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용락 '우물 안 영도자'

clint 2023. 6. 12. 08:05

 

군대에서 대위로 불명예제대를 당한 손 대위는 군대에 있을 때, 고분고분하던 부하 박영무하사를 데리고 엉뚱하게 고시학원을 차린다. 그리고 스스로 한국교육계의 선각자이자 영도자라고 칭하며 언젠가는 자기가 교육부장관에 추대되리라는 허튼 망상에 잡힌다. 이런 그의 망상은 자기가 실제 장관이 된 것 이상으로 부하직원이나 학생을 괴롭히는 것으로 구체화한다. 그는 학생에게 군대식으로 대할 뿐만 아니라 직원들을 혹사하며 박봉이나마 밀리기가 일쑤이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강사나 학생들이 오래 붙어 있을 리가 없다. 있다면 아부가 몸에 배인 박영무 뿐이다. 그래도 원장은 그만두는 직원들을 욕하며 자기의 망상이 터무니없음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그가 자기 망상이 일종의 출세 못한 자기 무능에의 보상이라는 것을 또 자기의 권력에의 집념이 상놈으로 살아온 조상에 대한 분풀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의 주위에는 영무도 미스 리도 강사들도 약삭 빠르게 그를 버린 뒤였다. 실의와 절망에 빠진 그가 자기를 버리려는 영무에게 권총을 겨눈다. 그러나 그를 쏠 만큼 악하지 못하고 그는 결국 자살한다. 우리 민족이 달해온 수난의 연약한 희생자였을 뿐이다.

 

 

김용락의 「우물 안 영도자」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 흔한 전체주의 적인 망상에 사로 잡힌 인간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우화적인 작품이다. 주인공 손대권이 걷는 길은 시대착오적이 때문에 비극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이 망상의 원인이 우리의 歷史 속에 뿌리 깊이 간직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따뜻한 동정의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망상가 나오지 않는 건설인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하겠다. 대조되는 두 인물인 대권과 영무 모두 병적인 인물로 나오지만 그 인간상들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며 다소 과장되고 희화적이지만 작가의 의도를 대변해준다. 그리고 이 작품은 무대와 객석을 허무는 시도를 한다. 배우가 객석에 들어가 관객의 참여와 교류가 이뤄진다. 19693. 현대극회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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