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지수 '무좀'

clint 2023. 6. 10. 12:58

 

2023년 대구연극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할아버지의 고향에서 벌어지는 위태위태한 한 가족의 이야기다.
경북 청도, 죽은 아버지가 살던 집에 살고 있는 둘째 상만네는 

그 곳을 허물고 펜션을 지으려는데, 
한편 이를 모르고 찾아온 첫째 길만네 가족들,

퇴직을 앞둔채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고향을 찾은 길만은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되는데....
 


대한민국의 삼대 이야기, 가족의 자화상을 그려내는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진정한 민족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고, 
광복 후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6.25에 참전하고,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뼈 빠지게 일만하다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 길만의 아버지 경태, 
그를 동경하며 그저 열심히 일만하면서 살아왔던 길만,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며 자신이 그저 바쁘게만 살아가는 길이 
과연 올바른 길인가를 고민하는 길만의 아들 준식, 
그 세 부자가 공통적으로 언제부턴가 생긴, 
그러면서 평생 떼어내지 못한 무좀이라는 연결고리로 이야기를 풀어감으로써 
바쁜 현대인들이 잃어가는 삶의 목표와 사랑을 깨닫게 하고자 한다. 
또한, 붕괴되어가고, 단절되어가는 대가족의 의미를 위태위태한 
길만과 상만 가족의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무좀'이 만들어낸 가족의 역사는 이미 죽은 인물이지만 작중에 수시로 등장하는 집안의 어른 '경태'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싸운 독립유공자이며 6.25전쟁에다, 그리고 새마을 운동 시절까지 모두 경험한 고된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그럼에도 피난민들과 함께 자손들이 살아가는 고향 청도에 대들보를 세우고 가족들을 먹여살린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세 아들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조금씩 다르다. 첫째 길만에게는 그가 쌓은 명예와 헌신이 둘째, 막내인 상만과 준태에겐 괴팍한 알콜중독 아버지로 보인다. 아버지가 지은 낡은 집은 그 가치가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저 집이지만 각자가 기억하는 것과 느끼는 가치는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세 형제의 갈등은 여기서 싹튼다. 서로가 형제이지만 조금씩 다른 것들, 아버지와 집에서 비롯된 갈등은 싸움이 된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은 참 다양하다. 하지만 현실에 동떨어진 인물은 한 명도 없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집안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결과에 비해 가족들에게서 느껴지는 가장의 위상은 비참할 정도인 길만은 은퇴를 준비하면서 아버지를 기억한다.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전형적인 이 시대 장년층의 모습이다. 젊은 시절 사업 실패 후 고향의 집에서 농사를 짓던 상만은 이제 농사를 하기에는 자신도 부인도 몸이 버티질 못한다. 변하는 시대에 맞추어, 집을 공사해 펜션 사업을 통해 수익을 얻고자 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형들과는 다른, 꼭 가족 중에서 한 명쯤 있을 법한 캐릭터의 영만, 화자와 미숙은 남편과 자식들을 생각하는 어머니들이지만 서로는 으르렁거리는 동서 관계다. 나름의 성공을 이뤘지만 그만큼 바쁜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 길만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기죽어가지만, 그만큼 아버지를 닮은 준식, 아버지 상만의 사업자금을 날리고 도시를 떠나고 싶어 다시 돌아온 준태, 젊고 자유롭게 꿈을 좇는 나경까지. 세상이 가족이 기억들이 붙잡고 늘어지면 늘어질수록 더 지독한 이 세상은 참 고단하다. 각 세대, 또 각자가 느끼는 그 고단함을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무좀, 참을 수 없는 가려움에 각질이 돋아나는 참 재수 없는 질병. 게다가 전염성까지 있어 더더욱 재수 없는 이 질명을 이 작품은 제목으로 삼았다. 가족들 중  가장 웃어른인 경태와 혈연적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다 이 무좀을 가지고 있다. 작중 인물들이 발을 긁으면 경태는 긁지 말라며 호통을 치지만, 죽은 사람의 호통이 들릴 리가 없다. 이 무좀은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무좀 때문에 발을 긁게 되는 가족들, 한편으로 그런 가족들끼리 남을 긁어대는 모습, 사실 이 무좀은 약만 바르고 가려움을 참으면 몇 주 내에 사라져 버린다.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긁지 않으면 된다. 한발 물러서면 된다. 굳이 가릴 필요도 없다. 가족이니까 더욱 그런 것이다. 긁는 것이 편하겠지만 분명 좀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이 작품은 그 마지막의 작별하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보여준다. 군화에서 싹튼 무좀은 가족 간이 가진 연결고리이자, 함께 살아나가는 가족의 치부이자, 어떤 상황에도 해결할 수 있는 가족애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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