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부커상 수상작이며 2008년 아직도 여전히 베스트셀러인 얀마텔의 ‘파이이야기’를 연극으로 각색한 대본이다.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의 소설<파이 이야기>는 사람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는 일종의 명상록이다. 태평양에서 조난당한 16세 인도 소년의 삶을 향한 열정을 기술한 모험소설이라는 형식은 '희망의 철학'을 전하기 위한 효과적인 미장센으로 볼 수 있다. 이 희망의 철학을 육화된 언어로 풀어내는 장치들이 종교학과 동물행태학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16세 소년의 시점에서 태평양을 표류한 체험을 진술하는 제2부의 행간을 특히 주의 깊게 읽어야 마땅하다.
인도 소년 파이의 본명은 피신 몰리토 파텔이다. 파이는 '소변을 보는'이란 뜻을 지닌 '피싱 파텔'로 놀림당하는 것이 싫어 파이(π)라는 닉네임을 고안해냈다. 파이는 14세 때부터 힌두교·이슬람교·기독교를 동시에 믿기 시작했다. 세 종교의 성직자들이 이유를 묻자, "모든 종교는 진실하다"는 간디의 말을 대면서 "저는 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에요"(94쪽)라고 진술한다. 이 대목은 소년 파이의 종교관과 인생관을 그대로 잘 드러내면서 동시에 무려 227일 동안이나 계속된 태평양 표류기의 성공 가능성을 예감케 하는 장치가 된다.
전체 3부에 100개의 장으로 짜여진 이 소설의 핵심은 제2부 모험의 기록에 있다. 인도 폰디체리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도중 이들 일행이 탄 선박이 태평양 복판에서 침몰한다. 일가족과 함께 탄 동물가족은 모조리 목숨을 잃는다. 파이는 가까스로 구명보트에 타게 된다. 그런데 구명보트에는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 벵갈 호랑이가 동승한다. 맙소사, 벵갈 호랑이라니! 구명보트의 생태계는 결국 하이에나에 의해 얼룩말과 오랑우탄이 죽고, 벵갈 호랑이가 하이에나를 죽임으로써 먹이사슬 구조를 드러낸다.
51장에서 94장까지는 해양 모험소설의 압권이다.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의 긴장감 넘치는 모험을 기록한 이 대목은 생존 자체의 비루함에서 출발해 생명에의 신성성을 사유의 언어로 표출하고 있다. 두 생명체 사이의 긴장과 격정 그리고 공포가 있는가 하면, 상호이해와 교감의 드라마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처음 파이는 '계획6: 소모전을 펼친다'라는 작전으로 리처드 파커를 보트에서 밀어내려 했지만, 마음을 바꿔 '그를 계속 살려두자'는 새로운 계획을 짠다. 그 까닭은 다음 진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절망은 호랑이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 아닌가"(207쪽). 화자의 이러한 사유는 지상천국이었던 동물원에서 유년을 보냈던 체험에서 우러나온 생명의 관계성에 대한 경험적 인식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신을 향한 굳은 신념을 잃지 않으려 했던 존재론적 인식에서도 비롯된 듯하다. 그리하여 작가는 3부에서 '눈으로 본 것'만 믿으려는 일본인 조사관 앞에서 파이의 입을 빌려 처참하기 짝이 없는 드라마를 창작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면은 92장의 식충섬에 관한 묘사다. 이 책을 읽는 팁을 말한다면, 전체를 통독한 뒤 제1부를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면 좋다. 유년 시절 동물원에서 자랐던 체험을 진술한 4장, 세 성직자의 다툼을 다룬 23장 등의 에피소드들은 잔잔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이 소설이 출간된 뒤 인도 폰디체리에서는 소설 속 화자를 위해 동물원을 재건립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인도 폰디체리 출신 영화감독으로서 '식스 센스'를 만든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이 작품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파이는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모두 믿는 소년이었다. “단지 신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비난을 받으면서도 세 종교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족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홀로 구명보트에 남겨졌다가 온갖 시련을 겪은 후 구조되는 시간 동안 파이는 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의문을 품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결국은 신과 믿음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다. 이런 의미에서는 종교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
소설의 핵심에는 또한 ‘관계’의 문제가 있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 나아가 인간과 신의 관계, 우정과 사랑, 믿음과 존중…… 이 세상에서 공존하는 모든 존재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파이 이야기』는 ‘이야기’에 관한 소설이며 동시에 ‘인생’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파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그의 이야기가 정말 사실일까? 그것이 정말 일어난 일일까? 저자 마텔과 파이가 말하는 것처럼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떤 것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그것이 비록 완전한 거짓이라 할지라도, 진실이 돼버린다. “인생은 이야기이며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선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좀더 멋진 이야기를 선택하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마텔은 말하고 있다.
이렇게, “『파이 이야기』는 무엇에 관한 소설인가?”라는 질문에는 수많은 대답이 따라올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마다 모두 다른 대답을 할 것이므로.

Yann Martel
유명한 캐나다 문인이자 스토리텔러로 손꼽히는 얀 마텔은 1963년 스페인에서 캐나다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캐나다, 알래스카, 코스타리카, 프랑스, 멕시코 등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다양한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성인이 된 후에는 이란, 터키, 인도 등지를 순례했다. 캐나다 트렌트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다양한 직업을 거친 후, 27세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헬싱키 로커모쇼가 이면의 진실』로 등단한 그는『파이 이야기』로 2002년 부커상을 받았다. 영연방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부커상(Booker Prize)의 시상식이 열리는 10월이 되면, 영국 출판계에서는 수상자를 맞히기 위한 도박이 벌어진다. 그러나 캐나다 소설가 얀 마텔(Yann Martel·44)이 상을 받은 2002년은 그 익숙한 풍경이 재연되지 않았다고 한다. 거의 모든 출판인들이 “예측 자체가 무의미하다”며 마텔의 수상을 점쳤기 때문이다. 전세계 40개국에서 출간된 『파이 이야기』는 부커상 사상 최대의 베스트셀러로 떠올랐으며, 얀 마텔은 이 작품으로 단숨에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그는 책 속에서 기독교·이슬람교·힌두교를 동시에 믿는 인도 소년 파이(pi)의 사유와 모험을 통해 ‘삶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소설의 운명은 반은 작가의 몫이고 반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가 소설을 읽음으로써 작품은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된다”고 말하는 마텔은 신문, TV, 쇼핑을 멀리하고 창작과 요가에 전념하는 한편, 말기암환자병동 등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캐나다의 시골마을 사스카툰에서 소박하게 살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위에 언급된 책들 외에도 『셀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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