 탄생을 관련짓고 이들 신좌파 운동가들과 미국의 실험국 예술가들의 뚜렷한 연관서을 찾아내고 있다. 이들 두 운동의 특징은 집단 활동에 높은 가치를 두는 것이며 이들은 지역사회나 관객과의 강한 유대와 그룹 내에서의 진정한 연대 의식을 달성하기 위해 주력할 뿐만 아니라, 권위와 제도권에 도전하며 안일한 삶에 안주하기보다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변화를 모색한다 이 집단은 남성의 억압 없이 자유로이 자신들의 고통과 좌절을 표현할 수 있는 출구를 찾고자 했으며 가부장제 사회에서 상실된 여성들의 목소리를 되찾고자 했다.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모든 여성들에게 자신들이 공통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여성들로 하여금 자주성과 자신감을 찾도록 의식을 불어넣어 주었다.


지금까지 페미니스트 연극의 발생을 촉진시킨 사회적 변혁의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이제는 연극사적인 측면에서 페미니스트 연극을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아리스트텔레스 이래의 서양 연극에서의 여성의 묘사와 여성 극작가의 위치 그리고 1960년대의 미국 실험극 운동의 양상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모든 문학 작품에서처럼 연극에서도 '여성의 침묵'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이를 인식한 1960년대 이후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극작가나 그들이 쓴 작품이 17세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존재하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을 하게 된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이 가부장제의 가치관에 있음을 주목하고 여성을 배제시킨 이들의 가치체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하면서 전통적인 연극사를 해체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움직임은 문학을 삶, 특히 독자와의 산 경험과 연결시킴으로써 여성의 자아 성장을 돕고 개인의식을 고양시키는데 목적을 둔 페미니즘 비평을 등장시킨다. 페미니즘 비평에서 가장 풍부한 결실을 맺은 분야인 여성 이미지 비평은 남성 작가들에 의해 묘사된 여성은 실제로는 남성의 가치 기준에 의해 만들어 놓은'가부장적 이미지'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 가부장적 텍스트 뒤에 숨어 있는 진정한 여성을 찾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또한 예술 창조력을 근본적으로 남성적인 것으로 간주해 온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서 작가는 텍스트의 아버지로서 작품의 유일한 기원이자 의미로 제시되어 왔다. 이에
여성 극작가들은 이같은 가부장적 행위를 해체하기위해 전통적인 작품들에 대하여 '텍스트를 거슬러서 읽는'전략방법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예컨데 쑤 엘렌 케이스(Sue-Ellen Case)는 자신의 책<페미니즘과 연극>Feminism and Theatre의 첫 장에서 전통적인 연극사를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해체하면서 남성 작가에 의해 무대 위에 올려진 여성은 가부장제의 허구적인 구축물이라고 지적한다.
가부장제 문화는 실제 여성을 억압함으로써 나름대로 여성을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를 고안하게 되었고 무대와 신화의 조형미술에 등장한 것은 실제적 여성의 경험과 이야기와 감정과 환상을 억압하면서 가부장제가 부여한 여성의 가치를 표현했던 바로 이 허구적 "여성"이었다.
이처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추종자들은 '연극'이라는 매개체를 사용하여 전통적인 여성 인물들의 역할을 여성으로 분장한 소년들에게 담당하게 함으로써 여성을 무대에서 제외시키고 억압하여 가부장제의 가치를 표현했던 것이다. 남성의 시각에서 본 여성상을 남성 배우가 연기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일반화와 정형화를 거치게 되므로 진실된 여성의 모습을 억압하는 것 일 수밖에 없다. 시몬 드 보봐르(Simone de Beauvoir)가 말한 것처럼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샘이 되는 것이다.
