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소설 225

F. 스콧 피츠제럴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70대 노인의 모습을 하고 태어난 그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우환거리로 인생의 첫 발을 디딘다. 사교계의 저명인사인 부모는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에 위협이 될 수치스러운 자식을 어떻게든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성성한 백발을 갈색으로 염색하고, 과장되게 알록달록한 옷을 입히고, 기력 없는 아들의 손에 억지로 딸랑이를 쥐어준다. 천성이 선한 벤자민은 어떻게든 부모님의 기대에 맞추려 애쓴다. 재미없는 공놀이를 좋아하는 척하고, 가끔은 그릇을 엎거나 물건을 깨뜨리는 '아이 다운' 행동을 보여주며 어른들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그가 타고난 저주는 단순히 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세월이 보통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는 사실은 명백해졌다. 유치원에서 쫓겨..

좋아하는 소설 2022.12.13

크리스티앙 자크 '람세스'

소설 「람세스」를 읽고 - 이윤기 : 소설가, 번역가 흔히 서구 문화의 두 기둥은 그리스 중심의 헬레니즘과 이스라엘 중심의 헤브라이즘이라고들 한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무엇인가? 잘 알려져 있다시피 헬레니즘은 고전 시대의 순수 그리스인들의 별칭인 헬레네인들의 문화, 헤브라이즘은 이스라엘인들의 별칭인 히브리인 혹은 헤브라이인들의 문화를 일컫는다. 이 두 문화는 각각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 신을 그 정점으로 하는 문화와 유일신 야훼를 그 정점으로 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두 문화는 각각 자연발생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뒤 나름의 독자적인 발전을 성취한 문화인가, 아니면 여기에 선행하는 어떤 어미그루의 뿌리가 있었던 것일까? 만일에 어떤 어미그루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 어미그루의 정체를 추적하는 단..

좋아하는 소설 2022.12.12

찰스 프레지어 '콜드 마운틴의 사랑'

현대판《전쟁과 평화》라는 평가와 을 수상한 《콜드 마운틴의 사랑》은 남북전쟁의 막바지에 사랑하는 연인에게로 돌아가는 탈주병 인만과 그를 기다리는 아다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 이야로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잔인함을 고발하고 자연의 소중함과 소유의 무익함을 그린 대작이다. 이 작품에서는 황폐화된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소설 속 인물들의 처절한 초상과 슬픔과 연민의 순간들을 작가 특유의 예리한 통찰력으로 너무도 진실되게 펼쳐 내고 있다. 작가의 말 - 사라져 버린 이들에 대한 슬픈 노래 130여 년 전 남부와 북부 양쪽 체제에 무고하게 희생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이들의 행적을 거슬러 올라가 보며 5년 동안 이 작품에 몰두했다. 나는 "콜드 마운틴의 사랑"을 쓰기 6, 7년 전스모키 산맥의 한 골짜기에 가본 적이..

좋아하는 소설 2022.12.11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찰스 디킨스의 풍자적 해학과 휴머니즘이 가장 탁월하게 구현된 《위대한 유산》은 주인공 핍이 시골 대장간 심부름꾼으로 생활하던 소년 시절, 런던에서의 신사 생활, 은인을 만나고 격정의 세계를 경험한 뒤 인간적으로 성숙해가기까지의 과정을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한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님의 얼굴을 본 적도 없는 핍은 자신보다 스무 살 많은 누나의 손에 학대받으면서 자란다. 대장장이인 매형 조와 누나와 함께 대장간에 딸린 살림집에 시는 핍은 어느 겨울 교회 묘지에서 탈옥한 죄수를 만난다. 핍은 그 죄수의 협박이 있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불쌍한 마음에 족쇄를 자를 줄칼과 음식을 그에게 가져다준다. 하지만 그날 저녁 그 죄수는 또 다른 죄수와 함께 군인들에게 붙잡혀 감옥으로 돌아간다. 한편 읍내에는 미스 ..

좋아하는 소설 2022.12.11

이문열 '사람의 아들'

우리 문학사에서 보기 드물게 신(神)과 종교의 문제를 진지하게 천착한 작품이다. 이문열은 이 작품으로 제3회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하면서 1980년대 가장 주목받는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구성상의 몇몇 문제를 고친 개정판이 1987년에 출간되었다. 한 형사의 집요한 추적을 통해 단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 살인사건의 내막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추리소설적 기법이 확인되며, 그러한 과정에서 주인공 민요섭의 노트를 통해 제시되는 ‘아하스 페르츠’에 관한 이야기는 액자형식의 내화(內話)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하스 페르츠에 관한 이야기가 단속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원적 구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선과 정의로 표상되는 천상의 논리와 지혜와 자유로 특징 지워지는 지상의 논리 사이의 충..

