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이윤택 번안 재구성 '유랑극단'

clint 2015. 12. 3. 10:53

 

원작 : 쇼팔로비치 유랑극단

 

 

 

 

 

2차 세계대전 유럽을 배경으로 한 원작의 내용을 일제 강점기의 유랑극단 이야기로 바꿔 선보인다. 사건은 한 시골 마을에 유랑극단 '아리랑' 단원들이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연극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단원 '영진'은 돌발 행동을 해 독립군 혐의를 쓰고 지서로 끌려가게 된다. 이어 지서장의 계략으로 여배우 '춘심'은 볼모로 잡히고, 극단은 각종 난관에 봉착하며 한바탕 소동에 휘말린다. 단원과 마을 사람, 지서장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유랑극단의 공연 속 이야기가 겹쳐지는 극중극 형태를 취한다.

류보미르 시모비치의 <쇼팔로비치 유랑극단>과 나운규의 <아리랑>을 접목시켜 재창작한 작품이다. <쇼팔로비치 유랑극단>은 1975년에 발표된 작품인데,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어느 무더운 여름날 나치독일 휘하의 세르비아의 우쥐쩨라는 작은 도시에서 그곳 시민들과 <쇼팔로비치 유랑극단 단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은 희곡이다. 공연을 위해 전쟁지역을 마다않고 순회하며 공연 했던 극단 사람들의 역경과 시련 속에서, 사람들에게 연극이라고 하는 꿈과 이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을 절묘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나치 휘하의 세르비아를 일제치하의 조선으로 바꾸고, 유랑극단의 대표도 토월회의 박승희로 정하고, 많은 동포들이 일제의 핍박을 견디다 못해 북간도로 떠났듯이 대단원에서 유랑극단도 북간도로 떠나는 장면으로 마무리를 했다. 원래 <아리랑>은 박승희와 박진(朴珍)의 재기공연작품으로 <아리랑고개>라는 이름으로 막을 올리고, 최승희의 무용과 함께 1929년 11월초에 막을 올렸다. 내용은 일제의 식민통치로 토지를 잃고 북간도로 가는 한 실향민가족의 참담한 이야기다. 식민지수탈로 인한 민족의 궁핍과 수난을 반영했기에, 연극이 공연이 되자 <아리랑 고개>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때부터 우리의 전통적인 민요인 <아리랑>은 일제에 의해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는 박승희와 단원들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공연활동을 펴는 대목이 단연 볼거리다. 현실과 연극을 구별하지 못하는 남자배우 희준 역도 탁월하게 떠오르고, 백정의 아들이자 고문기술자 에다가 피에 굶주린 야수 같은 모습의 박살제가 미모의 여배우 춘심에게 사랑을 느끼고 피범벅이 된 채찍을 버리고, 짐승 같은 모습에서 이성적으로 변모하는 모습과 아름답게 변해가는 눈동자는 이 연극의 백미로 감동적일 뿐 아니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명장면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공연 직후 이른바 '신파극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논쟁의 초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한때 신파극이 대중적으로 크게 유행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기본적으로 일본의 영향이 짙게 남아있는 연극양식이며, 연극사적으로도 별다른 의미가 없는 퇴행적 유물이라는 것. 따라서 신파극을 공연하는 것은 노력과 재능의 낭비라는 지적이었다. 신파극(新派劇)은, 학술적으로 말하자면 일본 메이지 시대(明治時代)에 생겨난 새로운 연극양식을 지칭하는 용어다. '새롭다(新派)'라는 말은 일본 고유의 공연 양식인 가부키(歌舞技)나 노(能)를 기준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신파극 안에는 그 발전양상에 따라 대략 세 가지의 큰 흐름이 있다. 일본의 자생적 계몽주의의 바탕 위에서 당대의 정치 사회 문제를 다뤘던, 장사지거 혹은 서생지거라 불린 초창기 신파극. 적서차별, 신교육 권장, 조혼타파 등을 주제로 한 여러 작품이 무대에 올랐으며, 조선 땅에서 벌어진 청일전쟁(清日戰爭: 1904)을 일종의 종군보도연극(從軍報道演劇)으로 꾸민 작품은 일본 관객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제2기는 서양 고전문학 작품을 신파극으로 각색한 공연. 이때의 작품을 초창기 신파극과 구별하여 문예신파라고 부르는데, 최고의 인기 레퍼토리는 톨스토이의 <부활>의 한 대목을 각색한 <카츄샤>였다. 제3기 신파극은 대중신파.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는', 센티멘털리즘과 감정과잉을 특징으로 하는 멜로드라마가 이 시기를 대표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략일본과 10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신파극의 세 양식이 모두 수입되었다. 오늘날 우리들이 떠올리는 신파극의 이미지는 대개 대중 신파 시대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다. 왜? 정치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공연이나 서양의 고전을 공연하는 역할은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한 신극(新劇)의 차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신극의 대두 이후 신파극은 통속극, 대중극, 최루극 둥의 다소 부정적인 평판을 들으며 문화계의 변방으로 빠르게 밀려났다. 그리고 지방을 유랑하며 하루살이처럼 겨우겨우 공연을 올리는 신파극 배우들을 진지한 예술가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질문 하나, 모든 예술양식은 스스로 진화한다는 가설을 믿으시는지. 이 명제에 동의하신다면, 신파극의 의의에 대해 한번쯤 뒤집어 생각해 볼 여지가 생긴다. 이미 오래 전에 멸종된 양식임에도 대중들이 아직도 신파극을 기억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해보자 이 말은, 신파극이 그만큼 번성했던 장르이며 나름대로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라고 생각할 순 없을는지. 전 세계적으로도 멜로드라마는 언제 어디서나 가장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래서 '늘 인기 있는'이라는 훈장을 앞에 달고 다닌다. 이윤택은 언젠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연극”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연극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라며 뒤를 달았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이윤택은 “그냥 앉아서 굶어 죽을 수는 없다”고 선언했다. 관객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능동적인 세일즈를 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서 그는 연극의 폐광들을 힘 닫는 만큼 뒤지고 다닌 것이다. 그리고 한때 영화를 누리던 '신파조 멜로드라마' 앞에서 발을 멈추고 가공하기에 따라서는 이것을 최첨단 공연양식으로 새롭게 빚어낼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유랑극단>은 두 가지 이야기가 맞물려 진행되는 작품이다. 유랑걸립패와 다름없으되 연극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보다도 뜨거운 어느 극단이 한 마을에 들어와 공연을 준비하는 이야기가 하나. 그리고 공연 준비 과정에서 하나 둘씩 드러나는 마을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둘. 일본인 경관과 조선인 순사, 이들로부터 핍박받는 마을 사람들, 정체를 감춘 채 암약하는 독립군 비밀단원이 〈유랑극단〉의 '마을사람들'을 구성하는 주요 등장인물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고 너무 도식적인 구성이라는 일부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지만, 국립극장 하늘극장의 야외공연장, 쏟아지는 빗속에도 꼼짝 않고 자리를 지키다가, 공연이 끝난 후 눈물을 흘리며 기립박수를 보내주던 숱한 관객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나름대로 분명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한 일이 아닐까. 더구나 그날 그렇게 비를 맞으며 갈채를 보내준 관객들 중 상당수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극장을 다시 찾은 5~60대의 올드 팬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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