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서혜 '대안 가정 생태 보고서'

clint 2024. 9. 23. 08:35

 

 

 

첫 가정인 6인 가족의 경우 드라마에서 너무 흔히 봐왔던 시집살이가 
주재료인 한 가부장적 가정의 주부 이야기를 
2번째는 그리고 재혼한 남녀, 덤으로 가족 구성원이 된 
자녀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3인 가정, 
그 다음은 가정은 가정인데 일반적으로 남녀관계로 엮어서 결혼하고 
사회 성원을 배출해내는 생산적 기능이 아닌 자신의 이해를 위해 
형식적 형태만 흉내 낸 공동생활 파트너, 즉 계약결혼 남녀 이야기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는 이혼과 자식 유학을 통해 혼자가 된 1인 가정이다 
'대안 가정의 생태 보고서' 속 가정들은 레고처럼 '부분 파괴',

'합체', '끼워 넣기', '분해'하는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게 한다.

 



연극 ‘대안 가정 생태 보고서’는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부문 수상작이다. 
수상 당시 ‘독특한 구조 속에서 가정의 의미에 대한 뚜렷한 주제의식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작품은 현재 한국 사회 속 다양한 가정의 모습을 텍스트로 구현했다.
‘A’, ‘B’, ‘C’, ‘D’, ‘E’, ‘F’는 극 중 등장하는 6명의 인물이다. 
이들은 할아버지, 어머니, 딸과 같이 가정에서 주어진 역할로만 극을 이끌어간다. 
각각의 인물들은 서류상 혼인관계가 필요한 남녀 가정, 이혼으로 인해 발생한 
재혼가정, 1인 가정 등 가정의 형태에 맞춰 결합 또는 분리된다.


심사평 - 이성열 최진아
이번에 응모된 희곡은 총 67편으로 작년 69편과 비슷했다. 주제는 친구문제에서부터 부모자식 관계, 폭력과 살인이 일어나는 보험이나 범 죄 이야기까지 다양했으며, 극의 전개도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그러나 다양한 소재에 비해서 정작 질문과 문제의식은 단편적인 인상이었다. 다사다난한 사건들로 어지러운 이 시기에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었 던 사건들이 하나도 언급되지 않은 것은 의아하게 느껴졌다. 대학생 작 가로서 현실을 날카롭게 바라보고 깊이있는 문제의식을 갖는다면 더 의미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인데 아쉬웠다. 「대안가정 생태보고서」는 소재의 처리와 희곡의 전개방식에 신선함이 있었다. 장면별 등장인물의 수가 6, 3, 2, 1로 줄면서 가족 구성원의 양상이 달라지고 결합의 방식도 달라지는 모습을 통해 가정이라는 집단의 다양한 측면과 의미 변화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메커니즘처럼 이야기의 전개방식으로 주제를 제시하고 있었고, 구조 속에서 메시지를 드러내며 뚜렷한 주제의식으로 귀결되고 있는 점이 단연 돋보였다. 장면의 설정이 특수한 상황이고 짧아서 등장인물들이 표피적인 감이 있으나 대사가 깔끔하고 속도감 있게 극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대안가정 생태보고서」는 구조의 힘이 강하고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겨 있어, 이 작품을 흔쾌히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희곡 한편을 완성하였다는 것은 큰일을 해낸 것이다. 언급되지 않은 응모작 중에도 재능이 있어 보이는 작품들이 여럿 있었다. 더욱 매진한 다면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응모한 모두에게 격려를 보낸다.

 



당선소감 - 박서혜
현실을 보이는 대로 나열하여 기술하기와 현상을 총체적으로 담아 그려내기. 묘하게 다른 이 두가지의 서술방식을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대안가정 생태보고서」는 현실에 대한 적극적 반영이기도 현상에 대한 소극적 저항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다른 것에 닿아 있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삶의 파편들이 부딪혀 생긴 파장이 일렁이는 대로 무작정 받아적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무력감과 절망이 들어찬 시대에 약간의 희망과 이면 대안을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괴로웠던 적도 있습니다. 끝을 내야 한다는 두려움과 끝이 날지도 모른다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 모순적으로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찌어찌 빛 한줄기 정도는 꾸역꾸역 채워넣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사람조차 두려움 따위에 잡아먹혀서 희망을 상상하지 못한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치열하게 쓰겠습니다'라는 말은 제가 할 수 있는 거짓말 중 가장 진부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과연 내가 글을 써도 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매몰될 때도 있지만 앞으로도 글을 쓸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먹고 자고 싸고 까고, 이런 것 외에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스스로를 파고 파고 파먹으며 쓰고 쓰고 쓰는 것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어느 모던보이처럼 겨드랑이가 간지러워 이따금씩 끝도 없는 권태로 침잠할 때도 있기에, 매일매일 치열하게 쓰겠다는 것은 영 지키지 못할 약속이란 생각이 듭니다.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쓰고 싶습니다' 이 정도의 표현이 좋을 것 같습니다. 희곡의 문법을 선택하여 연극적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도 패시 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곳은 해괴하고 이상하며 낯선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차갑고 난해한 세계에서 함께하는 사람들, 곁에서 지켜봐 주며 따뜻한 응원을 보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찬란함을 기다리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연극은 여러분 모두의 것입니다. -중략-
미처 호명하지 못한 내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 내가 사랑하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연극과 구조의 세계로 안내해준 모든 '관계'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박서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