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의 설화를 간직한 신라 문무왕의 동해 수중 능이 있는 현재 경주시 감포 연안에 분이, 덕이, 열수가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다. 시장 바닥에 앉아 야채를 파는 분이는 앉은뱅이이고 그녀의 며느리인 덕이는 맹인, 아들 열수는 반편수다. 양공주였던 분이는 물 건너간 남편을 기다리며 아들과 함께 살다 세상의 선입견과 손가락질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앉은뱅이가 됐고 열수는 반편수가 됐다. 또한 이곳에 ‘방사능 폐기장’이라는 시설이 유치가 된다. 언제 부터인가 문무왕의 수중 능위로 불길이 보이고 신비한 피리소리가 들리면서 감포 주민들은 전설의 기억을 떠올리며 술렁이기 시작한다.
인간사의 복잡하게 얽힌 인연의 고리들과 수많은 군상들 속에서 분이, 덕이, 열수는 사람이 사람과 살아가는 참된 의미를 알아가기 시작한다.
야채를 더 많이 팔고자하는 미천, 가문과 혈육에 집착하는 설 씨..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자하는 한 사장, 법을 공부하다 미쳐서 세상에 침을 뱉는 판사...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자신의 아들 피자를 걱정하는 건달 등등...
희화화되어 표현되어졌을 지도 모르지만, 우리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그런 ' 사람 ' 그 자체 인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짐을 이고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이고 있는 짐의 무게만 무겁다고 말하며 살아간다. 타인의 짐은 안중에도 없다. 그러면서 내일이면 이 무게가.. 조금은 가볍게 느껴지길.. 바라며 살아간다.
덕이, 분이, 열수 이 세 명을 통해 극은 사람이 사람과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질문의 답을 제시해준다. 그 것은 바로 "용서와 화해" 이다.
감포 사는 분이, 덕이, 열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하나씩 품고 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 사연을 공유하고 있거나, 그 사연을 귀 기울어 들어 줄 이웃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죽마고우가 이웃에 살고 있는 마을,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이웃이 있는 마을이 감포다. 그래서 감포에는 이야기가 있다. 분이의 이야기가 있고, 덕이와 열수의 이야기가 있고, 설씨와 단씨의 이야기가 있고, 미천과 한사장의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가 있을 수 있는 것은 그 이야기를 공유하고, 들어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감포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감포 자신도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데, 문무왕의 수중릉 전설과 만파식적의 전설이 과거의 이야기라면 핵 폐기장이 들어서는 것은 현재의 이야기다. 감포의 문제가 곧 자신의 문제가 되는 마을 사람들은 전설을 품듯이 핵 폐기장을 품어야 한다. 그러나 전설은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었지만 핵 폐기장은 사람들을 분열시킨다. 문무왕의 전설은 사람들의 이타심을 상기시키지만, 핵 폐기장은 사람들의 이기심을 상기시킨다. 연극 ‘감포 사는 분이,덕이, 열수’는 어쩌면 이야기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감포의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연극의 주인공을 감포라고 한다면 너무 큰 비약이 될까?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일까? 쉽다면 왜 자살하는 사람이 생기는 걸까?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건강하게 사는 것’도 있지만 ‘잘 사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잘 살아’와 ‘못 살아’의 기준은 무엇일까? 돈일까? 저마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얘기할 가치가 없는 걸까? 꼭 잘 살아야만 해야 하나. 그냥 살면 안 되는 걸까? 그냥 산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까? 그냥 산다는 것은 무책임할 수 있겠다. 적어도 삶의 의지는 있어야겠다. ‘감포’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이 삶의 의지가 가득 차 있다. 그런데 분이, 덕이, 열수가 가지고 있는 삶의 의지가 다른 인물들과는 조금 다르다.
작가의 글
연극 ‘감포 사는 분이, 덕이, 열수’는 사람이 사람과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 연극은 우리 옛 민담에 앉은뱅이, 귀머거리, 맹인이 함께 길을 떠나는 이야기와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공경을 담은 살보시 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경주시 감포 앞 바다엔 신라 30대 문무왕이 수장되어 있는 돌섬 ‘대왕암’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만파식적의 신비한 이야기가 탄생된 곳이기도 합니다. 모두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유언과 그에 맞게 생기게 된 유적과 신물입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문무왕 능에 치성을 드려 복을 받는 효험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 극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복의 효험을 얻기 전에 하나같이 능위에 붉게 타오르는 불을 보는 체험을 합니다. 유서 깊고 신비한 설화를 간직한 감포 이곳에 가장 근대적인 핵시설인 “방사능 폐기장”이 유치됩니다. 연극은 방사능폐기장 유치로 자신들에게 생길 이익을 기대하며 나름 자신들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려는 감포 일대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영험한 대왕암에 자신들의 이익을 빕니다. 그리고 모두 대왕암의 신비로운 불을 받기를 원합니다. 복 받기를 원합니다. 이들은 그 복을 받기 위해 신화 앞에 엎드리고 모두 신화적 체험을 바랍니다. 이곳에 만파식적 가락을 타고 흐르는 설화만큼이나 신비스런 분이, 덕이, 열수란 세 인물이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이들 속을 들여다보면 도무지 가족으로 엮일 수 없는 서로 죽고 죽이는 원한의 관계와 생면부지 타인의 관계가 있습니다. 장애는 그런 아픈 관계 속에서 입은 허울입니다. 이들은 시장 통에 좌판을 펴 살아가는데 그들은 오가는 행인에게 ‘복 받아 가이소’를 외치는 특별한 호객을 합니다. 여기에 자신의 가문을 지키려는 설씨가 등장합니다. 유일한 혈육인 아들 ‘연호’를 기다리며 결코 마주 할 수 없는 전화기를 통해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설씨는 가문과 혈육에 집착합니다. 부인의 병이 낫기를 바라는 단씨, 야채를 더 많이 팔고자 하는 미천,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한 사장, 법을 공부하다가 미쳐서 세상과 융화하지 못하고 세상에 침을 뱉는 판사, 인간의 이기에 철저히 유린당한 할머니,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제 아들에게 피자를 약속하는 건달, 그리고 보여 지지는 않지만 줄곧 등장하는 시장 통의 행인, 동사무소의 군중 등 자신의 이기에 함몰된 무수한 군상들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 복 받는 그 신화적인 불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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