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강월도 '뉴욕에 사는 차이나맨의 하루'

clint 2024. 9. 25. 07:01

 

 

 

막이 오르면 주인공인 찰리가 등장하고 곧이어 렉스가 나온다. 
찰리는 이민온 동양인인데 뉴욕의 중심부, 맨하탄의 한 골목에 위치한 
현대식 복사 사무용 기계 상점을 경영한다.
렉스와 몽티라는 두 고객이 찰리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며 시작한다. 
그것은 자기들이 가지고온 국방성 문서를 직접 복사하는 것. 대신에 거금의
비용을 일시불로 지불하고 복사를 하는데, 그들의 목적은 비밀문서를 복사헤 
베트남전쟁의 전말을 국민 앞에 폭로하려는 야심이다.
한편 찰리는 무섭게 노력하여 이 거대 도시의 번화가 한복판에 자신의 

상점을 차리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나 그 역시 큰돈을 번 다음 
자유로운 생을 살고픈 꿈을 지니고 한 흑인이 훔쳐오는 기계류를 싸게 
사서 파는일에 끌려간 몸이다. 그러나 이렇게 각기 이유 있는 야심이 
이 극에선 용서 되지 않는다. 찰리는 불법적인 장물아비로 체포될 찰나 
그에게 뒷거래를 하는 흑인(타이거)과 경찰관의 격돌로 총에 맞아 쓰러진다.
이런 가운데 미친듯이 복사를 끝내고자 하는 렉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이 
신문이 그 내용을 이미 보도했음을 알게 된다. 이에 광분한 그는 산더미 같이 
쌓인 종이를 미친듯이 흐트러 버린다. 
이렇게 해서 이른 아침부터 뜨겁게 달아 오르던 복사장 안의 열기는 
순식간에 식어 버리고 늦은 밤의 장막이 내리고 만다.

 

배우 신구가 주인공 찰리를 맡았다.

 

 

이 극의 주인공은 찰리와 렉스다. 이민온 동양인 찰리와 미국인 렉스의 각기 다른 목표의 대비로 이 극은 전개된다. 상점의 주인인 찰리는 성실하게 노력하는 이민자의 분투하는 생애를 통해 자연 속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탈 세속을 목표로 열심히 생활하지만 렉스는 양식 있는 시민의 모습으로 인간성, 양심, 품위, 고귀성 따위는 아예 접어 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만일 이런 일에 대한 향수나 동경이 남아있는 한 이민인으로써는 파국을 준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속적 성취를 노리고자 하는 점이 그것이다. 사실 찰리는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 내일의 한가한 멋을 갈구하는 여유 있는 동양군사다. 그러나 현실적 여건, 그것도 자본주의의 냉혹한 제도에 의해 지배되는 미국 땅의 한 이민인으로서 그에겐 무엇보다도 생존의 멍에가 지워져 있다. 극중에서 표명된 찰리의 죄는 단순히 타자기, 계산기 등의 불법 거래를 행하는 장물아비라는데 있다. 그러나 더 깊은 수준에서 볼 때 그의 죄목은 노예 같은 일과와 결별하고 자유로운 삶을 향유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렉스 역시 목표에 대한 집념이 강한 것은 찰리에 뒤지지 않는다. 다만 찰리가 좀 실존적인 삶의 목표를 지향한다면 렉스는 양식있는 시민의 사회적 도덕적인 의무를 표방하는 세속적 성취를 노렸다고 하는 점이 다르다. 국방성 비밀문서를 베껴 국회가 전쟁에 출자하기 않도록 설득을 하고자 하는 이 한 가지 뚜렷한 목표를 향해 매진한 이일에 그가 얼마나 집요하게 매달렸는가는 타이거의 등장으로 총격전이 일어나고 길바닥에 네 구의 시체가 뒹구는 비극적인 종말을 면전에서 목격하고도 가게로 돌아가 복사를 계속해가는 냉혈적인 장면에서 여실히 입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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