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 2호선, 두 사람이 앉아있다.
지친모습으로 멍하니 앉아있는,
그리고 가슴이 유난히 큰 여자와 우는 아기를 안고
땀이 흠뻑 젖은 남자.
이들은 11개월 된 아기를 키우고 있는 부부.
그들은 임신과 출산 과정을 겪으며 생각보다 훨씬 힘든
육아에 충격 받고 지쳐간다.
육아에 대한 주변의 수많은 얘기와 정보들에 좌지우지하느라
정신없고,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할까봐 걱정스럽고,
육아 자체는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너무 어렵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엄마 급기야 집을 뛰쳐나가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지하철 2호선에 몸을 싣는다.
아빠도 무작정 아내를 따라 나서지만
우는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멍하니 앉아있다.
순환 열차 속에서 둘은 시간을 거슬러 문제점들을 찾기 시작한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임신, 결혼, 첫 만남, 차례차례 과거로 돌아가던 둘은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나게 된다.
세상의 잣대에 의해 휩쓸려가는 자신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발견하고 성찰하고 인정한다.
그때의 자신처럼 부모가 된 지금의 자신도 있는 그대로
만나보자는 작은 용기를 얻고 둘은 현실로 돌아온다.
서글퍼서 서른, 어설퍼서 엄마! 서른살에 만난
어색하고, 또 어색하기만 "엄마"라는 호칭!
제가 정말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스무 살이 되면 뭐든 다 아는 어른이 될 것 같았는데,
서른 살이 되어도 여전히 어른이 안 된 것 같다.
아직도 어리숙하고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나이,
먹을 만큼 먹은 나이 서른. 그런데 벌써 엄마가 되다니...
'모성'이라고 표현할 땐 위대함과 거룩함까지 느껴지기도 하지만, 매력 없는 익명성과 평범한 것에 대한 무료함이 담겨있는 '엄마'. 어색한 '서른'과 모호한 '엄마'가 만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짧은 여행이야기다!
작가의 글 _ 이래은
얼마 전, '길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한걸음도 옮길 수가 없어서, 도무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몇몇 친구들에게 물어 봤죠. '길을 잃었을 땐 어떻게 해야 하냐고.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친구도 있었고, 길 찾는 놀이를 하라는 친구도 있었고, 길은 없는데 잃을게 뭐가 있냐는 친구도 있었고, 내가 가는 곳이 길이 될 거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내가 가고 싶은 쪽을 보고 거기서부터 새 길 만드는 놀이를 시작했지요.
<서른, 엄마>는 삶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저처럼 물어볼 친구라도 있으면 덜 외로웠을 텐데 마땅히 물어볼 이도 얘기 나눌 이도 없는 외로운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혼자 데굴데굴 구르며 공공 앓다 결국 자신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죠. <서른엄마>에는 세 개의 축이 있습니다. 지하철 2호선 순환선이라는 공간, 인형놀이라는 형식, 결혼과 육아라는 소재가 그것입니다. 지하철 2호선 순환선은 1시간 25분에 걸쳐 한 바퀴를 돕니다. 그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지요. 모두 다른 생김새를 갖고 있고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많이들 닮아 있습니다. 모두 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다들 외롭고 힘겹게 살아가는 동지로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모두 매일 똑같은 모습이기도 하지만 하루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매순간 다른 모습으로 채워지기도 합니다. 삶은 그렇게 나선의 스프링처럼 뱅글뱅글 돌며 똑같은 제자리로 오는 것 같지만 이전의 제자리와는 다른 곳을 향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인형놀이는 놀이하는 사람이 인형에 자신을 투사함으로서 자신과 인형 간에 생기는 거리두기를 통해 자기 자신과 상황을 이해하는 행위입니다. 아이들이 인형놀이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인형놀이는 아이들에게 사유의 방식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인간의 지적 행위인 사유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없는 대화', '한 몸속의 두 사람임을 경험하기' '자신의 내적 상대의 일깨움'이 사유라고 여러 철학자들이 말해왔습니다. 아이들의 인형놀이는 이런 것을 머릿속에서 이뤄내는 어른과 달리 실제적으로 행하는 것이겠지요 한 철학자의 말을 빌면 사유는 삶의 본질적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가 이것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겨워도 인간은 사유하고 해야한다구요. 결혼과 육아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야하는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게 되면 누구나 잘 해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혼, 비혼, 저출산 등의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불안해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당위와는 다른 생각을 갖는 이들은 비난하기도 합니다. 결혼과 육아라는 현실은 끊임없이 배워 나가야하는 경험의 연속입니다. 실패를 통해 깨닫고 그것을 딛고 성장해야할 기회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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