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소설 225

더글라스 케네디 '빅 픽처'

지금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면? 누구나 한번쯤 품어본 생각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꿈과 동떨어진 일을 하는 사람, 바쁜 일상에 매몰돼 꿈이 바래가는 걸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또 다른 삶에 대한 동경은 더욱 사무칠 것이다. 이 소설 《빅 픽처》의 주인공 벤은 그런 사람이다. 앞날이 탄탄하게 보장된 뉴욕 월가의 변호사, 안정된 수입, 뉴욕의 중상류층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교외의 고급 주택 거주자,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이룬 가정 그저 외양만 보자면 모두들 부러워 할 대상이지만 벤 자신은 조금도 즐겁지 않다. 벤의 꿈은 사진가로 성공하는 것이었다. 이제 그의 꿈은 값비싼 카메라와 장비들을 사들이는 호사스런 취미로 남아있을 뿐이다. 벤은 원하지 않는 생을 살고 있다는 강박관념에..

좋아하는 소설 2022.12.30

오드리 니페네거 '시간 여행자의 아내'

예술가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쓴 첫 장편 소설 『시간 여행자의 아내』(2004)는 평단과 독자들의 극찬을 받으며 단번에 출판계에 니페네거 신드롬을 일으켰다. 시간 여행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시간과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승화시킨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33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7백만 부 이상 팔렸으며 계속해서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고, 2009년 영화로 제작되었다. 작품은 너무나 새롭고 재미있게 전개된다. 클레어는 미래에서 온 남편을 6살 때부터 만나기 시작해서 그녀가 20살 때, 28살의 "현재의" 핸리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시간 여행을 온) 남편들 중 가장 젊은 남편을 현재에서 만나게 되고, 어리둥절해하는 핸리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소중한 아이..

좋아하는 소설 2022.12.29

프레드릭 배크만 '일생일대의 거래'

아들과 아내가 떠난 것도 출장에서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나서야 알아차릴 정도로 성공만을 좇아 살아온 ‘나’. 고향에서 바텐더로 사는 게 충분히 행복하다던 아들과는 오래전 멀어졌지만, 암 선고를 받은 뒤로 매일 저녁 아들이 일하는 술집 창밖에서 아들을 바라보다 돌아오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나’는 아들에게 편지를 써서 암 병동에서 만난 한 용기 있는 여자아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림 그리는 것으로는 암을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어른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하루 종일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는 여자아이 이야기를. 한편 병동에는 언제부턴가 사망 명부를 든 여자 사신이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이제 ‘나’는 사신 앞에 인생을 건 마지막 승부수를 띄워야만 한다. 이 이야기는 인생에서 정말로 ..

좋아하는 소설 2022.12.28

요나스 요나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데뷔작으로 전 유럽 서점가를 강타한 스웨덴의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장편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100세 생일날 슬리퍼 바람으로 양로원의 창문을 넘어 탈출한 알란이 우연히 갱단의 돈가방을 손에 넣고 자신을 추적하는 무리를 피해 도망 길에 나서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기자와 PD로 오랜 세월 일해 온 저자의 늦깎이 데뷔작으로 1905년 스웨덴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노인이 살아온 백 년의 세월을 코믹하고도 유쾌하게 그려냈다. 양로원을 탈출해 남은 인생을 즐기기로 한 알란은 버스터미널에서 한 예의 없는 청년의 트렁크를 충동적으로 훔친다. 사실은 돈다발이 가득 차 있었던 트렁크로 인해 쫓기는 신세가 된 그의 여정에 평생 좀스러운 사기꾼으로 살아온 율리우스, 수십 개의 학위를 거..

좋아하는 소설 2022.12.27

최인훈 '광장'

해방 후 평범한 대학생이던 명준은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기관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월북을 결행한다. 북한에 도착한 명준은 막상 북쪽 사회를 체험하자 그들이 내세우는 이상과는 달리 그곳에는 왜곡된 이념과 부자유만 있음을 알게 된다. 명준은 은혜와의 사랑으로 돌파구를 찾으려고 하지만, 은혜가 유학을 떠나게 되어 이마저도 좌절된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으로 종군하게 된 명준은 은혜와 극적으로 해후하나, 그녀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그는 포로가 된다.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될 때 명준은 남한과 북한이 아닌 제3국을 선택한다. 제3국인 인도로 향하는 타고르 호에서 명준은 바다에 투신한다. 「광장」은 최인훈 소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소설로서 남북한 이데올로기를 동시에 비판한 최초의 소설이자 전후문학을..

