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효상 '왕이 된 허수아비'

clint 2023. 6. 4. 13:05

 

장돌뱅이 김팔봉이는 거리질서 단속반에 쫓겨 우연히 막을 기다리고 있는 연극 소극장안으로 숨어든다. 때마침 공연장에는대왕"역을 맡은 주연배우가 나타나지 않아 연출자 및 스텝들이 당황하고 있었다. 이런 차에 극장안으로 숨어든 김팔봉은 엉뚱한 해프닝과 짓거리로 관객들의 이목은 물론 극장안의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구수하고 솔직한 그의 재담과 익살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 주연 배우대신 연출가의 권유로 대역을 맡게 되고 그러므로 주어진 한판은 그가 여태껏 살아온 삶의 여정을 자신도 모르게 거침없이 까발리는 결과가 된다. 약장사도 하고, 엿 장사도 하고, 주머니 쌈짓돈을 털어가던 야바위꾼도 하고. 낙오자이기도 하고, 실향민이기도 하고, 이 시대의 비극의 집대성이다. 돈 몇 푼 받고 주인공이 올 때까지 뭐라도 하기로 한 김팔봉은 거짓말을 늘어 놓는다. 알사탕을 엿이라 우기며 나눠 주기도 하고, 뱀 장사 행세로 엉터리 약도 팔고, 엉터리 마술도 보이고, 엉터리 노래에 엉터리 춤도....

 

 

관객의 관심이 고조될수록 흥분하는 김팔봉. 자신의 옛날 얘기까지 풀어놓게 된다. 그러나 ''의 얘기가 '우리'의 얘기로 동화되면 숨어있던 내 안의 진실이 나오는 법. 장난삼아 몇몇 관객을 커플로 엮어다 보니 스스로의 회한이 북받쳐 오른다. 6.25 전쟁으로 갈라진 남과 북, 이념으로 나뉜 사람들 속에서 못 이룬 사랑 등. 상처받고 상처 주고, 만나고 헤어지고, 그런 속에서 '지금' 살아있는 김팔봉, 김팔봉은 우리 시대에 TV나 영화 등 메스미디어에 비쳐지는 허구가 아닌, 바로 현실이다. 태어나서 처음 '연극'을 보러 온 사람으로, 어려운 혼돈의 '현실' 세상에서 좌충우돌하는 주인공이다. 김팔봉은 바로 ''이다.

 

 

이 왕이 된 허수아비는 의식부재와 인간성 상실로 인한 우리 상황을 상징적으로 그렸으며 한 인물을 통해 픽션적 이야기를 사실화 시켜 관객과 공감대형성을 유도, 같이 생각해보는 한마당으로 만든 모노드라마 형식의 새로운 스타일의 연극이다. 마당놀이 형식으로 꾸며진 이 연극은 공연을 구경온 남여 관객을 주인공 배우 김팔봉이가 임의로 선정 즉석에서 혼례식을 치르게 함으로서 그간 관객부부가 800쌍이나 탄생되었고, 관객과 더불어 함께하는 그간의 8년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그런 작품이다.

 

 

작가/ 박효상

그는 연극계에도 문단에도 신상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신비스런 인물이다. 왕이 된 허수아비가 초연되던 86년에도 그의 소재가 잘 파악되지 않아 작가 승인도 없이 이 작품이 막이 오른 적도 있었다. 그저 연극이 좋아 숱한 세월을 그늘에서 보내면서도 특이한 그의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오히려 우리들의 민초와 대중의 안위를 누구보다도 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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