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소설

아르투어 슈니츨러 '꿈의 노벨레'

clint 2022. 12. 21. 20:52

 

<꿈의 노벨레>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류가 되는 소설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이 책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오스트리아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한 아내와 남편의 이야기로부터 결혼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그리고 인간의 욕망은 얼마나 강렬한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레돌린과 알베르티네는 외견상으로 모범적인 상류사회의 부부이다. 프레돌린은 가부장적인 사고를 지닌 의사이고, 알베르티네는 그의 평범한 아내이다. 어느 날, 부부는 작년 여름 덴마크에 휴양을 갔다가 겪은 각자의 심리적 일탈에 대해 서로 고백한다. 아내가 먼저 운을 뗀다. 어느 덴마크장교를 보고 첫눈에 강한 성적인 이끌림을 느꼈다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남편 역시 해변에서 알몸의 소녀를 보고 어지러울 정도의 성적인 유혹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백으로 인해 서로의 갈등이 생겨난다. 덴마크에서 아내는 처음 본 장교를 위해 결혼과 가정의 포기도 불사하겠다고 결심한 반면, 남편은 해변의 소녀를 보고 정신이 혼미하여 기력을 잃고 머뭇거렸던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난 아내는 남편이 용기와 열정이 없었다고 조롱한다. 그녀는 프리돌린이 결혼이라는 전형적 질서에 편입하기 위해 본질적 욕망의 실현을 유예했다고 비난한다. 이러한 얘기를 듣고 난 남편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자신의 남성성을 실험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프리돌린은 여기서부터 꿈과 같은 현실을 체험한다. 환자의 딸, 창녀, 가면대여업자의 딸 등을 만나며 그는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한 여정을 펼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리돌린은 대학 친구였던 나흐티갈을 만나 비밀집단 난교파티가 열리고 있다는 정보를 듣는다. 프리돌린은 강한 호기심과 욕망에 이끌려 파티에 몰래 참가하게 된다. 파티에 들어선 그의 마음은 기쁨으로 빛난다. 하지만 이 가장무도회는 폐쇄적인 비밀모임으로 소수의 인원만 참가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프리돌린은 정체가 들통 나고 곧 미지의 인물들에게 둘러싸이게 된다. 그런데 가면을 쓰고 수녀의 옷을 입은 생면부지의 여자가 군중에게 자신이 프리돌린의 죗값을 대신 치르겠다고 말한다. 프리돌린은 완강히 거부하지만, 결국 거리로 내쳐진다. 밖으로 나가면서 그는 수녀 복장의 여자가 옷을 미끄러뜨리며 벗어버리는 것을 목격한다. 한편, 프리돌린이 집으로 돌아오자, 그의 아내가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한다. 프리돌린의 판타지인 덴마크의 소녀가 여제후가 되어, 프리돌린에게 애인이 돼달라고 간청했던 것이다. 그러나 프리돌린은 아내와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처벌 받을 것을 택했다. 이를 군중 속에서 지켜보고 있던 알베르티네는 관습적인 남편의 벽을 허물지 못하는 그를 경멸하고,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내버려두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은 프리돌린은 복수심에 불타 이혼을 결심하며 집을 나선다. 그는 간밤의 비밀집회가 열렸던 장소를 다시 찾아가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다시 수녀 복장의 여자를 다시 찾기 위해 도시를 수소문하고 다닌다. 하지만 익명의 경고장으로부터 더 이상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말라는 말을 들을 뿐이다. 또한, 프리돌린은 새벽에 어느 호텔에서 아주 아름다운 남작부인이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그는 '아름다운'이라는 말로부터 얻은 심증만 가지고서 시체안치소를 찾는다. 가는 중에 그는 그 희생양의 얼굴이 알베르티네의 얼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시체의 얼굴을 직접 보고서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한다. 수많은 모험 뒤에 집으로 돌아온 프리돌린은 잠들어 있던 아내의 곁에 자신이 비밀집회에서 썼던 가면이 놓여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지난밤 모든 일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분간하지 못한다. 꿈과 같은 현실을 겪은 남편과, 현실 같은 꿈을 겪은 아내는 서로 화해하고, 딸아이의 낭랑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고리타분하지만 평화로운 결혼제도 안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다시는 욕망의 분출을 꿈꾸지 않을 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한다.

