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신상성 '처용의 웃음소리'

clint 2025. 4. 15. 15:14

 

 

 

정신병원 입원실. 주인공 장번쾌는 아내와 회사 간부 들비의 간통에 

정신이 혼란해져 원자력 개발의 중책을 수행하다 입원한 것이다.

장번쾌와 한 방에서 있는 싯달타-예수는 성경과 염불을 섞어 할 때

번쾌는 옆에서 실험하면서 조용 하라고 소리 지른다. 그러다 둘은 싸우기

시작하고 온몸에 상처를 입게 되자 격리되어 결국 침대에 묶인다.

마태오는 친구 번쾌의 상태를 살펴보는 중 들비에게 전화를 받는다.

들비는 번쾌의 상태를 걱정하지만 마태오는 번쾌에 대해 일만 생각하는 것 같아

들비에게 염증을 느낀다. 그 때 갑자기 병원이 소란스러워 지고,

불이 났다고 착각한 마태오는 번쾌를 병실에서 업고 밖으로 나온다.

그러나 그 소음의 정체는 결혼 실패와 딸을 잃은 충격으로 정신병을 앓게 된

인기 가수 변 다이나마이트가 잡혀 와서 일으킨 것이었다.
병원에 찾아온 들비와 마태오, 번쾌는 대화를 나눈다. 가끔 병이 도지는 번쾌지만

이번만큼은 멀쩡하다. 그들은 서로 현재 과학을 말하며 원자력 발전을 염려한다.

그러나 들비는 친구를 염려하기보다 번쾌를 이용할 생각이 더 크다.

들비가 무심결에 섹스 얘기를 하자 번쾌는 다시 마음이 언짢아진다.
한 원장은 치료의 방법으로 환자들이 즉흥적으로 벌리는 공연을 적극 지원한다.

그 중심에 변 다이나마이트가 있는데 노래하고 다른 환자들은 제각기 연주한다.

처음에는 소극적이던 환자들도 시간이 갈수록 많이 참여하게 된다.

한편 들비는 번쾌가 아직 완쾌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알면서도 

원자력과 관련된 긴박한 문제로 그를 퇴원시킨다.

번쾌는 통원치료를 받으며 회사일로 출퇴근한다.

그러다 들비가 번쾌에게 예하와의 오해를 풀어달라고 진심으로 부탁한다.

순간 번쾌는 길길이 뛰면서 둘은 심하게 싸우게 되고,

결국 번쾌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게 된다.

번쾌의 상태가 다소 진정되었을 때 쯤 병원에서 10주년 축제 준비가 한창이다.

각종 행사 가운데 이번 해에 처음 개최되는 사이코드라마  <처용의 웃음소리>를

번쾌가 연출하게 된다. 연극이 시작되었을 때, 관중석에는 예하와 들비를 비롯한

환자의 가족들과, 다른 환자들도 앉아 있다. 드디어 막이 올라가고

연극이 시작되면서 환자들은 처음 해보는 연극이라 실수하고, 뜻하지 않은

많은 사고가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장에서 다이나마이트가

처용가에 맞춰 춤을 추자 사람들은 넋을 잃는다.

그녀의 춤사위를 장내의 모든 환자들이 따라 하게 되고

그 순간 번쾌도 무대에 뛰어들어 춤을 추면서 

처용의 아량에 감복하면서 들비, 예하와 화해하게 된다.

 

 

 

연극 ‘處容(처용)의 웃음소리’는 극단 서울무대에 의해 국립극장 실험무대에 올려져 초연 공연되었다. (83년 4월) 

이 작품은 1979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 에 소설부문 당선작을 작가 신상성씨가 각색, 구성하여 무대에 올린 것으로 번역극이 아닌 창작극이라는데 큰 의의가 있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40대의 국보급 과학자 장번쾌의 <의처증>이라는 병을 통하여 오늘날 현대사회가 앓고 있는 모순과 비리의 실체를 본질적으로 규명해 보이고자 했다. 이 연극은 정신병 환자와 환자 아닌 현대인의 생태와 생리를 풍자하여 우리사회를 그대로 투영, 비판하고 있다. 특히할 만한 것은 무대의 입체화를 시도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 장번쾌만이 아니라 현대인 모두가 정신병을 앓고 있음을 인식시켜 주고 있다는 점이다. 소재의 특이성에 기인한다 하겠으나 극중 인물, 즉 배우의 연기가 큰 주목을 끌고 있는데 그 중 싯다르타 예수의 연기가 특히 돋보인다. 초연 공연 이 후 다시 무대에 올려진 ‘처용의 웃음소리’는 초연 작품이 다분히 돈키호테적 발상과 사회적 리얼리즘 추구한데 비해 표현력, 동작성으로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이 시대의 도덕성과 개인적인 휴머니티를 살리면서 개인의 비극이 사회적 비극임을 실감 있게 보여줌으로써 공감을 얻었다.

 

소설 초판본

 

 

실제 작품에서 처용가가 나오는 곳은 얼마 되지 않지만 처용가로 인해 주인공 번쾌의 갈등과 번뇌는 사라지게 된다. 또한 아내에 대한 심한 의처증으로 정신이상 증상까지 겪게 되는 번쾌가 <처용의 웃음소리>라는 사이코드라마를 연출하면서 의처증으로부터 해소되는 것은 처용가의 의미가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함에 분명하다. 결국 처용의 모습은 이 작품 전반에 흐르는 갈등 해소의 역할과 주제의식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번쾌가 처용가에 맞추어 춤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감정의 앙금들은 풀어 버리고 노래와 동화되어 결국 부인 예하와 화해하는 것이다. 

 

 

 

 

처용가

서울 밝은 달밤에 밤 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이다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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