이를 인식한 페미니스트들은 기존의 여성에 대한 표현과 그 수용 체계를 무너뜨리고, 본래의 여성의 모습과 주체로서 여성의 위치를 되찾는데 주력하게 되었다. 이 방법의 일환으로 그들은 최근의 포스트 모더니즘과 탈구조주의등을 포함한 정치,사회,심리,언어학 등의 광범위한 이론을 도입하여 무대미학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고자 했다.
이들 중에서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쑤 엘렌 케이스는 새로운 페미니스트 드라마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들을 포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연극 이론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 결과 케이스는 전통적인 극 개념으로 널리 쓰여져 왔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는 다른 새로운 무대 미학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이러한 자신의 여성 무대 미학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대한 해체와 도전이라는 의미에서 '새로운 시학'(Case 114)이라 부르며 무대 위에서 여성이 어떻게 타자로서 위치해 왔으며 무대의 메커니즘 속에서 여성이 어떻게 억압되었는가를 파헤친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기존의 전통적인 서양 연극을 재해석 하고자 했으며, 전통적인 무대에서 소외당하고 왜곡된 여성의 이미지를 바로 잡는데 주력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극작활동을 했던 여성 극작가들을 발굴해 냄으로써 남성 작가 중심에서 밀려났던 여성 극작가를 재평가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 동안 등한시되었던 여성 극작가들은 새로운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데 문자화된 작품을 슨 최초의 영국 여성 극작가로 10세기경의 흐로스비타(Hrosvita)를 손꼽을 수 있다(Case 32). 그녀는 가부장적 전통이 깊이 부리를 내리고 있던 당대의 사회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까지도 연구될 만한 작품을 남겼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남성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끈질기게 주장한 것은 바로 흐로스비타가 활약했던 그 당시에도 존재했음을 알수 있다.
이와 같이 페미니스트 연극의 뿌리가 연극의 역사를 통하여 굽이쳐 감돌고 있지만 현재에 와서야 발굴 작업이 수행되는 이유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연구는 아프라 벤(Aphra Behn)이 쓴 17세기의 희곡들, 그리고 19세기에 코라 모와트(Cora Mowatt)와 같은 여성 극작가들이 쓴 희곡과 멜로드라마등에 주의를 기울일 뿐이다. 이들은 복잡한 여성의 삶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여성이 사회적으로 무력하다는 기존 개념들을 전복시키는 작품을 쓴 작가들이지만 애석하게도 페미니스트 연극의 측면에서 이들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우리는 여성의 목소리가 전통적으로 작지만, 나름대로 의미있게 문학에 반영되어 있음을 알수 있다. 이렇게 여성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삶의 중요성을 밝히고 여성에 관한 기존의 사회개념을 전복시키려는 움직임은 20세기초 여성극작가들에 의해서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들 중에서 대표적인 작가는 수잔 글라스펠(Susan Glaspell), 릴리안 헬만(Lillian Hellman), 로레인 헨즈베리(Lorraine Hansberry)를 손꼽을 수 있다. 이들은 모두 미국의 참정권이 쟁취된 1919년부터 여권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60년대에 활동했던 작가들로 여성 등장 인물과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직면하는 특별한 장벽에 초점을 맞추었다.

