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극단 아리랑 공동 창작 '아버지의 해방일기'

clint 2024. 9. 24. 10:57

 

 

 

첫막이 오르면 비전향 장기수 김만석이 토벌대와의 전투에서 죽어간, 
지리산의 옛 빨치산 동료를 회상하며 제를 지낸다.
만석의 딸인 중년의 가정주부 순옥은 어머니의 임종시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30년만에 첫면회를 오지만 기나긴 
세월의 벽 때문에 부녀 사이엔 만감이 교차하면서 서먹서먹하기만 하다.
간첩의 자식이라는 유년시절의 아픈 경험을 안고 살아온 순옥에 대해 
남편은 장인 때문에 가정에 해가 미칠까 두려워 면회가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아내가 면회간 사실을 알고 난 후, 가정에는 불화가 시작된다.

이런 상황에서 고민하던 순옥은 아버지의 부탁도 있었지만 아버지의 

한평생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에 부산의 허름한 양로원에서 건강이 
나빠 일도 못하고 외롭게 살고 있는 옛 동료 송재천 노인을 만난다. 
이때 송노인은 순옥에게 자신의 오래된 일기장을 건네준다.
-회상 1. 송노인의 일기-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이었던 김만석은 송재천과 함께 해방직후 
인민위원회 활동을 전개하다가 미군정의 점령과 함께 시작된 
와해과정에서 잡혀간다. 그후 송재천이 만석을 구출하여 함께 입산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토벌대에 의해 빨치산이 초토화되는 막바지에 
지도부의 명령으로 월북한다.
-회상 2. 아버지의 회고-
만석은 6.25가 끝난 후, 북한에서 경제건설 과정에 참여하다가 
중앙당 소환으로 남파공작원이 되어 남으로 내려오지만 즉시 체포된다.
-회상 3. 송노인의 일기-
투옥후 김만석은 특사라 불리우는 비전향장기수의 감옥에서 악랄한 
전향테러 공작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며 
오늘에 이른다. 순옥의 내면에서는 아버지의 과거행적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아버지와의 2번의 면회와, 면회를 못가게 막는 남편과의 불화가 
안겨주는 고민들이 해결되지 못한채 복잡하게 교차하게 된다.
무대가 현재로 돌아오면 감옥안에 있는 김만석은 옛동료 송재천의 죽음을 
알게 되고 이를 슬퍼하면서 다시금 장기수의 삶과 죽음에 대해 통찰하게 
되지만, 특사에 새롭게 움트는 봄기운을 느끼며 건강한 삶의 기운을 회복한다.
한편, 순옥은 내면의 갈등이 평정된 후 아버지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다시 아버지 면회를 가기로 결심하고 남편과의 불화에도 굽히지 않고 
설득해 나간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사상이나 신념을 아직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가 자신이 태어난 남쪽 고향땅에서조차 버림받고 
30년씩이나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하는 용서받지 못할 죄인인가라는 

의문을 관객에게 던지며 막이 내린다.



「아버지의 해방일기」는 1991년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금기시되었던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남파공작원 출신의 아버지와 분단의 아픔을 가족사적으로 체험한 딸을,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이중 구조로 설정하고 여기서 빚어지는 갈등을 개인적 비애에 한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딸이 이 사회를 더욱 커다란 감옥으로 느끼며 비전향 장기수 모두를 더 큰 아버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형상화했다. 30년 만에 아버지를 면회하는 딸의 갈등과 변화가 보여지는 현실 장면, 아버지의 삶의 궤적을 설명하는 회상 장면, 아버지의 감옥 생활 등이 교차되며 진행되는 사이사이에 아이들의 놀이장면을 삽입시켜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에 상징성과 우화적인 색채를 가미하는 효과를 주기도 했다. 극단 아리랑이 처음으로 시도한 공동창작 방식의 이 작품은 차디찬 감옥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장기수를 역사적으로 재조명하여, 잊혀져 가는 장기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일깨워 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기관의 압력 속에서 「아버지의 해방일기」 공연이 무사히 끝난 뒤에 극단 등록 취소에 관한 소송 판결에서 패소함으로써, 등록이 취소된 작품이다.

 

 


「아버지의 해방일기」 작품해설 - 김명곤
『태백산맥』이나 『남부군』이 나온 뒤로 빨치산과 해방 공간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더니, 『완전한 만남』이나 『녹슬은 해방구』, 『조국』 등이 나오면서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들의 삶은 분단 이데올로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들에 대한 일반의 인식 역시 냉전사고를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소설이나 기록물의 발간은 일차적으로 중요하며 그러한 점에서 연우무대의 봉숭아 꽃물에 이어 극단 아리랑이 『아버지의 해방일기」란 제목으로 이 소재 를 극화한 일은 일반인에 대한 관심의 환기라는 점에서 의의를 높이 사줄 만하다. 공연전부터 예술극장 한마당에서 관계기관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공연된 이 작품은 김만석이라는 비전향 장기수가 지리산의 옛 빨치산 동료를 회상하면서 제사를 올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30년 만에 아버지를 면회하게 된 딸 순옥의 갈등과 변화가 그려지는 현실장면과 김만석의 삶의 궤적을 설명하는 회상 장면, 그리고 만석의 감옥 생활 등이 교차되면서 진행되는 사이사이에 아이들의 놀이가 삽입된다. 이렇듯 여러 요소가 얽혀 진행되는 이 연극은 결국 순옥이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그를 아버지로서 받아들이게 되고 만석은 감옥에서 옛 동료의 제사를 마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이 작품은 아버지의 삶과 딸의 현실 생활을 이중으로 교차시켰다는 점에서 딸이 일관된 시선으로 아버지를 역사화시킨 「봉숭아 꽃물」과는 소재의 처리방식이 다르다. 아버지나 딸의 이야기에서 전형적인 모습만을 추출해서 깔끔하게 처리한 점은 진부해질 수 있는 소재의 한계를 잘 극복했다고 본다. 또 몇 군데 삽입한 아이들의 놀이 장면 역시 심각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반전시키고 소외시켜 주면서 작품의 상징성과 우화적인 색채를 가미하는 효과를 주었다. 전체적으로 군더더기가 없고 산뜻한 느낌을 주는 이 작품에서 아쉬움이 있다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장면, 예를 들어 인민위원회나 북한의 천리마운동 장면에서 좀 더 역사적 깊이를 갖추었으면 하는 점이다. 사학계에서도 아직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논쟁이 진행 중인 부분에 대해서 일방적인 처리를 하지 않고 좀 더 객관적인 거리를 두었더라면 훨씬 설득력을 갖추었을 것이다. 또 딸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평범한 주부인 중년의 여자가 30년 만에 남파 간첩으로 만난 아버지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 딸의 변화에 대한 동기 설명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결말이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곳곳에는 분단의 아픈 상처를 싸안고서 치열하게 고뇌한 흔적이 너무도 짙게 배어있다. 남과 북의 민중 모두가 분단과 냉전사고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이 한반도에서 그러한 고뇌는 값진 것이며, 그 고뇌의 땀방울을 통해서 통일의 길은 한걸음 한걸음 열리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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