좋아하는 소설 2022.12.26

매트 헤이그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도입부가 매우 흥미롭다. 주인공 노라는 자살한 듯 하다. 자살하기 몇 년 전, 몇 시간 전, 이런 식으로 시작, 결국 자살하고 눈을 떠보니 자정 도서관(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와 있던 것. 주인공 노라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 사서 아줌마의 가이드에 따라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돌아가 다양한 인생을 경험한다. 노라는 ​이런 게 의미 없고 빨리 죽음 세계로 가고 싶어 했으나 하나하나씩 여러 가지 다른 인생들을 경험하다가 북극에서 빙하과학자로 사는 인생의 경험에서 살고자 하는 의지를 깨닫게 되고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자신과 같이 죽음의 문턱에서 과거의 시간으로 온 어떤 남자를 알게 되는데 그 남자는 이미 오랫동안 과거의 다양한 인생 경험을 하고 있단다. 노라는 댄과 결혼하고 꿈꾸던 펍을 차려 운영하는 삶에도..

좋아하는 소설 2022.12.25

마르크 레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

마르크 레비의 소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은 무명작가의 첫 소설 원고임에도 불구하고 2000년 1월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1위에 올랐다. 이 작품은 전 세계 출판사와 영화사들의 구애를 한몸에 받으며 단번에 세계 출판계의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 경합에서 승리는 1백만 달러의 출판 계약금을 제시한 사이먼 앤 슈스터와 2백만 달러의 영화 판권을 제시한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돌아갔다. 프랑스 언론이 격찬해 마지않은 작품! “스티븐 스필버그를 유혹했던 유령”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덕에 기적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마르크 레비는 처음 자신의 아들을 위해 이야기를 지어냈고, 그 다음엔 아들이 자신의 나이가 되었을 때 읽을만한 책을 남기자는 취지로 집필을 결심했..

좋아하는 소설 2022.12.24

김호연 '망원동 브라더스'

김호연의 장편소설 『망원동 브라더스』.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코딱지만 한 망원동 옥탑방에서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 찌질한 네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대 만년 고시생, 30대 백수, 40대 기러기 아빠, 50대 황혼이혼남까지 세대별 문제남성들이 종류별로 진열되어있는 옥탑방에서 펼쳐지는 고군분투 재기 프로젝트를 만나볼 수 있다. 두 계절 동안 8평 좁은 공간에서 처절하게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포 트러블 브라더스의 좌절과 재기, 격려와 배신, 여행과 추억, 사랑과 우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영화, 만화, 소설 장르를 넘나들며 글을 쓰는 저자 특유의 찰진 입담과 영화 장면처럼 그려지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현실은 어둡지만 그에 굴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길을 열심히 찾아가는 이..

좋아하는 소설 2022.12.23

스티븐 킹 '캐리'

주인공 는 비밀 속에 가려진 고독한 소녀였다. 그녀의 성장 발육은 통상의 예를 벗어난, 좀 괴팍스러운 상태에서 이루어졌으며, 염동능력(念動 能力)이라는 불가사의한 힘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그 같은 캐리의 초능력이 울분과 원한의 한 절정에서 거대하고도 괴기스럽게 폭발하는 장면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비주의, 즉 오컬트(occult) 하면 별로 진지하게 생각지 않으려 하고 공감, 동조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필연이나 당위에 의한 구성 전개의 합리성만을 추구하려는 오늘에 있어서 반(反) 실증주의적인 오컬트가 환영받을 리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칼티즘 그 자체는 인간 내부에 실재하는 요소이고 그에 상응한 리얼리티도 어쩔 수 없이 건재 한다. 이 소설은 그 같은 인간 내면의 한 ..

좋아하는 소설 2022.12.22

아르투어 슈니츨러 '꿈의 노벨레'

는 영화 의 원류가 되는 소설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이 책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오스트리아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한 아내와 남편의 이야기로부터 결혼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그리고 인간의 욕망은 얼마나 강렬한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레돌린과 알베르티네는 외견상으로 모범적인 상류사회의 부부이다. 프레돌린은 가부장적인 사고를 지닌 의사이고, 알베르티네는 그의 평범한 아내이다. 어느 날, 부부는 작년 여름 덴마크에 휴양을 갔다가 겪은 각자의 심리적 일탈에 대해 서로 고백한다. 아내가 먼저 운을 뗀다. 어느 덴마크장교를 보고 첫눈에 강한 성적인 이끌림을 느꼈다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남편 역시 해변에서 알몸의 소녀를 보고 어지러울 정도의 성적인 유혹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러..

좋아하는 소설 2022.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