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2살인 박진구. 동두천 외곽 허름한 안마시술소에서 일하는 그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어 안마기술을 배웠고, 장님인 여자와 결혼해 딸을 하나 낳아 행복했다.
하지만 어느 날 화재로 아내와 딸을 잃은 후 춘천의 호수에 아내와 딸의 유골을 뿌리고
동두천으로 옮겨와 안마사로 살아가고 있다. 박진구가 일하는 안마시술소 옆에는
불법 문신시술소를 운영하는 양금순이 살고 있다. 48살인 양금순은 남편과 사별하고
간호조무사인 큰딸 강미주와 작가지망생인 작은딸 강현주와 함께 살고 있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저는 양금순은 가까이에 있는 박진구가 가끔 찾아와
허리를 풀어주는 것과 그에 보답으로 밑반찬을 만들어주는 것을 작은 행복으로 삼지만
큰딸 미주는 진구가 엄마 찾아 집에 오는 것과 밑반찬을 만들어주는 걸 무척 싫어한다.
하지만 미주도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레지던트인 애인의 아이를 가졌지만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 집으로 초대도 못하고 결국 애인이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임신중절 수술을 받고는 “나도 이제는 엄마와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어졌어.”라고 외치며 주저앉는다.
딸들과 TV를 보던 금순은 울고 있는 큰딸의 모습을 보고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다.
어느 날 안마시술소 사장이 업종이 바뀌었다며 박진구를 일방적으로 해고하고,
머물 곳이 없어진 박진구는 아내와 딸이 있는 춘천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이사 가기 전날 밤 양금순을 집을 찾아온 박진구, 딸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의 가슴에
딸의 얼굴을 새겨 달라고 부탁하면서 무대는 서서히 어둠 속으로 묻힌다.
시각장애인 안마사 박진구,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저는 문신시술자 양금순, 연극 ‘고요’는 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극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끼리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듯 보이지만 그들이 말하고 있는 건 그것보다도 가슴속에 깊이 새길 수 있는 사랑이다. 이 작품은 사회에서 어두운 부분을 비추면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도시 소시민들의 삶을 잔잔하면서도 세밀하게 그려가고 있다. 그러면서 앞을 못보는 시각장애인이 느끼는 세계가 멀쩡하게 눈 뜨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보다 더 아름답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이들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특별히 부각되는 격정적인 삶의 전개는 없지만 ‘고요’라는 제목과도 같이 조용히 삶을 살아가고 견뎌내고, 버텨가는 우리들 삶의 잔잔한 편린들을 잔잔하게 비춰주고 있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고 가슴 한켠에 따듯함을 느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연극 ‘고요’에서는 잔잔한 배우들의 연기가 관객들에게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배우들은 자신들이 맡은 각각의 캐릭터를 이해하고 그들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달, 슬프면서도 가슴 아픈, 그러면서도 깊은 사랑을 관객들의 마음 속에 각인시켜 주고 있다. 자식들에 대한 사랑을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으려는 부모의 깊고 깊은 사랑에도 눈물이 고인다.
살면서 온전히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일 중에 하나가 사람을 마주 대하는 일이 아닌가싶다. <고요>는 소외된 이들의 일상을 통해 무심하고 메마른 사람들의 심장을, 사람 냄새 나는 잔잔한 울림으로 채운다. 박진구는 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고 안마시술소에서 일하는 시각 장애인 안마사다. 어릴 적 않았던 소아아비로 다리가 불편한 문신시술자 양금순은 그런 박진구에게 가끔 다리 안마를 받고 밑반찬을 해주곤 한다. 한편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양금순의 큰 딸 미주는 그런 박진구가 끔찍이 싫다. 둘째 딸 현주는 박진구도 엄마 양금순도 언니 미주도 이해가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일하던 안마시술소에서 일방적으로 해고당한 박진구가 양금순을 찾아와 딸의 사진을 보여주며 가슴에 그 얼굴을 새긴다. 이 극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시각 장애인 박진구가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타인의 상처까지 들여다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앞을 보지 못하는 그의 ‘눈’을 통해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의 은은한 자태, 상처 입은 청년의 거칠지만 순수한 마음, 억척스런 양금순의 내면에 숨겨진 따뜻한 인정 등이 오롯이 드러난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고, 더 나아가 누추한 현실 세계 이면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는 힘을 지닌 것이다. 극 속에서 박진구가 마치 눈앞이 훤히 보이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대사를 던지는 장면들은 강한 연극적 효과를 발휘한다. 상황의 아이러니로 관객들의 즉각적인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이들을 아주 깊게 반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기서 ‘육체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박진구는 우리의 치명적인 결핍을 아프게 환기시킨다.
