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 50주년을 기념하여
수상작들 중 최고의 작품을 선정하는 '황금 맨부커상(The Golden Man Booker Prize)'
수상작이 발표되었다. 그것은 바로 1992년 '맨부커상'(당시 '부커상')을 수상했던
마이클 온다치의 <잉글리시 페이션트>이다.
안소니 밍겔라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었던
이 작품은 제69회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감독상 등 9개 부문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을 배경으로 심한 화상으로 죽어가는 영국인 환자, 그를 돌보는 간호사 해나, 연합군 스파이로 활동했던 도둑 카라바지오, 영국 군대에서 폭탄처리 전문가로 일하는 공병 킵이 모여 살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국인 환자는 아름답지만 슬픈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해나와 카라바지오, 킵에게 들려준다.
거기에 영국인 환자에게 보이는 해나의 헌신적인 사랑부터 킵과 해나가 나누는 순수한 사랑까지. 그들의 사랑은 지속되는 역사 속에서 변화하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쟁의 황폐함 속에서 온전한 인간으로 남고자 하는 사람들. 그들은 상처와 치유라는 또 다른 이름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우리가 꿈꾸듯 깊은 절망 속을 흐를 때, 우리가 갈구하는 모든 것은 절망, 희망의 빛을 띤 절망이다. 그러나 찬란한 유혹의 절정에서 눈물을 쏟는 자는 유채색의 회한을 곱씹지 않는다. 밤의 깊이를 아는 자만이 밤의 생리 속에 젖어들 수 있듯이, 그들은 무채색의 절망 속에 가라앉는다.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이태리의 한 빌라에서 세상과 전쟁으로부터 찢겨진 4인의 삶은 안개와 어둠과 폭풍우를 동반한 무채색이었다. 알몸의 정사, 땀과 살 사이로 흐르는 고독, 절망과 알몸은 한 덩어리이다. 섹스와 비의 앙상블, 평생을 두고 사막을 사랑했던 한 중년 사내와 고혹적인 아름다움으로 그의 모든 것을 분해시켰던 젊은 여인, 아무것도 보호할 수 없었던 전쟁으로 아버지를 빼앗기고 영혼의 바닥에서 안식했던 해나, 그녀가 사랑하고 그녀를 사랑했던 공병, 상대방을 알기 때문에 상대방을 구속하지 않았던 카라바조, 그들의 영혼은 떠도는 사막과 시대의 운명 속에 고요히 침잠했다. 모든 사랑은 소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모든 시대는 운명으로부터 비껴갈 수 있는가?
위로가 필요했던 시대였다. 사랑, 신앙, 죽음으로부터의, 시대와의 분리와 고독으로부터의 위로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으로부터의 위로가 필요했던 시대였다. 그리고 그 어두운 사랑과 절망으로부터 그들은 각자 자신의 삶 속에 뿌리를 내렸다. 삶과 죽음으로 새벽을 잉태한 밤의 빛깔, 영원히 안식할 침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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