 

 

 

 

<꿈의 노벨레>의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오스트리아 빈의 상류사회에서 태어나 평생 이 동네를 몇 번 떠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의학을 공부하여 병원을 개업하기도 했으나, 결국 극작가이자 소설가로 생애를 마쳤다. <꿈의 노벨레>의 남자주인공 프리돌린이 빈에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지닌 의사였다는 점과 겹쳐지는 부분이다. 슈니츨러는 작가로서 성공하여 부와 명예를 얻기도 했지만, 도박과 유흥으로 쌓은 부를 날려버렸다. 젊었을 때의 그의 삶은 병적으로 환락을 추구하는 카사노바를 닮아 있다. 그는 55세의 짧은 생을 사는 동안 자신의 수많은 일탈을 작은 일기에 빼곡히 적어 놓았다.

<꿈의 노벨레>는 수많은 영화감독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고 하는 소설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잠재된 욕망을 실현하는 가면무도회 등은 화려한 이미지를 상상하게 한다. 또한, 꿈과 현실의 불분명함은 장자의 호접지몽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작가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소설에서 꿈이 가지는 위력은 상당하다. 소설 속 남자 주인공 프리돌린은 감춰둔 욕망은 거대하나 사회적 질서에 편입돼 살아가는 인물이다. 반면, 그의 아내는 자신의 열정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프리돌린은 아내로부터의 무시와 환멸을 받고 스스로의 가치가 무너져 내리는 걸 경험한다. 프리돌린이 가장무도회에 참여했을 때 비밀암호가 '덴마크'였던 것이 이를 상징한다. 부부가 떠났던 덴마크 여행은 각자의 성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프리돌린은 사회적 약속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어느 정도 갖고 있는 인물이었으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자 그것을 지키는 일이 불가능해졌음을 깨닫는다. 그가 거리로 나가서 만난 수많은 여자들과 다양한 인물들은 몽환적인 그의 내면을 상징한다. 꿈이 욕망의 실현이라고 한 프로이트의 말처럼, 프리돌린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꿈과 같은 현실을 창조해냈던 것이다. 반대로, 프리돌린의 아내는 자신의 욕망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하고, 꿈에서 남편이 처형당하는 것을 내버려둘 정도로 감정에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녀의 이야기는 모두 꿈에서 벌어진 일일 뿐이다. 잠재된 욕망을 언급하는 데는 아내가 더 솔직했으나, 실제로는 그녀는 아무런 경험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프리돌린이 가장무도회의 흔적을 헤매고 다닌 것이나, 시체 안치소를 찾아가 자신을 위해 희생한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은 그가 아내로부터 받은 상처의 크기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신문에서 어느 남작부인의 부고를 읽는 순간 아내의 얼굴이 미지의 부인과 겹쳐지는 것을 경험한다. 결국 아내와 가정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돌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확인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화해한 부부는 나란히 누워있다. 그러나 꿈을 꾸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권태와 환멸을 상징한다. 꿈을 꾸지 않는 인간은 아무런 욕망도 없는 사람이다. 결혼 생활이라는 높은 담벼락과 같은 제도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판타지를 속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지내게 될 것이다.

어느 글에서, 연인관계에 권태를 느끼는 사람은 어쩌면 자신의 모습에 질려버린 것이라는 문구를 보았다. 자신을 새롭게 가꾸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권태를 느낄 새가 없다. 안정적인 연애를 하지 못하고 늘 새로운 사람을 찾는 사람은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이다. 스스로를 사회적 울타리 안에서 희생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뜻을 펼쳐나가려 애쓰는 사람은 자신에게서 매력을 찾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프리돌린과 알베르티네의 부부생활은 연민을 자아낸다. 상류사회이지만 폐쇄적인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은 평생 어두운 짐을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이다. 오늘날처럼 개방적인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개인의 성적욕구를 드러내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나친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결과를 불러온다. 그러므로 잠재된 욕구의 표출과 사회적인 삶 사이에는 언제나 균형이 존재해야 한다.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결혼이라는 약속이 지닌 부조리함과 개인의 잠재된 의식이 가진 강한 힘을 <꿈의 노벨레>를 통해 밝혀 주었다.

'좋아하는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호연 '망원동 브라더스'  (0) 2022.12.23
스티븐 킹 '캐리'  (0) 2022.12.22
기욤 뮈소 '구해줘'  (1) 2022.12.21
베르나르 베르베르 '파피용'  (0) 2022.12.20
정명섭 '한국인의 맛'  (0) 2022.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