시각 장애인 박진구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려낸다면, 타투이스트 양금순은 그러한 세계를 사람들의 육체와 정신에 새겨주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자신을 찾아오는 자들이 왜 그토록 심한 고통을 견디면서까지 문신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문신을 통해서라도 간직하고자 하는 추억, 사랑, 꿈 등과 같은 것들을 충실하게 담아내고자 한다. 이때 양금순의 문신작업은 단순한 생계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타인들의 결핍을 채워주고 상처를 치유해주는 상징적인 ‘구원’ 행위를 함축한다. 그녀가 진구의 가슴에 죽은 딸의 얼굴을 새겨 주는 결말 장면은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양금순의 문신을 통해 진구는 자신의 가슴 위에서 딸을 얼굴을 확인하고 더 나아가 심장 속에서 그 존재가 함께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낀다. 딸의 부재로 인한 정신적 공허감과 상실감이 극복되는 감동적인 장면이라고 할만하다.
작가의 글 - 고재귀
"2001년에 KBS에서 했던 휴먼다큐멘터리가 있었어요. 한국의 시각 장애인 아이들 4명을 입양해서 키운 미국 시각장애인 부부이야기였는데, 2004년에 재방송을 봤거든요. 당시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꼭 저 얘기가 아니더라도 저런 정서를 담아내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 <고요>와 비슷한 면은 없지만 그래서 시작된 이야기에요. 굳이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건 아닌데, 지난 시간동안 제가 썼던 작품들에 모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그리게 됐어요. 앞으로도 작품에서 다루고 싶은 건 이런 육체의 소외뿐 아니라 정신의 소외에 대한 이야기에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의 이야기요.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것이에요.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인간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관계맺음이나 소통에 관한 이야기. 외형적 장애뿐만 아니라 심리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쓰게 될 것 같아요. 희곡은 문학의 장르라기보다는 일종의 연극의 장르인 것 같아요. 저는 희곡을 좋아하고 지금도 계속 쓰고 있지만 제 작품이 토시 하나 안 틀리고 공연되길 바라지는 않아요. 오히려 연출한테는 "내가 희곡에서 보지 못한 걸 공연에서 한번 봤으면 좋겠다. 그게 연출에게 하는 유일한 부탁이다." 라고 애기해요 연극이란 게 그런 거잖아요 활자화되어 있는 희곡을 무대에 올렸을 때 작가의 세계를 아우르면서 동시에 또 다른 세계를 포용하는 거요. 다만 제가 전달하고자 했던 개 왜곡되지만 않는다면 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 작가의 목소리를 내기에 가장 좋은 건 연극이고, 희곡 쓰기인 것 같아요. 언젠가 희곡 쓰는 친구 하나가 그런 얘길 하더라고요. “지금은 작가의 시대가 아니다"라고. 아쉽지만 그 얘기에 동감해요. 좋은 창작 희곡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출이나 배우가 차지하는 역할이 큰 게 요즘 공연의 추세인 것 같아요.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희곡쓰기 방식이 아니라 연습 과정에서 텍스트를 만들어가고 완성해가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과연 희곡 작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에요.
지금은 희곡창작집단 극단 '독' 에서 활동 중인데. 극단 '독'은 연출가들이 혜화동1번지 같은 연출가 동인 모임을 만들었듯이 창작희곡을 쓰고자 하는 작가들이 동인개념에서 출발하여 만든 극단이에요. 현재, 저를 포함해서 8명의 작가들이 스터디 하며 작품을 쓰고 있고. 2007년에는 창단공연을 포함하여 두 작품 정도를 무대 위에 올릴 계획이에요. 또한 새로운 창작극을 찾고 있는 여타의 다른 극단들과 연계하여, 새롭게 쓰인 희곡들도 선보일 생각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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