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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프레지어 '콜드 마운틴의 사랑'

clint 2022. 12. 11. 17:31

 

 

현대판《전쟁과 평화》라는 평가와 <전미국 도서대상>을 수상한 《콜드 마운틴의 사랑》은 남북전쟁의 막바지에 사랑하는 연인에게로 돌아가는 탈주병 인만과 그를 기다리는 아다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 이야로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잔인함을 고발하고 자연의 소중함과 소유의 무익함을 그린 대작이다. 이 작품에서는 황폐화된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소설 속 인물들의 처절한 초상과 슬픔과 연민의 순간들을 작가 특유의 예리한 통찰력으로 너무도 진실되게 펼쳐 내고 있다.

 

 

영화로 더 많이 알려졌다.

 

작가의 말 - 사라져 버린 이들에 대한 슬픈 노래

 

130여 년 전 남부와 북부 양쪽 체제에 무고하게 희생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이들의 행적을 거슬러 올라가 보며 5년 동안 이 작품에 몰두했다. 나는 "콜드 마운틴의 사랑"을 쓰기 6, 7년 전스모키 산맥의 한 골짜기에 가본 적이 있다. 그곳에는 먼지가 피어오르는 황톳길이 나있었다. 그 길은 19세기에는 마차들이 오가던 길이었고, 그보다 더 오래 전에는 인디언들이 이용하던 길이었다. 그리고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래 전엔 버팔로 들소들이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던 길이었다. 나는 공터에 차를 세우고 계곡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청명하고 건조한 10월이었다. 나무 이파리들은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고 땅위에는 포플러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나는 무덤 하나를 찾고 있었다. 얼마 동안 올라가자 윗면이 넓고 평평한 바위가 경사진 언덕 중간에 튀어 나와 있었다. 그곳에는 전쟁이 끝난 갈 무렵 테네시 주로부터 산을 넘어와 약탈을 일삼던 북군 습격 부대에게 살해당한 두 민간인의 시신이 한 구덩이에 묻혀 있었다. 두 사람을 한 구덩이에 묻은 것은 아마도 삽질할 힘을 아끼려고 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으로부터 좀 더 떨어진 스털링 산의 건너편에는 다른 무덤이 있었다. 거기에는 남부 시민자위대에 의해 처형당한 한 바이올린 연주자와 저능아가 함께 묻혀 있었다. 두 사람이 총살당할 때 등지고 섰던 나무는 아직까지도 살아있을 것이다. 그 수많은 나무들 중에 어느 것이라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바이올린 주자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보나파르트의 퇴각" 이라는 곡을 연주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나는 남북전쟁에 대한 소설을 쓸 생각은 없었다. 물론 나는 "남군의 후예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전쟁 당시 각 부대의 이동 경로라든지 하늘처럼 추앙받던 장군들의 고매한 성품들이라든지, 또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대통령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그 두 무덤이 전하고 있는 쓸쓸함이었다. 두 무덤에 묻힌 사람들은 공존할 수 없는 두 경제 체제가 벌인 전쟁의 무고한 희생자였다. 그들은 노예제도에 의해 뒷받침된 남부의 농업중심 경제체제나 북부의 산업자본주의 경제체제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아마도 몇 세대 전 쿨로덴 전투이후 미국으로 건너왔던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의 후손일 것이다. 그들 중 노예를 소유한 사람은 5퍼센트도 안 되었고. 대부분 누군가에게 고용되길 거부한 채 스스로의 땅을 일구며 살았다. 그들의 남북의 거대한 두 경제 체제 틈에서 그들만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지키며 살아갔고, 그들은 거칠고 보수적이었다. 대개 조그만 땅에 농사를 짓거나 가축 떼를 방목하기도 하고 수렵과 열매를 채취해서 삶을 꾸려 나갔다. 그것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살아왔던 방식이었다. 드넓게 펼쳐진 대지 위에 많지 않은 인구가 흩어져 살기에 어울리는 삶은 극단적인 독립심을 키워준다. 그리고 이 모든 기질들에는 대지의 혼이 깃들어 있다. 그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는 정반대 가치에 의존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어렸을 적 그들과 비슷한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데 대부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이제 그들마저 남아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 이야기는 단지 남부에만 관련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정신에는 이런 세계관이 곳곳에 스며있다. 제임스 페인모어 쿠퍼와 소로우, 휘트먼, 그리고 프로스트의 시에는 곳곳에 이런 흔적들이 배어있다. 그리고 또한 현대의 우디 거트리나 케루악의 작품들 속에서도 눈부시게 번득이고 있다. 부상당한 몸으로 고향 콜드 마운틴으로 돌아온 인만의 여정은 미국판 오디세이와도 같고 사라져 버린 세상에 대한 슬픈 노래이다.

나는 대지의 정신에 충실했던 전통적인 삶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과거와 나를 연결해줄 어떤 연결고리가 필요했다. 무덤에 가보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내게 그런 고리를 선물로 주셨다. 그것은 나의 증조부에 대한 얘기였다. 인만이라는 이름을 가지 그분은 남군으로 참전했다가 탈영하여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고향까지 걸어서 돌아왔다. 내게 인만의 여정은 미국 판 오디세이와도 같은 것이며 사라져 버린 세상에 대한 슬픈 노래이다. 그래서 나는 5년 동안 그의 행적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무덤을 표시해주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그저 통나무 조각들과 나뭇가지들, 낙엽들만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만약 증조부가 아버지의 말대로 그곳에 묻혀있다면 산 아래로 펼쳐진 피존 강과 강가의 체로키 인디언 부락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비록 카누가라고 불렸던 그 마을을 올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증조부에게 큰 빚을 졌다. 오직 그분의 명복을 빌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