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근남과 임종해와 안순교는 민속촌 전통혼례 행사에서 가마꾼으로 일하고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야 직업이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만 이 세 사람에게 가마꾼이라는 것은 자아실현이나 경제적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그런 직업은 아닌 것 같다. 근남은 왠지 무기력하게만 보이고, 배우가 되고픈 종해는 중요한 순간에 웃음이 터져 나와서 번번이 실패하는데다가, 제일 어린 순교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곤 한다. 매일 매일이 참으로 지루하고 건조하기만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들에게도 기회란 것이 찾아온다. 이들이 일하는 민속촌에서,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그 안에 죄수를 집어넣는다는 “팽형”이라는 형벌을 재현하는 프로그램이 생기게 된 거다. 비록 가마솥에서 죽어가는 척을 해야 하는 역이지만 어쨌든 그 순간만큼은 이들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거다. 그래서 이들은 열심히, 아주 열심히 죽는 연습을 하게 된다. 살기 위해서, 잘 살기 위해서, 그야말로 죽도록죽도록 죽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 뭔가 좀 있어보이게 이야기하자면 삶이란 게 참 아이러니한 것이고, 그냥 대충 이야기하자면 먹고살기가 참 만만치 않다. 딱 보기에도 루저 타입인 세 사람인데 그렇다고 그 앞에 펼쳐진 길들이 수월하거나 평탄하지도 않다.
물론, 마지막에 희망을 살짝 던져주는 것도 같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았더니 모든 나쁜 것들이 세상으로 나와 버리고 그 바닥에 희망이 남아있더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 마지막에 보았던 실 날 같은 희망이 이미 세상에 퍼져 나가버린 온갖 나쁜 것들에 비해서 얼마나 마음의 위안이 되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참 희한한 일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가느다란 희망을 보여줘도 어느 때는 그게 앞으로의 환한 날들로 가는 열쇠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이번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도 같고 말이다. 어쨌든 참 이상하게도 웬일인지 이들의 앞날이 그리 밝아보이지는 않아 우울하기는 하다.
민속촌 전통혼례 행사 가마꾼으로 일하는 세 남자의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애환을 경쾌하게 그린다.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세 남자에게 모처럼 찾아온 기회는 조선시대 형벌 '팽 형'을 재현하는 것. 행사의 주인공으로 발탁돼 사람답게 살기 위해 세 남자가 죽는 연습에 몰두하는 것에서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다. 남자 세 명의 꿈과 그 꿈의 실현을 향한 그들의 노력과 애환을 그려내고 있는<죽도록죽도록>은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서민 아니, 그 보다 더 아래인 ‘없이 사는 사람’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김은성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나 1986년 겨울부터 서울에서 자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2006년 졸업 공연을 연출하기 위해 쓴<시동라사>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쓴 연애소설이 전교를 돌며 남학생들의 눈시울을 붉혔고, 내처 시를 써서 응모하기 시작한 지 15년만의 당선이었다.
2007년 서울연극제에<죽도록죽도록>이 공식참가작으로 초청됐고, 2008년과 2009년 극단 이와삼 정기공연<시동라사>, 2010년 서울시극단 정기공연<순우삼촌>등으로 연극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2011년 제18회 대산창작기금을 받은<연변엄마>가 무대에 올랐다.
2011년 봄에<찌질이신파극>을 발표한 후 극단 달나라동백꽃을 창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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