좋아하는 소설 2022.12.11

움베르토 에코 '제0호'

소설의 배경은 1992년, 실제 이탈리아에서 전무후무한 정치 스캔들이 터지며 대대적인 부패 청산의 물결이 일던 시기이다. 막대한 자금력과 조직력으로 무장한 세력가를 배후에 둔 어느 신문사의 편집부가 주 무대로, 무솔리니의 죽음을 둘러싼 황색 언론의 행태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싸구려 글쟁이로 변변찮은 직장을 전전하던 중년의 콜론나는 창간을 앞둔 신문사 [도마니(내일)]의 부름을 받는다. 그가 주문받은 역할은 신문사 주필의 대필 작가로서, 끝내 창간되지 않을 신문 [제0호]의 제작 과정에 투입되어 편집부에서 벌어지는 그간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 주필은 신문이 끝내 창간되지 않고 일자리를 잃게 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폭로를 담은 책을 한 권 마련해 두려 한다. 제안을 받아들인 콜론나는 주필과의 비밀을 공유..

좋아하는 소설 2022.12.10

움베르토 에코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밀라노의 손꼽히는 고서적 전문가 잠바티스타 보도니(일명 얌보)는 1991년 4월 심장혈관 계통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역행성 기억 상실증이라는 후유증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증상은 아주 특별하다. 공적인 기억, 백과사전적인 기억은 온전한데, 자신의 개인적인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기억은 모두 사라진 것이다. 의사가 이름을 물으면, 그는 자기 이름을 말하는 대신 이름과 관련된 세계 문학의 유명한 문장들을 떠올린다. 입을 열었다 하면 어디선가 읽은 문장들이 튀어나오고, 글을 쓸라치면 인용문들의 모자이크를 만들기가 십상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관한 정보는 훤히 꿰고 있으면서도 외손자 알레산드로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30년 넘게 결혼 생활을 해온 ..

좋아하는 소설 2022.12.09

움베르토 에코 '푸코의 진자'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기호학자이자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움베르토 에코의 두번째 소설이다. 출간 당시 독자와 평단으로부터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으나, 교황청으로부터는 신성 모독으로 가득찬 쓰레기라는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성전기사단에 대한 음모론이 주제로, 1번의 푸코의 진자가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 역시 장미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움베르토 에코 특유의 난해한 소설로 여겨지지 않는 뛰어난 번역과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방대한 주석으로 유명하다. 주인공 까소봉이 가라몬드 출판사의 벨보와 디오탈레비를 만나, 성전기사단에 관련된 음모론을 재구성한 전집 "너울 벗은 이시스"를 기획하는 것이 스토리의 주 내용. 이 두꺼운 소설의 거의 대부분 분량이 이 전집 내용을 구상하며 음모론에 그럴듯한 살을..

좋아하는 소설 2022.12.08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

지중해의 한 버려진 망루. 전직 사진기자 안드레스 파울케스는 이곳에서 7개월째 벽화를 그리고 있다. 전쟁의 순간들을 냉철하게 기록한 사진들로 이름 높았던 종군기자의 삶을 마무리하며, 지금부터의 시간을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완성하는데 쓰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는 하지만 자신의 그림이 명작으로 남기를 꿈꾸거나 뒤늦은 화가로서의 명성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막연한 느낌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연인의 죽음을 목격한 순간에도 셔터를 눌러야했던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식료품을 사러 가는 것 외에는 망루를 벗어나지 않는 파울케스에게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온다. 오랜 세월 그를 찾아 헤맸다고 말하..

좋아하는 소설 2022.12.07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항해지도'

전직 항해사 코이는 해양 물품 경매소에서 해양 박물관 큐레이터인 탕헤르라는 여인과 우연히 만난다. 그녀는 침몰선 인양 회사 사장 팔레르모와 경합 끝에 18세기 우루티아 해도를 낙찰받음으로써 그와 해도를 사이에 두고 첨예하게 대립한다. 또한 탕헤르의 신비롭고, 강한 카리스마의 매력에 반해 운명적으로 보물선 탐사 작업에 얽혀든 코이는 팔레르모의 하수인이자 그를 배신하는 인물인 키스코로스와 갈등의 축에 서게 된다. 그들이 찾는 침몰선 데이 글로리아 호는 18세기 스페인 예수회 소속 마지막 범선으로 기독교를 탄압하려는 카를로스 3세의 비밀내각에 뇌물을 전하기 위해 200개의 에메랄드를 싣고 가던 중 의문의 해적선에 쫓기다가 침몰하게 된다. 탕헤르와 코이는 그 당시 해도와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년의 증언과 지도 제..

좋아하는 소설 2022.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