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를 잃고, 아내마저 떠나버린 상황에서
철수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있는 간이역에 온다.
生의 끈을 놓을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동시에 철수는 자신이 가입했다가 거부당한 자살동호회사이트
사람들을 이곳으로 부른다.
철수의 안내로 사이트 운영진들인 기룡과 화숙, 선정은
'자살하기 좋은 장소 베스트 텐 - 낭만편'이라는 책 출간을 위해
취재차 이곳으로 온다.
철수가 보여준 꼬마열차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들.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고,
이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저마다의 거창한 이유로 자살을 하려했던 사람들은,
진짜 죽을 상황에 처하자, 당황한다.

죽을 각오로 하면 뭐든 한다는 얘기가 있다. 죽을 각오가 선다는 것은 희망을 바라보는 긍정적 세계관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가능한 얘기지 사실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사람들에게는 그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자살동호회사이트 사람들이 모였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세상을 등지려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연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살고자 하는 의욕을 꺾어 대는 그 사연만 해결하면 얼마든지 열심히 살아갈 의지로 가득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위선에 가득한 세상살이를 온전히 버틸 수 있는 힘은 나를 사랑하는 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런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애정과 건강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이 아닐까?

작가의 글 - 이진경
'자살' 이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자살'이나 '죽음'이라는 개념에, 어떠한 것을 붙여도 통하는 이야기다. 즉, 본질이다. 본질 주위에서 경쟁적으로 서성대다가, 본질을 망각하고 어느 새 본질이 껍데기로 탈바꿈되고, 결국에는 자신들이 매달리고 있는 것이 본질인지 껍데기인지도 분간하지 못하게 된 상황속, 사람들 이야기인 것이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당선 <리모콘>(2008)
제25회 전국대학연극제 은상 수상 <야화모텔살인사건> 작/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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