 

 


가장 대표작이라 할수 있는 수잔 글라스펠의<사소한 것들>Trifles은 남자탐정과 살인 용의자인 중년 시골 여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살인 미스테리물이다. 이 작품은 세부적인 것에서 극적 동기난 살해의 실마리를 찾아 대개 무시되는 공간을 노출시킴으로서, 두 여성간의 연대의식을 잔잔하게 드러내 줄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내면적인 삶을 보여주기 때문에 '민중극'이라 불리기도 한다. 릴리안 헬만은 그녀의 작품<아이들의 시간>The Children's Hour을 통해 그동안 언급되지 않았던 레즈비어니즘(Lesbianism)을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 이 작품의 파격적인 주제는 하나의 연극적인 사건처럼 보이지만, 여성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레즈비어니즘에 대한 사회의 망설임 없는 거부를 지지함으로써 단지 여성에 의해, 여성에 관한 극한 페미니스트 극 사이의 차이점을 명백하게 보여줄 뿐이다. 한편 흑인 극작가 로레인 헨즈베리는<햇빛속의 건포도>A Raisin in the Sun에서 유색인종에 대한 불평등한 사회 안에서 흑인 여성이 어떻게 '자아의 정체성'을 지켜가지는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여성들의 삶에 주의를 기울이고 여성의 시각에서 작품을 재평가하려는 연극사의 해체는 1960년대 초에 불붙기 시작한 미국 극단의 실험극 운동과 시기적으로 맞물렸다(이형식 274).
기존의 문학 사조인 '사실주의'가 모더니즘적 감수성과 다양하게 변화하는 현실을 표현하는데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반할 실험극은 상업성의 배격과 새로운 표현 방법을 갖는데 목적을 두고 미국 실험극의 산실 여할을 했던 카페 치노(Cafe Cino), 카페 라마마 (Cafe La Mama)등의 소극장에서 이루어졌다. 이들 실험극 연극인들은 리빙 띠어터(The Living Theatre), 오픈 띠어터(The Open Theatre), 퍼포먼스 그룹(The Performance Group)등의 실험 극단을 형성하는데, 그들은 기존의 사실주의가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허구적 환상에 빠지도록 하기 때문에 당면한 현실 문제를 표현하는데는 부적합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실험극을 통해서 여성의 삶을 남성의 틀이 아닌 여성 고유의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여성 극작가로 미간 테리(Megan Terry)와 마리아 아이린 포니스(Maria Irene Fornes)를 들수 있으며 미간 테리는 변신 기법을 통해 정형화된 인물을 붕괴하고, 배우들을 고정된 역할로부터 해방시키고, 사회 체제내에 숨어 있는 성 차별적 요소들을 고발함으로써 페미니스트 연극의 새로운 장을 열어 주었다. 그리하여 케이사는 그녀를 "미국 페미니스트 연극의 어머니"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신 기법과 페미니스트 연극이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과제로 보아진다. 변신기법은 그 동안 자아와 리얼리티를 고정된 것으로 간주하던 전통연극에 반기를 들고 자아를 "고정되고 숨겨지기" 보다는 "움직이고, 변할수 있고, 다양한"(Keyssar XiV)것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 연극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많은 여성들이 가부장제가 부여한 자아의 가면, 즉 아내,주부,인형,성적대상으로서의 스테레오 타입을 자신의 진정한 것처럼 집착해 왔으므로 변신은 변화의 가능성과 역할의 융통성을 보여 줌으로써 획일적이고 위계적인 세계관을 전복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신 기법을 사용한 실험극은 "실존이 가장 중요하다"("Presence is all")라는 이념을 토대로 허구보다는 현존, 극중 인물보다는 배우, 텍스트보다는 퍼포먼스를 중요시했으며, 또한 언어보다는 비언어적인 무대 언어의 중시, 직선적 내러티브 보다는 파편화된 텍스트, 즉흥성, 장르 혼합, 등의 극단적인 실험을 통해 연극의 수많은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의 실험성이 강했던 페미니스트 연극은 1973년에 월남전이 끝나고 사회 반항의 계기가 되었던 많은 요인들이 소멸되고,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보수적인 성향으로 바뀌어 가면서 실험극이 쇠퇴해 가자 자연히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몇몇 작가들은 잰 스튜어트(Jan Stuart)의 지적대로 "두 번째의 날카로움이 완화된 페미니즘 단계"를 모색하고자 했다. 이때 연극이 재현을 통해 인생을 모방함으로써 극적 재미를 제공한다는 기본적인 명제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여 사실주의 연극이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이 등장한 사실주의는 60년대 이전의 사실주의와는 다른 실험극을 통한 연극의 본질 자체에 대한 깊은 성찰과 탐색에서 얻은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여진다.(이형식 12). 마이클 휴벌(Michael Heuvel)은 1970년대 이후 새로 등장한 사실주의야말로 "포스트모던 조건의 압력과 형태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합성물"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또한 제랄드 버크위츠(Gerald Berkowitz)는 이렇게 생성된 사실주의야말로 미국인의 기호에 가장 알맞은 장르로서 미국인들의 소시민적 가정 생활을 잘 표현해 주고 있으며 아무리 커다란 사회적 격변과 위각 닥쳐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이 겪는 경험을 통해서만 절실하고 생생하게 느낄수 있다고 설명한다.

