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이 나오면 사람들은 경의를 표하고 수고하셨다며 인사한다.
승무원은 미친듯이 달리다 죽은 한 남자를 추억하며 그를 대신해
달릴 사람을 찾다 한 남자를 발견하고 그에게 달릴 걸 종용한다.
현대인들은 달리는 남자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외로움과 혼란을
이야기하고는 멀어져간다. 남자는 달리면서 사회를 배워간다.
노숙자는 남자가 배운 모든 지식들을 조롱하며 담배를 피운다.
그러나 여직원과 청소부에 의해 제거된다.
남자는 여학생을 만나 그녀를 업고 달린다.
쉬는 동안 담배를 피우는 여학생을 말리다 폭력을 행사한다.
여행자들이 나타나 여학생을 같이 때린다.
남자는 기계처럼 맹목적으로 달린다.
여직원은 남자에게 담배를 피운 적이 있으니 더 이상 갈 수 있는
권리가 없다며 하차를 강요하지만 남자는 담배를 피운 적이 없다며
거짓말하곤 거부한다. 남자는 고문 속에서도 죄를 시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학생의 몰골을 보고 난 뒤 여학생을 위해 자신이 희생한다.
쓰러진 남자 곁에 여학생이 다가와 담배를 준다.
여학생을 보낸 남자는 담배를 피우며 죽어간다.

외로움에 허덕이며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남자에게 발행되는 입석티켓. 강제로 작업복이 입혀진 채, 달리는 기차 안에서 끊임없이 달려야만 하는 그 남자의 마지막 역은?
모두가 달려가고 싶어 한다. 좋은 곳, 희망이 넘치는 곳, 행복할 수 있는 곳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곳,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는 곳, 그곳으로 그 위치로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는다. 거기 가면 좋다고 커다랗게 사람들이 말해대고 그 말을 스스로 믿게 된다. 빨리 달려가기 위해서 질척거리는 것들은 잠시 잊고 달려가도 좋다. 그렇게 달리다보면 그 곳에 도착하게 된다. 아! 어? 그다지 다르지 않은 곳, 기대와는 삐끗하게 어긋난 그곳. 그리고 쉼 없이 달려온 시간을 잠시 후회하게 된다. 그래도 달려온 시간을 헛된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저 멀리서 달려오는 사람들을 다시 부추긴다. '여기 오면 좋아!'

작가의 글 - 김지용
개인들 한 명 한 명이 기차라고 생각해본다면?
이 글의 시작은 이러한 발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확장해서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어떠한 선로를 따라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학교를 나오고, 취직을 하고, 집을 사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노후대책을 세우고... 누가 정해 놓았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모두는 대체로 그런 행로를 걷고 있다. 생각컨대, 확립된 제도나 어떠한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는 우리에게 분명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준다. 반면, 그 길만 가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한다. 우리가 향해가는 이 길의 끝에 과연 행복이 있을까? 헐레벌떡 달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누구인걸까? 이 글은 국가나 제도에 대한 반항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삶 속에서 긍정을 찾기 위한 것이다. 최소한 '다음'은 존재하고 있으니까. '희망'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주변에서 목격되는 한에는.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당선 <그 섬에서의 생존방식>(2008) 제24회 부산연극제 최우수작품상, 희곡상, 연출상 부산일보 신춘문예희곡당선(2006) 제23회 부산연극제 희곡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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