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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항해지도'

clint 2022. 12. 7. 06:27

 

전직 항해사 코이는 해양 물품 경매소에서 해양 박물관 큐레이터인 탕헤르라는 여인과 우연히 만난다. 그녀는 침몰선 인양 회사 사장 팔레르모와 경합 끝에 18세기 우루티아 해도를 낙찰받음으로써 그와 해도를 사이에 두고 첨예하게 대립한다. 또한 탕헤르의 신비롭고, 강한 카리스마의 매력에 반해 운명적으로 보물선 탐사 작업에 얽혀든 코이는 팔레르모의 하수인이자 그를 배신하는 인물인 키스코로스와 갈등의 축에 서게 된다그들이 찾는 침몰선 데이 글로리아 호는 18세기 스페인 예수회 소속 마지막 범선으로 기독교를 탄압하려는 카를로스 3세의 비밀내각에 뇌물을 전하기 위해 200개의 에메랄드를 싣고 가던 중 의문의 해적선에 쫓기다가 침몰하게 된다. 탕헤르와 코이는 그 당시 해도와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년의 증언과 지도 제작학과 교수의 도움으로 배의 침몰 위치에 관한 실마리를 잡고 바닷속에서 두 척의 침몰선을 발견한 뒤악마의 무지개라 일컫는 에메랄드를 손에 넣게 된다. 그러나 부둣가에서 탕헤르와 코이를 기다리고 있던 팔레르모와 마주치면서 소설은 예기치 못한 국면에 접어들고, 팔레르모의 하수이었던 키스 코로스가 탕헤르의 이중 스파이임이 밝혀지면서 상황은 급격한 반전을 맞게 된다.

 

 

항해지도 18세기 스페인 카롤로스 3세 통치기, 계몽주의에 반발했다는 이유로 추방당하게 될 위기에 처한 스페인 예수회 수뇌부가 왕과 각료들을 매수할 목적으로 에메랄드를 실은 데이글로리아 호와 함께 쿠바에서 오던 중 의문의 해적선에 의해 침몰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보물선을 추적하는 인물들의 미스터리를 둘러싼 해양 스릴러이다. 레베르테는 항해지도에서 자신의 고향인 카르타헤나를 배경 삼아 육지를 떠도는 무기력한 선원이자 숙명주의자인 코이와 그를 유혹하여 악마의 무지개라 일컫는 에메랄드를 찾고자 하는 해양 박물관 큐레이터 탕헤르를 주인공으로, 역사의 증언이자 보고(寶庫)인 바다의 신비와 인간 본성의 수수께끼를 밝히기 위한 욕망의 항해에 나섰다. 심오하고 복잡다단한 삶과 사건들을 완벽하게 융합하고, 항해에 대한 내밀하고 철학적인 생각을 작가의 모험심과 접목한 항해지도는 기존의 해양문학에 모험과 미스터리 요소를 강조하여 장르적 특성을 변형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역사적 사실과 픽션을 씨줄과 날줄 삼아 절묘한 얼개를 이룬 이 소설은 추리와 모험 소설의 기법과 주조를 반영한 대중적인 특성과 방대한 독서를 바탕으로 한 유럽의 역사, 문화, 예술에 대한 현란한 지적 탐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각종 역사 자료와 재즈, 지도학, 선박, 해양 고고학 등의 자료를 면밀히 조사한 뒤 쓰여진 이 소설은 멜빌에서 스티븐슨과 콘래드, 호머에서 패트릭 오브라이언에 이르기까지 삶의 완벽한 메타포인 바다에 대한 철학을 담은 해양문학의 고전이 텍스트 곳곳에서 숨 쉬고 있으며, 찰리 파커의 재즈 음악과 그림, 영화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고 있다.

아직도 모험이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역사를 재해석했다는 레베르테는 항해지도를 통해, 수많은 것을 알지만 더 이상 꿈꾸려 하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꿈과 모험의 항해를 떠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