 

 

심오한 의미를 지닌 어떤 미국 극이 있다 하더라도, 실제적인 차원에서 보았을 때 그것은 사랑과 결혼, 생계 수단을 위한 돈벌이, 혹은 가정의 위기를 다루고 있는 극이다. 말하자면 경제공항의 실제 이야기를 통해 수치나 광범위한 사회적 변화보다는 그것이 어느 가정의 거실에 미치는 영향에서 찾아볼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았을 때 남성을 여성의 적으로 간주하던 과격한 주장과는 달리 평범한 가정사를 사실주의적 틀 안에서 설득력 있는 방법으로 전달하려고 했던 1970년대의 페미니스트 연극은 미국 관객들에게 서서히 다가가 같이 호흡하고 느낄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페미니스트 연극의 범주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
페미니스트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메시지의 초점은 서로 비슷하나 비평가나 극작가마다 다양한 견해를 취하고 있다. 자네트 브라운(Janet Brown)이 그의 저서 Feminist Drama에서 밝힌 다음과 같은 개념은 다양한 페미니스트 드라마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포괄적이고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주된 극적 행위자가 여성이고, 극 행위의 목표가 여성의 자주성 획득이며, 극 안에서 제시되는 상황이 사회적으로, 성적으로 부당한,즉 남성중심적인 제도에 의한 여성억압과 관련된 극을 페미니스트 드라마라 한다.
위의 개념과 사실주의가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적인 삶을 가장 잘 표현해 준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일상적인 여성의 삶을 사실주의 기법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베스 헨리는 대중과 함께 하였던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녀는 1952년 5월 8일 미시시피주의 잭슨에서 태어났다. 지역 극단인 뉴스테이지 띠어터( New Stage Theatre)에서 아마추어 연기 생활을 했던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은 헨리는 어릴 때부터 연극에 관한 관심을 키웠다. 연극 전공으로 남부 감리교 대학 (Southern Methodist University)을 졸업한 그녀의 경험은 1981년에 퓰리처상과 그후 뉴욕 극비평가 협회 상을 수상하고 브로드웨이에서 535회라는 장기 공연을 갖은<마음의 범죄>를 탄생시켰다.
고통스런 여성의 삶에 긍정적인 대안을 준<마음의 범죄>가 성공하자 이에 힘을 얻은 헨리는 이전의 작품<제이미 포스터의 경야>The Miss Fire Cracker Contest를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렸으나<마음의 범죄>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흥행에는 실패했다.
그후 헨리는<사교계 데뷔 무도회>The Debutante Ball,<럭키 스포트>The Lucky Spot 등의 작품을 썼으며 1986년에는<마음의 범죄>의 영화 각색본의 대본도 썼다. 그녀는 투쟁적인 페미니스트와는 달리 대부분 인간의 이상과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그동안 소외되고 무시되었던 여성의 삶을 그리는 데 관심을 쏟았다. 헨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가담하도록 독자나 관객을 종용하는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그녀는 사회와 성관념의 변화를 추구하는 급진적인 60년대의 페미니즘과는 달리, "개인으로서, 같은 여성내지는,남자와의 관계 속에서 여성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 (Keyssar 3)에 자신의 뜻을 두고 있다.
헨리의<마음의 범죄>는 여성의 고통스런 삶을 결속을 통한 자매애로 극복할수 있다는 긍정적인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고 있으며, 그렇기에 이 작품은 그녀의 대표적인 페미니즘적 작품으로서 주목 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